리비아·튀니지 떠넘기기…사지 몰린 난민들
튀니지는 사막으로 강제 추방…인권단체 “학대 중단을”
가난과 기근, 독재정권의 폭압을 피해 아프리카를 떠나려는 난민들이 또다시 사지로 내몰리고 있다. 식수도 없이 사막으로 내쫓기거나 작은 보트를 타고 바다를 건너다가 수장되는 처지에 놓인 이들을 위해 국제사회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알자지라는 9일(현지시간) 리비아 당국이 국경으로 몰려든 아프리카 난민을 도로 데려가라는 메시지를 튀니지 정부에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튀니지는 아프리카 이민자 1200여명을 리비아와 알제리 국경 사막 지역으로 강제 이동시킨 바 있다. 리비아 국경검문소 보안 책임자는 “우리는 이 사람들이 불법으로 침투했기 때문에 국경에서 제거돼야 한다고 튀니지 당국에 알렸다”며 “튀니지가 인도주의 단체에 연락해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책임을 떠넘겼다.
튀니지와 리비아는 이탈리아 남부와 가까워 불법 이민선을 타고 유럽으로 가려는 아프리카 이민자들이 출발지로 삼는 국가다. 양국은 올해 초부터 강력한 난민 단속을 펼치며 이들의 거취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유럽도 이민자들의 유입을 막기 위해 튀니지와 리비아를 직간접적으로 압박하는 상황이다. 그사이 사막에 방치된 난민들은 절망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감비아에서 튀니지로 건너온 부가타 감베는 알자지라에 “지난 6일 동안 물과 음식도 없이 황량한 사막에서 버텨야 했다”며 “여기서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튀니지 정부가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인에 대한 강제 이주를 중단하고 위험한 국경 지역으로 보내진 사람들을 위해 필요한 지원을 해야 한다”며 “난민들을 학대하고 사막에 버리는 행위는 비양심적일 뿐 아니라 국제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카이스 사이에드 튀니지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내고 “난민들은 인도적 대우를 받고 있다”며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국 세력이 난민을 위한 새로운 유형의 정착지로 튀니지를 선택하고 우리에 대한 거짓말을 퍼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튀니지는 임대아파트가 아니다”라며 난민을 수용하거나 안전하게 유럽으로 보낼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지난 2월 “사하라 사막 이남에서 튀니지로 불법 입국하는 행위는 튀니지 인구 구성을 바꾸려는 목적의 범죄”라며 반이민 정서를 부추겼다.
튀니지 당국이 이민자들을 사막으로 쫓아내는 등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는 이유는 현지 주민과의 충돌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지난 3일 해안 도시 스팍스에선 이민자들의 유입을 막으려던 한 주민이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서 온 이주민 3명에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오도 가도 못하게 된 난민들은 목숨을 걸고 불법 이민선에 몸을 싣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스팍스 인근 소도시 자르지스에서 출발한 이민선이 침몰해 최소 1명이 숨지고 11명이 실종됐다. 11명은 구조됐다.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 인근 해상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다. 구호단체 ‘워킹 보더스’는 이날 세네갈에서 스페인으로 향하던 보트 세 척이 최근 사라져 최소 300명의 난민 행방이 묘연하다고 전했다. 보트 세 척 모두 세네갈 남부 카푼틴에서 출발했고, 탑승자 대부분 세네갈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과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민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신들은 2019년 이후 지중해에서의 불법 이민 감독이 강화되자 세네갈 등 서아프리카에서 출발해 대서양을 건너 카나리아 제도로 향하려는 이주민이 몰리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대서양은 물살이 강해 지중해보다 더 위험하다고 알려진 경로로, 난민선 사고도 속출하고 있다. 지난달 21일에도 카나리아 제도로 향하던 고무보트가 모로코 서부 사하라 앞바다에서 침몰해 30명 이상이 실종됐다.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지난해 카나리아 제도로 가려던 이민자 가운데 목숨을 잃은 사람은 최소 559명이고, 이 중 22명은 어린이였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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