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고아 품은 튀르키예군 '앙카라학교'

2023. 7. 10.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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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앵커>

수원 '앙카라학교'는 1952년, 튀르키예 군인들이 6·25전쟁 고아들을 돕기 위해 설립한 학교인데요.

전쟁고아를 돌봤던 앙카라학교를 안중태 국민기자가 찾아가 봤습니다.

안중태 국민기자>

대한뉴스 제988호 (1974년)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수원 서둔동 일대에서 부모를 잃고 전쟁고아가 된 오수업 어르신.

71년 전 일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인터뷰> 오수업 / 앙카라형제회장

"6살 때 가족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피난 가던 중에 폭격으로 어머니 손을 놓쳤어요. 전쟁고아가 되어 거리를 방황했습니다. 수원역 근처에서 튀르키예 군인을 만나 수원 (앙카라)고아원에 오게 됐습니다."

부대 안에 천막을 치고 전쟁고아들을 보살피던 튀르키예군은 아이들이 늘어나자 월급을 5달러씩 모아 수원에 앙카라 학교를 세웠는데요.

선생님과 친구들 함께 찍은 사진, 신나는 운동회.

빛바랜 흑백 사진을 보며 어려웠지만 행복했던 그 시절을 되돌아봅니다.

한국어 공부를 하고 터키 역사도 배우고 밴드부에도 참여한 오 수업 어르신은 당시 튀르키예 군인이 가르쳐준 노래를 부르며 고마움을 전합니다

현장음>

"앙카라, 앙카라, 귀젤(아름다운) 앙카라~"

인터뷰> 오수업 / 앙카라형제회장

"4학년까지 자체 교육을 했고, 5학년부터는 일반 학교에서 정규 수업을 받았습니다. 고마움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튀르키예 군인들이 전쟁하는 와중에 먹을 것도 (주고) 학교 공부까지 전부 다 시켜줬습니다."

앙카라학교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운영됐습니다.

1966년까지 14년 동안 640여 명의 전쟁고아가 이곳을 거쳐 갔고, 튀르키예군이 본국으로 철수하면서 문을 닫았습니다.

안중태 국민기자

"이곳은 앙카라학교가 있던 자리입니다. 지금은 그 옛날의 흔적은 갈수록 자취를 감추고 학교터를 알리는 작은 표지석만 남아 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앙카라 학교 건물은 안전을 위해 출입이 통제되고 있지만, 학교를 찾은 어르신은 당시 시설과 함께했던 선생님과 친구들을 떠 올려봅니다.

인터뷰> 오수업 / 앙카라형제회장

"저기는 남자 숙소였는데 강당과 함께 썼습니다. 나머지는 넓은 부지인 논밭이었고 과일·채소 등 먹거리가 많아 행복했습니다."

앙카라학교는 지난 2017년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아일라’로 주목을 받았는데요.

지난 1월에는 앙카라 학교 설립의 그 뜻을 이어가는 기념사업회가 출범해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김용국 / 아시아문화연구원장

"앙카라학원 기념사업회는 튀르키예 역사와 문화 교육, 한국전쟁 참전용사 후손과의 교류, 전쟁 유품 수집 등을 추진할 예정입니다."

(취재: 안중태 국민기자)

6·25 전쟁 당시 미국, 영국, 캐나다에 이어 4번째로 많은 병력이 참전한 튀르키예군.

전쟁고아를 돌본 앙카라 학교가 우리와 형제의 나라 사이의 인연을 더 깊게 이어주고 있습니다.

국민리포트 안중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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