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시대 ‘원전 역주행’
‘2050 탄소중립’ 고민 부재
에너지원별 비중 논의 없이
전력 수요만 대응…비판 일어
영덕·삼척 등 후보지 거론
정부가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공식화하면서 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이고 있는 시대적인 변화에 역행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탄소중립에 대한 명확한 계획 없이 전력 수요만 대응해 원전만 늘리는 것이란 지적도 뒤따르고 있다.
10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이창양 장관은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에너지위원회에서 “안정적인 전력공급 능력을 갖추기 위해 원전, 수소 등 새로운 공급 여력 확충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7일 한국전력, 삼성전자 등과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공급 방안을 논의하는 간담회에서 “안정적 전력공급은 반도체 클러스터 성공에 핵심 요소”라고 언급한 데 이어 연일 이 장관은 신규 원전 건설 필요성을 우회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정부는 용인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 조성과 기업투자가 마무리되는 2050년에는 10GW(기가와트) 이상의 전력 수요가 따를 것으로 내다봤다. 6~7년 앞으로 다가온 공장 가동 시점에 맞춰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로 급한 불은 끌 수 있지만 추가 전력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신규 원전 규모가 6기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구체적으로 경북 영덕 천지 원전과 강원 삼척 대진 원전 등이 신규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다. 부지가 확정되지 않았던 천지 3·4호기를 비롯해 이들 원전은 문재인 정부에서 건설이 백지화된 바 있다. 특히 천지 원전은 부지 매수가 진행 중인 단계에서 중단됐다.
윤석열 정부의 신규 원전 건설 추진은 예상된 수순이었다. 데이터센터와 전기차 보급 확대로 전력소비량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를 획기적으로 늘리지 않는 이상 신규 원전 건립은 불가피하다.
원전 비중을 35%로 한다고 하더라도 2050년에는 20기가 넘는 원전이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에너지 시민단체 한 전문가는 “정부가 상위계획인 탄소중립기본계획에서 기존의 2050년 에너지원별 발전 비중 수정에 대한 사회적 논의 없이 하위계획인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추가 원전이 필요하다는 식으로만 접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신규 원전 건설을 앞당겨 검토한 데는 탈원전 정책 폐기가 지지부진하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경북 울진 신한울 3·4호기의 경우, 원전 전원개발사업 실시계획 승인까지 평균 30개월이 소요됐던 기간을 11개월로 단축했지만 원자력안전위원회 건설 허가를 받아야 해 이르면 내년 3월 원자로 시설 굴착공사 등 본공사가 시작될 수 있다. 박일준 전 산업부 차관이 지난 5월 교체된 것도 신규 원전 추진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이유가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적으로 원전 비중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한국만 ‘나 홀로 역주행’을 하는 실정이다. 에너지 시장조사기관인 블룸버그 뉴에너지파이낸스(BNEF)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세계 원전의 발전량 비중은 9.2%로 2000년(16.8%) 대비 큰 폭으로 감소했다. 정부·여당은 유럽연합(EU)이 지난해 원자력을 녹색분류체계(Green Taxonomy·그린 택소노미)에 포함한 점을 원전 확대 근거로 내세운다. 그러나 EU는 사용후핵연료 처분시설 확충 등 조건을 내걸어 신규 투자는 활발하지 않은 상황이다.
무엇보다 사용후핵연료 문제가 풀어야 할 숙제다. 2030년 한빛 원전을 시작으로 차례대로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이 포화할 예정이지만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시설’ 마련은 여전히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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