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세 번도 본다”… ‘그대가 조국’ 둘러싼 유령상영 의혹 [미드나잇 이슈]
“삶이 지루하고 갑갑한데 잔인한 비운의 고리 속으로 들어온 것이죠.” (다큐멘터리 영화 ‘그대가 조국’ 중 조국 전 법무부 장관)
10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인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이 영진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그대가 조국’의 상영기간(지난해 5월25일~10월1일) 심야·새벽 시간 상영 횟수는 총 577회이며 이중 199회가 전석 매진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1000만 관객을 돌파한 ‘범죄도시3’의 경우도 지난 6일까지 심야·새벽 시간 총 3471회 상영돼 단 3차례 전석 매진됐다는 점과 비교하면 ‘그대가 조국’의 유령상영 의혹이 명백하다는 게 국민의힘 입장이다.
또 ‘그대가 조국’ 상영 기간 박스오피스 순위를 보면 순위가 역주행하는 사례가 반복적으로 있었다. 지난해 7월 4일 55위(관객 수 21명)에서 하루 만에 8위(987명)로 치솟았다가 같은 달 12일 70위(11명)로 급락했다.
김 의원은 “관객 수 조작 등의 부정행위는 영화 생태계를 교란하는 파렴치한 행위로, 수사기관 등 관계 기관이 사실관계를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유령상영이란 영화관 입장객 수와 입장권 판매액 자료를 고의로 조작하는 것을 말한다. 영화관의 관객 수나 입장권 판매액 등의 정보가 영화 흥행 척도로 인식되고 추후 관객 선택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를 조작해 흥행영화 타이틀을 확보하는 것이다.
경찰의 이번 수사는 원래 ‘그대가 조국’을 겨냥했던 게 아니다.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지난달 쇼박스가 배급한 ‘비상선언’, 키다리스튜디오 ‘뜨거운 피’, ‘비와 당신의 이야기’ 등 4편에 대해 유령상영에 대한 수사에 들어갔다.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등 영화관 3곳과 롯데엔터테인먼트·쇼박스·키다리스튜디오 등 배급사 3곳을 압수수색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경찰은 이번 압수수색을 통해 문제가 된 영화뿐만 아니라 다른 영화 관련 배급사와 영화관 매출 및 상영정보, 매출전표 등 각종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대상이 현재 영화 70∼80편에 달한다고 한다.
단순히 전석 매진 사례가 많다고 유령상영이라고 단정 짓긴 힘들다. 다만 배급사나 제작사가 수익 등 목적을 위해 직접 영화관 좌석을 결제해 매진이란 결과를 만들어냈다면 상영 영화 순위를 매기는 영진위의 업무를 방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대가 조국’ 배급사 해명대로 단순히 관람 환경을 위해 일부 좌석을 배급사가 결제했다거나, 지지자들이 자발적으로 좌석을 결제한 뒤 실제 관람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업무방해죄를 적용하기 힘들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번 사례의 경우 업무방해의 고의가 입증되기 위해선 실제 영화관 매진에서 배급사가 구매한 좌석의 수와 실제 관객 수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 같다”며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결제내역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대가 조국’에 대해서는 정치 영화 특성상 다른 측면에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정치 영화가 다루고 있는 내용과 같은 성향 지지자들이 의사 표현의 한 방법으로 직접 영화를 보지 않더라도 예매만 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그대가 조국’은 조 전 장관 지지자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그대가 조국’ 제작팀이 시사회 개최 프로젝트를 위해 진행한 크라우드 펀딩은 시작 3시간 만에 후원자 900명에 목표액인 5000만원을 넘겼다. ‘그대가 조국’이 벌어들인 매출은 31억원에 달해 지난해 독립영화 중에선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웠다.
한 영화제작자는 “정치성이 짙은 영화들의 경우 지지자들이 첫 관람을 하고 두번째, 세번째는 예매만 해서 지지하는 마음을 표현하기도 한다”며 “특히 대형 배급사나 제작사가 아닌 독립영화 형식으로 저예산이 들어가다 보니 이런 부분까지 지지자들이 챙긴다”고 말했다. 이어 “‘그대가 조국’ 같은 독립영화를 대형 배급사의 상업영화와 동일하게 보는 것은 과하다”고 설명했다.
또 영화가 검찰과 윤석열 대통령을 거론하며 조 전 장관과 윤 대통령의 대결구도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가 일파만파 커진 부분도 있다. ‘그대가 조국’은 초입부분 윤 대통령의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 장면을 담으며 조 전 장관 일가 입시비리 수사가 정치적이라는 점을 영화 내내 강조하고 있다. 당시 수사를 함께 받은 관계자들과 조 전 장관의 지근거리에 있던 야당 측 정치인들이 나와 조 전 장관의 억울한 부분과 검찰의 강압적인 수사 관행을 지적한다. 반대 진영인 국민의힘에서 ‘그대가 조국’의 유령상영 의혹을 제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한 재선의원은 “‘그대가 조국’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정치적인 검찰의 잘못된 수사다. 그런 검찰의 수장이 윤석열 대통령이었다”며 “이런 점 때문에 국민의힘이 이렇게 무리하게 유령상영 의혹을 제기하고 수사를 압박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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