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000명 육박한 미신고 영아 수사, 사회안전망 강화 시급하다
경찰 수사 중인 ‘미신고 영아’가 1000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2015~2022년 전국에서 출산기록은 있으나 출생신고 기록이 없어 전수조사하는 2123명 중에 10일 현재 경찰청이 939건을 수사 중이라고 한다. 사망한 34명 가운데 15명은 친부모 등에 살해됐을 가능성이 있고,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 소재불명 아이도 3분의 1이나 된다니 참담하다.
이번 조사는 감사원 요청에 따라 미신고 영아 1%의 소재를 지방자치단체들이 확인하며 시작됐다. 지난달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이 드러나자 전수조사로 확대된 것이다. 이후 광주에서 신생아 시신을 쓰레기수거함에 유기한 친모가 구속됐고, 용인에서는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영아를 살해·유기한 혐의를 받는 친부와 외조모가 체포됐다. 거제에서도 갓난아이를 죽인 뒤 하천에 유기한 부부가 구속됐다. 소재불명인 아이들 조사가 더 진행되면 살해·유기·불법입양을 비롯한 범죄 연루자들의 전모도 윤곽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이들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것과 별개로, 우리 사회가 사각지대 아기들의 기본권을 보호하지 못한 책임은 무겁다. 부모가 출생신고를 않더라도 국가가 책임지는 ‘출생통보제’는 10년 넘게 답보하다가 이 사태가 터진 지난달 30일에야 국회서 부랴부랴 통과됐다.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취약계층이 아이를 안전하게 낳아서 기를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이 튼튼해야 한다. 특히 안전한 임신중지권을 보장받지 못한 채 비혼모가 된 이들은 혼외출산이라는 사회적 낙인과 경제난의 이중고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2013~2020년 영아 살해 사건 1심 피고인의 98%가 비혼모였다는 연구가 있다. 출산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은 비혼모들이 익명으로 의료기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보호출산제’ 도입은 국가가 충분한 지원을 제공하되 보완책에 그쳐야 한다. 유사한 제도를 운영 중인 독일에서는 태생에 대한 아동의 알권리도 존중하는 방책을 병행하고 있다.
더 나아가 한국의 경직된 가족제도도 돌아봐야 한다. 국내 혼외출생률은 2.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41.5%를 크게 밑돈다. 합계출산율 0.78명의 저출생 재앙과 영아 살해·유기라는 비극이 한 나라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 사회 재생산 기능이 크게 망가졌다. ‘정상가족’을 넘어 다양한 가족을 지원하도록 정부의 비상한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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