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집속탄
미국은 베트남전쟁 당시 북베트남의 물자 보급로인 ‘호찌민 루트’를 파괴하기 위해 라오스를 대대적으로 폭격했다. 1963년부터 10년간 58만회, 200만t의 폭탄을 쏟아부었다. 하나의 폭탄에 수십~수백개의 소형 폭탄(자탄)이 들어간 집속탄이 주로 사용됐다. 집속탄 1개로 축구장 서너개 면적이 초토화된다. 라오스에 쏟아진 자탄은 3억개로 추산되는데, 그중 8000만개가 불발탄이었다. 전쟁 후 불발탄으로 2만명 이상 숨지고, 지금도 매년 50명가량 민간인 피해자가 발생한다. 2016년 9월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라오스를 방문해 민간인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불발탄 제거 작업을 위해 9000만달러 지원을 약속했지만 라오스는 여전히 전쟁의 그림자 속에 있다.
집속탄은 정밀타격용이 아니다. 일정 지역을 무차별 타격하고, 민간인도 가리지 않는 비인도적 살상무기다. 2021년 집속탄으로 다치거나 숨진 이들의 97%가 민간인이고, 그 절반 이상이 어린이였다는 보고서도 있다. 이런 집속탄에 대한 국제사회 우려로 2010년 집속탄의 생산·비축·이전을 금지하는 협약(CCM)이 체결됐다. 123개국이 참여했는데, 미국·러시아·중국은 빠졌다. 한국·북한도 군사적 대치 상황을 이유로 서명하지 않았다.
미국이 지난 7일(현지시간)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155㎜ 곡사포에서 발사할 수 있는 집속탄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 전차와 장갑차를 상대하겠다는 우크라이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부족한 155㎜ 포탄 생산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과도기적 지원이며, “어렵게 결정했다”고 했다. 그러자 영국·캐나다·스페인 등 미국 동맹국들은 물론, 미국 민주당 내에서도 반대가 속출했다. 러시아는 이미 우크라이나 민간인 거주 지역에 집속탄을 사용해 국제사회 비판을 받았는데, 미국도 러시아를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없게 됐다.
미국은 지원 예정인 집속탄은 자탄의 불발률이 2.35%여서 불발률 30~40%인 러시아군 집속탄보다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군사기술이 진화했다지만 안전한 집속탄은 세상에 없다. 얼마나 많은 민간인이 위협을 받을지 걱정스럽다. 이 전쟁은 언제 끝날 것인가.
안홍욱 논설위원 a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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