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은의 신간] 참신한 개혁가인가 잔혹한 지배자인가
중동의 새로운 지배자」
중동의 새로운 중심
빈 살만의 모든 것
2017년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서 열린 미래투자 포럼에서 아랍의 한 젊은 왕자가 무대에 올라 초대형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5000억 달러 규모의 '네옴(NEOM) 시티' 건설 계획이었다. 홍해 인근 사막에 들어설 이 도시는 기후를 제어할 AI 기술과 태양에너지를 이용한 친환경 시스템, 주민 숫자보다 많은 로봇을 갖춘 '꿈꾸는 이들'을 위한 도시라고 그는 설명했다.
야심 차게 계획을 밝힌 이는 베일에 싸여 있던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MBS) 왕세자였다. 당시 32세였던 그는 사우디뿐만 아니라 나아가 중동 전체를 재조직하겠다며 변화를 주도하고 있었다.
MBS는 불과 몇 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이목을 끄는 지도자가 됐다. 많은 이들이 사우디의 권력이 사실상 그의 손에 있다고 말한다.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차기 국왕에 오를 것이고 그의 나이를 감안할 때 수십 년간 통치가 예상돼서다.
「무함마드 빈 살만: 중동의 새로운 지배자」는 MBS의 다층적 면모를 탐사보도 형식으로 다룬 책이다. MBS는 어떻게 그의 왕국과 그를 둘러싼 세계를 재구성하기 위해 거대한 힘을 행사했는지, 그가 설계하는 사우디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지, 새 권력자의 배후를 생생하게 파헤친다.
MBS는 왕세자에 오르기 전까지 왕위 계승과는 거리가 먼 한명의 왕자에 불과했다. 해외에서 공부하지도 않았고, 기업을 경영한 일도 없었으며, 군에 복무한 일도 없었다. 하지만 이 젊은 왕자가 정적을 제거하고 통제력을 확장하기까지는 3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아버지인 살만 국왕이 2015년 왕위에 즉위하자 자신의 권력 기반을 본격 강화하기 시작한 MBS는 여성 인권을 신장하고 영화관과 콘서트장 같은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확충하는 등 이슬람주의 사회관습을 완화했다. 네옴 시티 건설 계획과 탈석유 '비전 2030'을 추진하며 왕국의 경제 개혁에도 앞장섰다.
저자는 그가 새로운 지배자로 등극한 바탕에는 '극단적 권력 집중과 광범위한 사회·경제적 개혁'이 있었다고 말한다. "MBS가 이끄는 사우디는 여성이 운전하고 일하고 여행할 수 있는 나라가 됐지만, 동시에 더 많은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선 감옥에 갈 각오를 해야 하는 나라가 됐다. 젊은이들이 이성과 어울려 롤러코스터를 타고, 창업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나라가 됐지만, 정부 정책의 적절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반역으로 간주하는 나라가 됐다."
이런 그를 두고 저자는 '상반된 모습의 분열적인 인물'이라고 표현한다. 2017년 미래투자 회의에서 사우디의 변화를 선언하던 매력적인 모습과, 같은 시기 리츠칼튼 호텔에 수백명의 인사를 감금했던 모습 모두가 MBS의 실체라는 것이다. 국민에게 번영하는 미래를 가져다주기로 마음먹은 것도 그 자신이었고, 적이라면 단호하게 처단하려는 것 또한 그 자신이었다고 강조한다.
지난 6월 25일 현대건설과 사우디의 아람코가 50억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수주 계약을 체결하면서 '제2의 중동 붐'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사우디가 어떤 나라이고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 알기 위해선 권력의 중심인 MBS의 의사 결정 방식과 심리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책이 그런 궁금증을 해소하는 데 꼭 맞는 지침서가 될 것이다.
이지은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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