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외면한 정쟁에 군민 등만 터져"…'양평고속도 논란'에 뿔난 민심 [뉴스+]

오상도 2023. 7. 10.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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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혹은 풀면 되지 정치인답지 못해”
거리 곳곳 고속도로 정상화 현수막
주민 “관광객 몰리면 교통 마비
고속도로 없으면 정체 안 풀려”
국토부 “종점 부근 金여사 토지
장관 인지 시점은 6월 29일”

“애초에 이야기나 꺼내지 말 것이지 백지화라니요? 도대체 정부나 정치인들 생색이나 내려고 할 뿐 책임감이 없어요.”

장맛비와 폭염이 오락가락한 10일 경기 양평군 강상면 병산리에서 만난 부동산중개업소의 손모 대표는 잔뜩 불쾌지수에 노출된 표정이었다. 손 대표는 흥분한 표정을 감추지 않은 채 “양평은 이곳저곳에 선산과 문중 땅이 널린 곳”이라며 “현실을 모르는 ‘정치꾼들’이 주민을 어려움에 빠뜨렸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김건희 여사 일가의 땅은) 중부내륙고속도로에 인접해 분진과 소음 탓에 땅값이 바닥”이라며 “8년 전쯤 선산 땅을 내놓았다는 얘기까지 돌았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양평은 각종 규제로 힘들어하는 곳”이라며 “땅값도 오르지 않고 이제 겨우 한두 건 거래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고 했다. 병산리는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안의 종점으로 지목된 곳이다.
“양평고속도로 추진 재개하라” 10일 경기도 양평군 양평군청 광장에서 열린 서울∼양평 고속도로 추진 재개를 위한 범군민대책위 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고속도로 중단(은) 양평행복 중단’ 등의 내용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정부와 정치권을 규탄하고 있다. 양평=최상수 기자
같은 강상면 교평리의 면사무소 앞에서 마주한 60대 주민 강모씨는 주무 부서의 수장인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을 비판했다. 그는 “최종 책임을 져야 할 장관이라는 사람이 ‘직을 건다’는 가벼운 발언으로 양평은 물론 나라를 혼란에 빠뜨렸다”면서 “의혹이 제기되면 풀려고 노력해야지 백지화 선언을 하고 빠져나가는 사람이 장관이냐”고 힐난했다. 이어 “도대체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없고, 서로 상대방만 욕하고 있다”며 “정치권의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 백지화를 놓고 혼란에 빠진 양평군에는 ‘양비론’이 팽배했다. 원안 노선이 지나는 양서면과 수정안 종점인 강상면 주민 모두 허탈함에 혀를 내둘렀다. 전·현 군수 간 책임론이 오가는 가운데 주민 대다수는 정치권을 향한 비판을 내놓았다. 도심 쪽인 강서면 일대 도로에는 서울~양평고속도로 정상화를 촉구하는 현수막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현수막 밑으로는 읍내로 진입하는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50대 주부 김모씨는 “주말에는 읍내로 진입하기 위한 차량 행렬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라며 “강상면에서 양평터미널까지 가는 데 10분 걸리는 거리가 40분 가까이 늘어난다”고 전했다.

강원도로 향하거나 수도권으로 돌아오는 관광객이 몰리는 여름철이면 시내 교통이 마비될 정도라고 했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모습. 뉴스1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이 ‘김건희 여사 일가 특혜 의혹’을 제기하고 원희룡 장관이 사업 백지화를 선언하면서 들끓었던 양평의 여론은 이날 열기가 더해진 듯했다. 그러면서도 양평군이 자체 국회의원 선거구를 두지 못한 것에 대한 자조와 푸념도 포착됐다. 일부 주민은 “여주·양평이 아닌 양평에 선거구가 따로 있거나 12만 인구가 두세 배만 됐어도 이렇게 쉽게 백지화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양평군은 수도권에서 강원 강릉까지 이어지는 국도 6호선에서 양평지역을 가로지르는 구간의 평일 교통량을 3만5000대 가까이로 잡고 있다. 행락객이 늘어나는 주말에는 정체가 빚어진다. 교평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정모씨는 “서울~양평 고속도로가 숙원사업이 된 건 차량 분산효과에 대한 기대 때문”이라며 “고속도로가 뚫리지 않으면 정체가 풀리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군민대책위 발족식이 열린 군청 앞 회전교차로와 인근 사거리, 양평역 등 중심지 곳곳에는 사업 재추진을 요구하는 현수막들이 즐비했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들은 “사업 백지화 선언 이후 지역 민주당 관계자들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근을 지나던 농민 최모씨는 “정치적인 성향을 드러낸 집회”라고 비판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오른쪽 두번째)이 10일 세종시 KT&G 세종타워에이 빌딩에서 지방시대위원회에서 열린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하여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양평고속도로 발언이 나오자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다. 뉴스1
변경된 사업계획안에서 양평IC 예정지로 지목된 강상면은 오히려 조용한 분위기였다. 이곳으로 향하는 도로에선 단 3개의 관련 현수막을 볼 수 있었다. 이 중 2개는 민주당과 국민의힘 당원들이 내건 것이었다. 전원주택 개발지와 국밥집 등이 이어진 도로는 한적하기까지 했다. 강상면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60대 최모씨는 “살지도 않는 사람과 외지인들이 애꿎은 흠집내기에 바쁘다”며 “사실 IC 들어오는 건 큰 변수도 안 된다”고 했다.

이날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세종시 공동주택 건설현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의 정치 공세가 지속되면 사업 재추진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원 장관은 “지금처럼 거짓 정치 공세가 계속되면 사업을 하려 해도 할 수가 없다”면서 “그 점에 대해 명확한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국토부는 배포한 참고자료를 통해 원 장관이 대안의 종점 부근에 김 여사 일가 토지가 있다는 것을 인지한 시점은 지난달 29일이라고 밝혔다.

양평=오상도 기자, 박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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