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론 끝 ‘일반철도-고속철도 통합 운영’을 결정하다
철도운영·선로, 고속철·일반철
분리할지 통합할지 등 두고서
청와대서 철도구조개혁 ‘격론’
김동건 “운영-선로 분리가 대세”
문재인 수석, 분리론 적극 반대
오건호 “조직 대신 회계분리를”
최연혜, 분리에서 통합으로 전환
‘철도운영과 선로부설 분리하되
일반철-고속철은 통합운영’ 가닥
고속철 개통 뒤 철도공사 출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세계는 국유화가 대세였다. 철도, 우편, 전화, 전력, 가스 등이 대개 국가에 의해 운영됐다. 철도의 민영화 문제가 세계적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1990년대였다. 세계은행이 민영화가 정답이라는 식으로 강력 추천하면서 각국에서 민영화가 새로운 시대적 조류로 떠올랐다. 영국은 1만5000㎞ 길이 철도를 100개 회사로 쪼개어 민영화했다가 관리 불능에 빠져 열차충돌 사고가 일어나는 등 엄청난 후폭풍에 시달렸다. 한국에서도 김영삼, 김대중 정부 때 철도 민영화 문제가 간헐적으로 떠올랐으나 뚜렷한 결론 없이 표류하고 있었다. 이 문제를 본격 검토하여 결론을 내린 게 참여정부였다.
2003년 4월24일(목) 오후 3시 청와대 정책실에서 철도구조개혁 첫 토론이 있었다. 상하(철도에서 상은 철도운영, 하는 선로 부설) 분리 문제를 두고 철도전문가 양아무개 박사, 철도대 최연혜 교수(뒤에 한국철도공사 사장, 새누리당 국회의원, 현 한국가스공사 사장), 한국개발원(KDI) 임원혁 박사는 상하 분리를 주장했으나 문재인 민정수석은 납득할 수 없다며 반대했다. 현재의 철도청 체제에서 공사로 전환하는 안과 1년 뒤 개통될 고속철도와 일반철도는 통합운영하자는 것이 다수의견이었다.
4월28일(월) 오후 3시 반 제2차 철도 회의가 열렸다. 외부 전문가로 김동건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손의영 서울시립대 교수, 그리고 민주노총의 이론가 오건호 실장 등이 참석했고 정부에서는 문재인 민정수석, 권오규 정책수석, 최재덕 건교부 차관, 김세호 철도청장, 기획예산처 서동환 국장이 참석했다. 오건호 실장은 조직분리, 상하분리보다 회계분리를 주장했다.
김세호 철도청장은 “상하분리는 고속철이 적어도 1만㎞ 이상 상당히 운행된 다음에야 시작해야 한다. 기존 철도와 고속철은 1단계에서는 47% 공동운영하면서 하나의 관제탑에서 관리할 계획이다. 20량 가까운 고속철도 수지를 맞추려면 기존 철도와 연계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1999년 철도구조개혁위원장을 맡았던 김동건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1998년 국민의정부 때 민영화 논의를 시작해서 3개 회계법인에 연구용역을 의뢰해 2000년 12월 최종안이 확정됐다. 결론은 느슨한 공사화, 그리고 상하분리였다. 상하분리하되 선로의 유지보수와 개량은 외주에 맡기는 것으로 결정했다. 기관분리는 불가하고 기관통합이 옳다. 그리고 회계분리가 가능하다 하더라도 효율적일지 의문이다”며 오건호 실장의 회계분리론에 반대했다.
손의영 교수는 철도 문제에서는 현실보다 원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선은 상하분리이고 차선은 공사화하면서 고속철도와 일반철도로 수평분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청와대 노동개혁팀장을 맡은 박태주 박사는 “철도 개혁에서 거대노조의 출현을 우려할 필요는 없다. 유럽 운수노조는 ITF라는 국제 산별노조로 조직돼 있다. 한국에서 과거 구조조정하면서 노조를 배제해온 것이 잘못이다”라고 비판했다.
기획예산처 서동환 국장은 “결국 경영수지 개선 여부가 관건인데 구조개혁 뒤 비용이 상승할까 걱정이다. 철도청에서 철도공사로 바뀌면 근로기준법상 3조 2교대로 근무하게 되고 비용이 상승할 우려가 있다. 회계분리하면 운영 적자가 감소할 것인지 장기적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4월30일(수) 10시 청와대 집현실에서 대통령 주재 철도구조개혁 회의가 열렸다. 최종찬 건교부 장관이 경과보고를 했고, 권오규 정책수석이 1, 2차 토론회를 요약보고했다. 김동건 서울대 교수가 국민의정부 때 철도구조개혁위원회 2년 반 활동을 요약보고했다. 김 교수는 “과거 1960년대에는 상하통합이 대세였으나 최근 세계적 추세는 상하분리다. 선로 건설을 국가가 맡고, 운영은 분리해 먼 미래에는 민영화해야 한다. 정책 흐름의 일관성이 있어야 하고, 6~7년 전에 폐기된 안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토론자로 오건호 실장과 최연혜 교수 등이 참석했다. 김동건, 최종찬, 권오규는 상하분리를 주장했고, 오건호는 회계분리를 주장했다. 오건호는 유럽 다수 국가가 조직분리보다 회계분리로 가고 있으며 1991년 유럽연합(EU)에서 회계분리 지침을 내놓았다며 “한국에서 조직분리가 곤란한 이유는 첫째, 한국 선로는 고밀도이며, 시설과 운영은 밀접한 교감이 있어야 한다. 한국은 산악지형이 많고 신호시설 현대화도 부족하다. 둘째 전철화, 복선화 등 개량사업이 많아 안전 문제가 심각하다. 내년 개통할 고속철도와 일반철도는 당연히 통합해야 한다. 분리 때 수지가 안 맞는 다수 지선은 고사할 텐데 고속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선이다. 단일 공사로 가되 예를 들어 방송공사처럼 공익법인화해 공익이사를 두고 공익성 모델로 가자고 주장했다. 프랑스와 같은 민주적 경영 모델을 만들자”고 매우 진보적인 주장을 폈다.
한편 지난 회의 때 분리를 주장했던 최연혜 교수는 이번엔 통합을 주장했다. 일반철도와 고속철도 모두 통합을 주장했다. “철도는 흑자 전환이 거의 불가능하다. 투자규모가 크고 회수기간이 긴 특징이 있다. 인건비 등 비용 절감은 한계가 있다. 미국이 심지어 교도소를 민영화하면서도 국영철도(Amtrak)의 정부 지분을 계속 유지하면서 1년에 1억달러씩 적자를 보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민영화하는 이유는 경쟁을 일으켜 효율성을 높이고 비용을 절감하자는 것인데 철도의 경우에는 민영화하든 안 하든 어차피 경쟁이 없지 않나. 민영화를 통한 비용 절감이 없다면 도대체 뭐 때문에 민영화를 하느냐”고 근본적 질문을 던졌는데 아무도 대답 못했다. 노 대통령이 철도의 상하분리는 책임성이 높아진다는 이유로 쉽게 동의하면서 “일반철도와 고속철도를 분리해서 경쟁이라도 시켜야 효율성이 높아지는 것 아니냐”라고 비슷한 질문을 다시 했다. 대통령 질문에 답하는 사람이 없기에 내가 나서서 헝가리의 경제학자 야노스 코르나이(Janos Kornai)가 말하는 연성예산제약(soft budget constraint)(사회주의 기업의 경우 예산이 있기는 하나 적자를 봐도 망하지 않고 생존하므로 고무줄 예산제약이라는 뜻) 이라는 개념으로 민영화 이유를 설명하자 대통령이 비로소 수긍했다. 그러자 갑자기 회의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일반철도와 고속철도는 경쟁을 포기하고 통합하고, 상하는 분리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회의가 끝나자 최종찬 건교부 장관이 나한테 오더니 악수를 청하면서 “몇년간 앓던 이가 빠진 듯하다”고 기뻐했다. 철도구조개혁 문제를 놓고 몇년간 여러 견해가 백가쟁명하던 것이 이 회의에서 최종 정리가 된 셈이다.
7월12일(토) 11시 김세호 철도청장이 이듬해 4월 고속철 개통 준비 상황을 보고하러 왔다. 그런데 고속철도공단이 인력 맞교환도, 차량을 넘겨주지도 않는 등 비협조 문제가 많은데 건교부도 나 몰라라 한다고 했다. 일이 안 돌아가니 문재인 민정수석은 대통령 주재 회의가 필요하겠다고 했다. 7월25일(금) 10시 청와대 정책실에서 고속철 대책회의를 열었다. 최재덕 건교부 차관, 김세호 철도청장, 이아무개 고속철도공단 이사장, 김아무개 교통국장이 참석했다, 김세호 철도청장이 웃으며 “이 회의 소집공고가 나간 뒤 급속히 협조가 잘 된다”며 지금은 별문제 없고 추후 지방행사에서 고속철 문제를 한번 더 다루면 좋겠다고 하기에 그리하기로 했다. 청와대가 나서야 일이 돌아간다면 그것도 문제다. 고속철은 예정대로 2004년 4월1일 개통돼 우리도 고속철 국가 반열에 올랐고, 한국철도공사는 2005년 1월1일 출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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