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수’ 버스 떠난 거리에서 손을 들다

이정애 2023. 7. 10.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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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이 지난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과의 면담을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뉴스룸에서] 이정애 | 스페셜콘텐츠부장

버스는 떠났다. 2박3일 일정으로 방한한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9일 그 ‘버스’를 타고 떠났다.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에 대한 한국민들의 우려를 이해한다’더니, “그 물(‘알프스로 처리한 오염수’를 그렇게 말한 거다)을 마실 수도 있고 수영할 수도 있다”, “계획대로 방류가 이뤄진다면 앞으로 수산물 오염은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일본 방류 계획을 옹호하는 듯한 말만 풀어놓고 갔다. 그것도 국내 언론 5곳만 각자 따로 불러서!

그는 방사성 핵종을 걸러내는 장치인 다핵종제거설비(ALPS·알프스) 성능을 어떻게 검증했는지, 일본을 뺀 나머지 나라들이 피해를 보게 되는데 대체 무엇으로 오염수 방류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것인지는 해명하지 않았다.

‘후쿠시마 원전의 삼중수소 해양 방류를 문제 삼으면 다른 나라 원전도 곤란해지니 원전을 지속해서 확대하기 위해 오염수 방류를 안전하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니냐’(<도쿄신문>)는 말이 일본에서도 나오는 지경이다. 그런데도 그는 그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원자력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이라며 귀를 막았다.

소통하겠다더니 ‘톤 앤드 매너’ 모두 빵점이다. “방류는 일본 정부의 국가적 결정이며 이 보고서는 해당 정책을 권장하거나 지지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싶다”(국제원자력기구 최종보고서 서문)던 말은 어디 갔나 싶을 정도다. ‘<한겨레>와는 어째서 인터뷰 안 한 겁니까’ 따지고 싶었는데 어차피 끝난 게임, 버스 떠난 거리에서 손은 왜 드나 하는 심정이 돼버렸다.

국제원자력기구 최종보고서 발표→한국 정부 자체 검토 결과 발표→그로시 사무총장 소통까지, 절차는 다 밟았다. 이제 일본 오염수 방류는 그야말로 초읽기다.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NRA)는 지난 7일 도쿄전력에 오염수 방류설비 ‘사용 전 검사’ 합격증도 발부했다. 버튼만 누르면 콸콸콸콸, 30여년간 이뤄질 133만톤 오염수 방류 개시다.

정부는 아직 방류에 관한 찬반 입장을 최종적으로 확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일본의 계획대로 방류가 이뤄진다면 문제 될 게 없다’고 전제한 순간 이미 답은 정해졌다. “일본이 최종적인 방류 계획을 어떤 내용으로 확정하는지 확인”하고 “일본 측 처리 계획에 변동이 있다면 추가 검토도 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가 추가 검증 요구를 한들, 일본 정부가 이를 수용해 방류를 미룰 것 같지도 않다. 지난 5월 한·일 두 나라 정상의 후쿠시마 원전 현장 전문가 시찰단 파견 합의 순간에도, 일본 쪽은 ‘한국 쪽 검토 결과를 보고 방류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여지조차 두지 않았다.

사실, 버스는 훨씬 더 오래전 떠났다. “(오염수) 처분 방식 선택 문제는 ‘과거’에 이미 논의가 완료됐다”(6월27일, 박구연 국무조정실 1차장,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관련 정부 일일브리핑)고 판단한 그 순간, 이미. 그 과거는 정확히 언제인가. 정부는 “지금은 오염수 해양 방출이 정말 안전한지 일본 정부와 국제사회가 함께 검증하는 단계”이며 “이는 ‘지난 정부’부터 일관되게 추진해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이 지난 4일 일본의 결정은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라며 “새로운 처리 방법을 모색하자”고 한 것과는 사뭇 다른 태도다. 사사건건 지난 정부를 탓하며, 전 정부의 정책을 손바닥처럼 뒤집던 윤석열 정부가 어째서 이 문제에서만큼은 정책 일관성을 지키는지 의문이다.

중국처럼 시원스럽게 ‘반대’를 외치지 못하는 정부의 고뇌 어린 속사정을 모를 바는 아니다. 그래도, 국제원자력기구나 정부 검토 결과는 어디까지나 일본 정부가 오염수 속 방사성 물질을 기준치 이하로 낮춰 방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는지 여부만을 점검한 것이라는 점은 기록해야겠다. 우리 정부마저 30년간 깊은 바다 생태계에서 벌어질 ‘잠재적 위험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은 특별히 꾹꾹 눌러 적는다. “일본 정부의 계획대로” 무탈하다면 천만다행이지만,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정부가 약속한 대로 지속적이고 철저한 사후 감시와 검증을 해야 한다. 버스 떠난 마당에, 손을 든 건 그 때문이다.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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