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본·중수본도 구별 못한 주무장관…헌법적 징벌 당연
[왜냐면] 천윤석 | 변호사
이태원 참사는 세월호 참사와 닮았다. 수많은 사람이 재난 상황에 처했고, 이들을 구할 충분한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국가는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참담한 결과가 발생했다. 심지어 참사 뒤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조차 닮았다. 그래서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당국이 재난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해 희생자가 늘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재난 대응방식의 문제점이 드러났고, 희생은 재난 대응방식을 개선하는 밑거름이 됐다. 그같은 과정을 거쳐 탄생한 것이 현행 재난및안전관리기본법(재난안전법)이다.
재난안전법의 골격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통합 관리방식이다. 이전에는 재난이 발생했을 때 주무부처가 각자 자기 일을 알아서 하는 방식으로 대처했다. 그러다 보니 행정력을 불필요하게 중복 투입하거나 정작 필요한 곳에는 투입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이에 재난 관리를 총괄적으로 지휘하는 컨트롤타워를 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컨트롤타워 지휘 아래 각 부처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 보다 효과적으로 재난에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난안전법은 행정안전부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상시 설치하고 중대본이 모든 재난에 관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도록 했다. 그리고 재난의 유형에 따라 주무부처에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를 둬 상황 관리 및 수습업무를 담당하게 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재난이 발생하면 교육부에 중수본을 설치하고, 군부대에서 재난이 발생하면 국방부에 중수본을 설치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중대본-중수본 체제는 재난안전법의 뼈대라 할 수 있다.
이태원 참사의 경우 중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주무부처는 행정안전부다. 어떤 재난이든 행정안전부에 중대본을 설치하기 때문에, 결국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중대본과 중수본을 설치하고 가동하는 것은 모두 행정안전부 장관의 의무다.
그런데 이상민 장관은 이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중대본이 가동한 때는 이태원 참사 다음날인 2022년 10월30일 새벽 2시30분이었다. 사망자가 발생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4시간 이상, 이상민 장관이 참사 발생을 인지한 때로부터 2시간 이상 지난 시점이었다. 그나마 국무총리가 중대본 가동을 주관했고, 이상민 장관은 뒤늦은 가동 과정에서조차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 이상민 장관은 이처럼 중대본 가동이 늦어지게 된 이유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현장 긴급구조 업무가 중요할 뿐이라며 중대본의 역할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중수본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이상민 장관은 중수본을 아예 설치하지도 않았다. 그는 행정안전부에 중수본을 설치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중수본을 중대본으로 “확대 운영”했다고 주장했다. 중대본과 중수본은 기능과 역할이 달라 서로 대체할 수 없다. 게다가 이상민 장관은 중대본 가동 과정에 아무런 역할도 안했는데 “확대 운영”했다는 것이 무슨 말일까.
이태원 참사는 뜬금없이 터진 돌발사고가 아니다. 거리두기 해제 뒤 첫 핼러윈 축제여서 이태원 거리에 인파가 몰릴 것이라 예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 경찰도 대책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올렸다. 실제로 이태원 참사 전날 저녁 같은 장소에서 사람들이 인파에 휩쓸려 넘어지고 다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 다음날 같은 자리에서 158명이 사망했다. 그 상황에서 행정안전부 장관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장관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서울 한복판에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이것이 헌법적 차원의 문제라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장관에게 헌법적 차원의 징벌을 가하는 것은 곧 헌법질서를 회복하는 과정인 것이다. 그것은 희생이 헛된 것이 되지 않도록 하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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