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으로 본 경제] 가뭄으로 운항 차질 빚는 파나마 운하
수년 전만 해도 하루 한번 같은 장소를 찍기 어려웠지만 저가 발사체가 늘어나고 소형위성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제는 지구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실시간 감시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국방 분야는 물론 재해와 재난 감시, 손해 사정, 산업 동향 분석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위성 영상이 활용되고 있다. 국내 위성 서비스 기업 나라스페이스와 조선비즈는 우주 데이터가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우주경제 시대를 앞두고 인공위성 영상 데이터와 국방과 산업, 경제, 사회 등 다양한 분야를 접목해 분석하는 ‘위성으로 본 세상’과 ‘위성으로 보는 경제’라는 ‘스페이스 저널리즘’ 시리즈를 매주 공개할 예정이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파나마 운하가 최근 10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겪으며 선박 운항에 지장을 받고 있다. 운하 운용에 필요한 물을 공급하는 호수 수위가 강수량 부족으로 최저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운하 통과를 이용하려는 선박들이 줄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운하를 운영하는 파나마운하청은 대형 선박의 선적량에 대한 제한에 들어갔다. 전문가들은 강수량 부족이 장기화하면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는 컨테이너 선박에 제한이 생기면서 전 세계 공급망에 차질을 빚고 물류비가 올라갈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10일 인공위성 서비스기업 나라스페이스가 공개한 파나마 운하 인근을 촬영한 위성 레이더 영상과 광학영상을 보면 운하에 물을 공급하는 상수원인 알라후엘라호의 호수 수위가 1년 새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파나마 운하는 길이가 82km로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주요 물류 통로로 사용되고 있다. 운하는 차그레스강을 막으면서 형성된 가툰호와 파나마 만에 건설한 미라플로레스호 사이에 15㎞를 뚫어 만든 쿨레브라 수로로 이뤄져 있다. 가툰호를 중심으로 태평양쪽과 대서양쪽에 각각 갑문 3개씩 모두 6개 갑문으로 이뤄져 있다. 배가 운하를 통과하면서 갑문에 들어서면 문을 닫고 다음 갑문과 수위를 맞추기 위해 물을 끌어다 넣거나 빼는 방식이다.
파나마운하청에 따르면 선박 한 척이 운하를 통과하면서 갑문을 열 때 필요한 물의 양은 약 2억L에 이른다. 하루 평균 37척의 선박이 몰려오는 파나마 운하에서는 매일 90억L가 넘는 물이 필요한 실정이다.
파나마운하청은 올해 들어 파나마 전역이 가뭄에 시달리면서 가툰호의 수위가 떨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파나마 정부는 또 물을 원활하게 조달하기 위해 인공호수를 만들었는데 알라후엘라호는 차그레스강 상류에 매든댐을 지으면서 형성된 인공 호수다.
나라스페이스 어스페이퍼팀이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해당 지역의 수위 변화를 집중적으로 위성 영상으로 모니터링한 가툰호는 물론 상수원에 해당하는 알라후엘라호 역시 심각한 가뭄의 영향을 받아 수위가 낮아진 것으로 확인됐다.
유럽우주국(ESA)이 운영하는 합성개구레이더(SAR) 위성인 센티널-1이 촬영한 알라후엘라호의 영상을 살펴보면 호수 수위는 지난해 4월에 이어 6월 눈에 띄게 낮아진 것으로 포착됐다. SAR위성은 구름을 투과할 수 있을 만큼 빛보다 긴 파장의 전파를 쏴서 되돌아오는 신호를 이미지로 만드는 방식이다. 빛이 없는 밤에도 물체를 포착할 수 있고 구름을 투과할 수 있어 구름 낀 날씨에도 땅 위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올해 4월 센티널-1이 촬영한 알라후엘라호 수위를 보면 지난해 6월보다 훨씬 수위가 내려갔고 이달 16일 촬영한 영상에서도 지난해보다 수위가 내려간 상태가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실상 지난해 4월 이후 운하가 원활하게 운용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으로 확인된 셈이다.
파나마운하청은 기록적인 가뭄으로 운하 수위를 조절하는 물이 부족해지자 지난 4월부터 선박 좌초를 피하기 위해 선박의 최대 흘수(선박이 물 위에 떠 있을 때 물속에 잠기는 선체 깊이)를 제한하는 조치를 내렸다. 이것은 연초 이후로 이제 다섯 번째 조정에 해당하는 조치다.
당국은 올해 가뭄 내내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최대 선박인 네오파나맥스의 경우 선박이 물에 잠길 수 있는 깊이를 13.4m로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선박 흘수가 제한되면서 대형 컨테이너선들은 낮은 수위의 갑문을 통과하기 위해 컨테이너 적재량을 기존보다 20~40% 가까이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선박 회사들은 처음부터 화물 적재량을 줄이는 것 외에도 갑문 앞에서 일부 컨테이너를 내리고 기차로 운하 반대편까지 옮긴 뒤 되싣는 방식도 쓰고 있다.
파나마운하청은 매일 운하를 건너는 배의 수도 제한하고 있다. 현재 하루 약 30~31척의 선박이 수로를 통과하도록 허용하고 있는데 이는 가뭄 전 36~37척이던 데서 크게 줄어든 수치다.
실제로 고해상도 지구관측위성인 플레이아데스 네오와 SAR위성인 센티널-1 위성을 활용해 파나마 운하의 대서양 쪽 관문에 해당하는 콜론항을 모니터링한 결과에서도 운하 앞에서 대기 중인 선박 수가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스페이퍼팀은 지난해 5월 대서양 관문에 있는 파나마 콜론항 부근에 정박해 선박을 탐지했다. SAR위성인 센티널-1의 영상을 통해 확인해 본 결과, 구름이 잔뜩 낀 바다 위로 광학위성 영상으로는 확인할 수 없었던 선박들이 탐지됐다.
파나마 지역은 중미와 남미를 연결하는 지역으로 열대 기후를 가지고 있어 대체로 강수량이 많고 구름이 많이 나타나는 지역이다. 이런 이유로 일반 광학카메라로 포착한 RGB 위성 영상만으로는 지상이나 해상 관측이 어려워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가시광선 영역대를 사용하는 광학 위성과 달리 장파장의 마이크로파를 이용해 지표를 관측하는 SAR위성을 활용하는 이유다.
이번에 공개된 보고서를 보면 2022년과 2023년의 위성 영상을 비교해 보면 선박의 수가 변화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5월부터 6월까지 콜론항을 입출입한 선박을 SAR 영상으로 촬영한 결과 선박수가 대체적으로 꾸준히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6월에는 바다에 대기 중인 선박 수가 급격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선박 운항 데이터 서비스인 심플로비스에 따르면 6월 들어 콜론항에 대기 중인 선박수는 전년보다 17.4%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태평양 쪽 파나마만에 대기 중인 선박 수도 17% 줄어들며 콜론항처럼 선박수가 급격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9일 파나마운하청에 따르면 운항 제한 조치 이후 예약 선박과 예약하지 않은 선박을 포함해 모두 98척의 선박이 통과 대기 중인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나라스페이스 어스페이퍼팀은 “SAR위성 영상 정보만으로는 파나마 운하 인근에 정박한 선박 수가 감소한 원인에 관해서는 판단할 수 없다”면서도 “2023년 파나마 가뭄의 영향으로 시행된 선박 흘수 제한 조치로 인해 운송비가 증가하면서 물류 업체들이 해당 항로의 물동량을 분산시켜 파나마 운하를 이용하는 선박 수가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 밖에도 ‘심플로지스’가 제공하는 수출입 공급망 리스크 분석 플랫폼 ‘라카이브’에 따르면 대기 중인 선박은 감소했지만 항구 근접 지역에 대한 항만 복잡도는 일시적으로 커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흘수 제한 조치가 단행되면서 화물 환적 과정에서 예정된 선복량(배에 실을 수 있는 화물의 총량)보다 적게 환적을 진행하다보니 대기 시간이 길어졌거나 해운사들이 선박 할증료 때문에 감속 운항을 실시하면서 운하를 지나는 항로의 속도가 전반적으로 느려져 병목 현상이 발생했을 것으로 어스페이퍼팀은 분석했다.
1914년에 개통한 파나마 운하는 글로벌 물류의 동맥이자 전 세계 교역량의 4~5%를 책임지는 주요 통로다. 파나마 운하는 태평양과 대서양 사이의 운송을 위한 중요한 관문으로, 아시아에서 미국으로 화물을 옮길 때 항해에 위험한 남아메리카 끝 케이프혼을 거치지 않도록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왔다.
하지만 엘니뇨 현상이 일어날 때마다 강수량이 감소하면서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파나마는 세계에서 가장 습한 국가 중 하나이지만, 파나마 운하 당국에 따르면 올해 첫 5개월 동안 운하 주변 지역의 누적 강우량은 연평균보다 47% 낮았다. 파나마운하청에 따르면 이 지역의 강우량은 지난 20년 동안 지속해서 감소했다.
파나마 운하는 통상 5월에 수위가 최저치를 기록하고 6월과 7월에 다시 올라간다. 하지만 기상학자들은 운하 중앙에 있는 가툰 호수의 수위가 7월에 사상 최저치를 기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파나마 운하 유역의 알라후엘라호 역시 피해가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해운업계는 컨테이너 선적량을 줄이거나 화물 운송 비용을 인상하는 등 비상이 걸렸다. 선박 회사들은 화주들에게 늘어나는 비용 부담을 전가하기 시작했다. 컨테이너 1개당 평균 600달러를 더 청구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파나마 운하를 지나는 항로의 운송비가 상승하면서 물류 업체들도 물동량을 분산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최근 수주간 철도 운송을 통한 물동량이 20%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수에즈 운하와 비교했을 때 약 일주일 정도의 소요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 당장 선박 수가 줄어들더라도 지속해서 선박들이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물류 전문가들은 병목현상에 따른 물류 지연으로 이듬해 물가 상승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그동안 운하를 이용해 운송되던 브라질산 육류와 칠레 와인, 에콰도르산 바나나가 칠레산 구리, 미국 걸프 연안산 액화 천연가스 등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운하 통행이 막히면서 세계적인 물류 대란 사태가 벌어진 일은 있다. 2021년 3월 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그린’이 6일간 수에즈 운하를 막으며 좌초되면서 공급망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당시 400척이 넘는 선박의 운항이 지체되면서 수십억 달러의 손실을 입힌 것으로 나타났다. 파나마운하청에 따르면 지정학적 긴장과 운송 경로 변경으로 인해 2023 회계연도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는 화물량이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
머스크나 중국 코스코그룹, 로이드사는 아직까지 물류를 분산할 계획이 없지만 가뭄이 지속되면 운송 경로 변경이 불가피하다고 밝히고 있다. 머스크 대변인은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에서 “파나마 운하의 낮은 수위는 공급망을 통해 파급 효과를 일으키는 기후 변화의 영향을 보여주는 분명한 예”라고 말했다.
한편 멕시코와 니카라과는 늘어나는 물동량을 소화하기 위해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독자적인 운하 선설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 자료
나라스페이스 어스페이퍼 https://ep.naraspace.com/
심플로지스 https://larchive.simplogis.com/community/news-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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