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값 100억' 박건우도 예외없이 2군행...워크 에식이 도대체 뭐길래? [스포츠텔링]
현역 KBO 리거 중 통산 타율 2위, 국가대표 외야수, 몸값 100억. 연패로 허덕이는 팀에서 '부동의 에이스' 역할을 해줄 것만 같았던 이 선수.
지난 3일, 전격 2군행을 통보받았습니다. 어디 아픈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정상 궤도에 오르고도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한참 어린 후배들에 질문하고 배우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던 '맘바 멘탈리티'의 코비 브라이언트.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그는 매일 새벽까지 60km가 넘는 거리를 자전거로 달린 뒤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다시 농구 훈련 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일찌감치 서른 살부터,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헌액 얘기를 들어온 애런 저지.
가장 부진했던 시절의 타율을 핸드폰에 띄워 두고 훈련한 끝에 지금은 뉴욕 양키스를 대표하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슈퍼스타가 됐습니다.
통산 승률 81.97%, 103개의 커리어 타이틀.
로저 페더러는 매일같이 테니스를 가까이 한 덕에 40대까지 선수 생활을 하고도 역대 최고령 세계 1위를 거머쥐는 등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테니스계의 '전설'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세 선수의 특징을 관통하는 개념, 바로 워크 에식(Work Ethic)입니다.
워크 에식, 직역하면 직업 윤리입니다. 주로 '프로 의식'이라는 단어로 의역되곤 합니다.
스스로 '프로'임을 인식하는 데에서 비롯되는 엄격한 자기 관리와 근면 성실함.
요즘 워크 에식은 성과나 성적만큼 중요한 가치로 여겨집니다. 스포츠에선 더 그렇습니다.
프로 선수들에게 돈만큼이나 중요한 건 팬들의 사랑과 응원일 텐데, 스포츠 팬들에게 좋은 선수와 나쁜 선수를 판가름하는 척도가 바로 이 '워크 에식'입니다.
NC 다이노스 박건우는 월요일이었던 지난 3일, '2군행'을 통보받았습니다. 갑작스러웠고, 충격적이었습니다.
최근까지만 해도 상위권 도약을 꿈꿨던 NC 다이노스였기에, 게다가, 거듭된 연패로 에이스 박건우의 활약이 절실했던 상황이었기에, 팀의 결정은 언뜻 의아하게 들렸습니다.
박건우는 아프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못 하지도 않았습니다.
타율은 2할 8푼 6리였고, 출루율과 장타율을 합친 OPS는 팀 전체에서 1위였습니다.
기량에는 딱히 문제가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통보 하루 뒤, NC 다이노스의 강인권 감독이 취재진 앞에 섰습니다.
"고참 선수는 실력뿐 아니라, 그에 걸맞은 덕목도 갖춰야 한다. 박건우 선수에게 아쉬움이 컸다. '원 팀'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해선 안 된다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선수를 길들이기 위해서도 아니고, 다른 선수들의 기강을 잡기 위해 본보기를 보이는 것도 아니라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취임 당시부터 '하나의 팀'을 강조한 강 감독이 기준에서 벗어난 박건우를 가차 없이 2군으로 보낸 겁니다.
강 감독의 이번 결정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유. 또, 박건우를 향한 시선이 대체로 곱지 않은 이유.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두산 베어스 소속이던 지난 2021년 6월, 박건우는 컨디션 난조가 아니었음에도 2군행을 통보받았습니다.
당시 김태형 감독은 "본인이 쉬고 싶다길래 푹 쉬라고 했다"는 자조 섞인 농담과 함께 강 감독과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여기는 팀이다. 특정 선수로 인해 팀 분위기가 잘못되면 감독은 결단을 내려야 한다."
두 감독 모두 박건우에게 워크 에식이 부족하다는 점을 꼬집은 셈입니다.
이 일로 박건우는 프로 선수로서 치명상을 입게 됐습니다.
종목별 프로리그 경기는 물론,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국제무대에서도 이제 팬들은 결과만큼이나 과정에 주목합니다.
올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1라운드 탈락한 우리나라 야구대표팀. KBO는 대표팀의 성적 부진과 부족한 경기력에 책임을 통감한다며 공식 사과했습니다.
당시 팬들은 성적보단 부족한 경기력에 더 실망했습니다.
이후 일부 선수들이 대회 기간 술판을 벌였던 사실이 뒤늦게 공개됐고, 팬들은 단순히 선수들이 술을 마셨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영광스러운 태극 마크를 달고, 그것도 국제 대회 기간에 물의를 일으켰다'는 점에 분노했습니다.
물론, 한 가지 사안만으로 특정 선수의 워크 에식 수준을 단정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소한 것들이 반복되다 보면 이미지는 쉽게 만들어지기 마련입니다.
뻔히 아웃 타구인 걸 알면서도 1루를 향해 전력 질주하던 양준혁.
오늘이 며칠인지도, 무슨 요일인지도 모르지만 '늘 그래왔듯 그냥 연습한다'던 김연아.
워크 에식이 좋은 성적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팬들의 사랑을 받는 선수가 워크 에식이 좋지 않은 경우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1등, 승리만을 원했던 팬들도, 금메달에만 주목했던 언론도 이젠 선수들에게 수준 높은 워크 에식을 요구합니다.
박건우를 처음으로 2군에 보냈던 김태형 감독의 말을 잠시 빌리겠습니다.
"주전들이 자기가 경기에 나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말하면 안 된다. 선수들, 다들 똑같이 힘들다. 피곤하다는 주전의 말이, 경기를 못 뛰는 백업 선수들에게 과연 와 닿을 수 있을까."
제작 전용호(yhjeon95@ytn.co.kr)
그래픽 강소윤(kyeongwaryu@ytn.co.kr)
총괄 김웅래(woongrae@ytn.co.kr)
YTN 전용호 (yhjeon95@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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