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더] ‘스트롱맨’ 푸틴 23년 권좌 흔든 프리고진 | “반역 서빙한 ‘푸틴의 요리사’”…승자는 ‘이웃집 독재자’ 루카셴코
러시아 민간 용병 단체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무장 반란을 일으켰다가 하루 만에 철수했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중재로 당장 사태는 진정됐지만, 러시아군 군사력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권력 장악력에 한계가 드러났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향방이 주목되고 있다.
6월 26일(이하 현지시각)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TV 연설에서 “사태 초기부터 대규모 유혈 사태를 피하기 위해 직접 지시를 내렸고, 그에 따라 (바그너그룹의 철군) 조치가 취해졌다”며 “반란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고 말했다.
‘푸틴의 요리사’에서 반란군 수장으로
푸틴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킨 인물은 러시아 민간 용병 회사 바그너그룹 수장 프리고진이다. 이번 사태는 프리고진과 러시아 정규군 수뇌부 간 권력 다툼에서 시작됐다.
1961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프리고진은 유년기부터 절도, 사기 등 범죄를 저질러 소년원과 교도소를 드나들었다. 그는 1990년대 들어 핫도그 장사를 시작했는데, 노점상에서 출발해 식당을 여러 개 낼 정도로 성공을 거두면서 1997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부시장을 지내던 푸틴과 가까워졌다. 푸틴 집권 후에는 크렘린궁의 연회 음식을 맡게 되며 ‘푸틴의 요리사’로 불렸다.
푸틴 대통령과 관계를 강화하던 프리고진은 러시아 특수부대 출신 드미트리 우트킨 등과 함께 용병 회사 바그너그룹을 세웠다. 바그너그룹은 시리아·리비아 내전, 수단, 콩고민주공화국 등 아프리카 국가 분쟁에 개입했고,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의 친러시아 분쟁에도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도 최전선에서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프리고진과 러시아 국방부 수뇌부 간 갈등이 커졌다. 프리고진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초기부터 러시아 정규군의 전술과 무기 보급이 허술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 등을 지속적으로 비판했다. 최근에는 푸틴 대통령을 ‘얼간이(asshole)’ 등으로 빗대며 간접적 비난을 이어갔다. 결국 쇼이구 장관은 모든 비정규군에 국방부와 정식 계약을 체결하도록 지시했고, 푸틴 대통령도 국방부 방침을 지지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사실상 프리고진의 지휘권을 박탈한다는 의미다. 이에 반발한 프리고진은 6월 23일 반란 개시를 선전포고하고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나도누부터 수도 모스크바로 진군을 시작했다.
20시간 만에 푸틴 코앞까지 진격
바그너그룹은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500㎞ 떨어진 보로네시주의 주도 보로네시를 점령하고 350㎞ 거리의 리페츠크주까지 파죽지세로 진격했다. 불과 20시간 만이었다.
러시아 당국은 즉각 프리고진 체포 명령을 내리고 공격 헬리콥터 등을 급파해 일부 지역에서 교전을 벌였지만, 바그너그룹의 진격을 막지 못했다. 푸틴 대통령은 긴급 TV 생중계 연설에서 “등에 칼이 꽂히는 상황”이라며 프리고진의 행동을 ‘반역’으로 규정했다. 이어 “우리의 대응은 가혹할 것이다. 반역 가담자는 처벌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 군 당국은 모스크바에 장갑차와 바리게이트 등을 배치해 방어막 구축에 나섰고, 모스크바 시장은 위험 최소화를 위해 6월 26일을 휴업일로 선포했다.
그러나 6월 24일, 바그너그룹은 모스크바에서 불과 200㎞ 거리까지 진군한 가운데 돌연 철군했다. 러시아 정부를 대신해 중재에 나선 루카셴코 대통령과 협상 결과, 반란을 중단하기로 한 것이다. 반란군을 이끈 프리고진은 벨라루스로 망명하고, 푸틴은 처벌을 포기하기로 합의하며 반란 개시 약 36시간 만에 사태는 일단락됐다. 이후 행적이 묘연했던 프리고진은 6월 26일 텔레그램에 공개한 음성 메시지에서 “바그너의 행진(반란)이 러시아 지도력을 전복시키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위기설’ 푸틴⋯“승자는 ‘중재자’ 루카셴코”
프리고진의 반란 여파는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방 언론은 집권 이후 강력한 권력 통치 체제를 유지하던 푸틴의 리더십이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을 잇달아 내놨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반란이 진정됐지만 미국과 동맹국들은 다음에 무엇이 벌어질지에 대비하고 있다”며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엘리트들이나 체첸공화국, 타타르공화국 등의 도전을 받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푸틴의 요리사가 ‘반역’을 서빙했다”며 “푸틴이 효율적인 군 조직에 실패하고 이를 보완할 보조 군사 조직을 만들기 시작하며 이미 위기는 잉태됐다”고 분석했다. AP통신도 “반란은 종식됐지만 푸틴 권력에는 물음표가 남았다”며 바그너그룹이 방해 없이 모스크바로 진격한 것은 러시아군의 취약성을 드러낸 것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프리고진과 푸틴 사이를 중재한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진짜 승자’라는 평가도 나왔다. 그가 이번 사태를 협상가·중재자로서 이미지 선전에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1994년부터 29년간 벨라루스를 독재해 온 루카셴코 대통령은 푸틴 정권과 밀착을 강화해 왔다.
뉴욕타임스(NYT)는 “크렘린과 바그너 충돌의 큰 승자는 ‘이웃집 독재자’”라고 전했고, 벨라루스 외교관 출신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외교관계연구원인 파벨 슬루킨은 “푸틴은 이번 사태로 자신의 체제가 얼마나 취약하고 쉽게 도전받을 수 있는지 드러냈고, 프리고진은 대담하게 푸틴을 공격했다가 패자처럼 후퇴했다”며 “반면 루카셴코는 푸틴과 국제사회에 중재자이자 협상가, 보증인의 모습을 보여 승자가 됐다”고 분석했다.
Plus Point
젤렌스키 “통제 불능 푸틴 세계가 목격”…전쟁 향방은국제사회는 프리고진의 반란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미칠 영향에 주목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푸틴의 통제력 상실을 주장하며 서방의 지원을 촉구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6월 25일 대국민 연설에서 “세계는 러시아의 보스가 아무것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을 목격했다”며 “그들은 러시아의 도시를 장악하고 무기고를 탈취하기가 얼마나 쉬운지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는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그들에 맞서 단결해야 한다고 호소하며 F-16 전투기 등 서방의 무기 지원을 거듭 요청했다.
같은 날 젤렌스키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고 바그너그룹 반란 사태 이후 전황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미 백악관은 “양 정상은 러시아에서 최근 발생한 상황과 대응 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며 “지속적인 안보, 경제, 인도적 지원을 포함한 미국의 확고한 지원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반란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 밖에 캐나다, 폴란드 정상과도 통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향방에 대해서는 엇갈린 전망이 나온다.
영국 선데이타임스는 러시아의 내부 다툼은 우크라이나와 지원 세력에 좋은 징조라며, 최종적으로 우크라이나의 승리 가능성을 키울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굴욕을 맛본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더 강력한 공세를 가해 만회를 시도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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