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기아 EV9 | 성능·상품성, 크기는 만족…가격은 글쎄
기아 EV9은 국산으로서는 첫 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로, 압도적인 크기가 인상적이다. 길이 5010㎜, 너비 1980㎜, 높이 1755㎜로 이전까지 국산 SUV 중 가장 큰 팰리세이드보다 15㎜ 길고, 5㎜ 넓으며, 5㎜ 높다.
휠베이스(앞바퀴 중심에서 뒷바퀴 중심까지의 거리)는 동력계 구성이 단순한 전기차 특성을 살려 3100㎜를 확보했다. 팰리세이드(2900㎜)에 비해 200㎜가 길다. 흔히 휠베이스가 길면 실내 공간이 여유롭다. EV9을 공간 활용성이 뛰어난 미니밴 카니발에 견주는 이유다.
오프로더 분위기 전기차
기아로서는 전동화 전략의 새 지평을 여는 동시에 플래그십(기함)에 위치하는 차이기 때문에 여러 부분에서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차 전면부는 별다른 장식 없이(엔진 열을 식히는 라디에이터 그릴도 필요 없다) 매끈하게 디자인됐다. SUV 디자인의 특징인 휠하우스 클래딩(바퀴를 감싸는 부분)은 두툼해, 전기차임에도 오프로더(험로 주행용차)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옆면의 벨트라인(차체 측면의 수평선)은 뒤로 갈수록 위로 솟구친다. 강인한 SUV 느낌을 주기 위한 디자인으로 보인다. 문손잡이는 평소에는 문에 숨어 있다가 기능할 때만 밖으로 돌출된다. 미래적인 느낌이 드는 동시에 공기역학에 대한 고민이 엿보인다. 휠 디자인 역시 디지털 감성을 살렸다. 후미등은 전조등과 디자인 패턴에 통일을 줬다.
전기차에서 그릴은 사실 필요 없는 부위다. 전기모터는 엔진과 달리 열을 내지 않아 그릴을 통해 차가운 공기를 엔진룸으로 들여보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디자인적으로 그릴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100년 이상 눈에 익숙해져 있는 디자인 요소여서다. 기아는 EV9의 그릴 디자인을 디지털화해 보는 재미를 준다. 기본 제공 패턴 외에 구독 서비스를 통해 다섯 개의 형상을 더 쓸 수 있다.
실내는 최신 전기차 트렌드를 반영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대시보드 면적의 대부분을 디지털 계기판(클러스터)과 중앙 디스플레이를 한 판으로 구성한 파노라믹 와이드 디스플레이로 채웠다. 운전대(스티어링 휠) 아래 버튼으로 디스플레이 구성을 간단히 바꿀 수 있어 게임을 하는 느낌이다.
AR 지원한 내비게이션…SW 오류 시정해야
내비게이션은 증강현실(AR)을 지원해 주행 경로를 조금 더 편하게 볼 수 있게 했다. 그러나 기자가 탄 시승 차는 소프트웨어 오류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소프트웨어 비중이 높은 만큼 문제 여지가 있다. 사소하지만 소비자에게는 신경이 쓰이는 부분일 것이다.
실내 공조 버튼은 클러스터와 인포테인먼트 화면 중간에 들어가 있다. 운전대에 가려져 정확히 조작하기가 어렵다. 디지털화는 좋지만, 디스플레이 인터페이스가 지나치게 현란한 건 문제다. 주의력을 분산시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 디스플레이 아래 있는 햅틱 버튼은 기능 글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 개선이 필요하다.
공간이 넉넉한 차답게 센터 콘솔이나 대시보드 하단의 수납공간은 충분히 마련됐다. SUV와 미니밴 만들기에 조예가 깊은 기아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좌석 구성도 화려하다. 6인승과 7인승이 기본이고, 2열 시트를 180° 회전해 3열과 마주 볼 수 있는 스위블 시트를 넣었는데, 신기한 기능이긴 하지만 활용도에서 의문이다. 성인은 무릎이 닿아 불편하기 때문이다. 과연 100만원의 옵션 가격을 지불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오래 주행하면 피로할 수 있는 등, 허리, 엉덩이를 위해 운전석과 조수석에 마사지 기능을 넣은 릴렉션 컴포트 시트를 적용할 수 있다. 주행 1시간 이후부터 자동으로 작동하는데, 다른 마사지 시트처럼 압력이 센 편은 아니다. 역시 큰 활용도를 느끼지 못하겠다. 옵션 가격은 200만원이다. 2열도 릴렉션 시트를 선택할 수 있다. 200만~250만원을 추가로 내면 말이다. 스위블 시트와 동시 적용은 되지 않는다.
차박에 적합한 트렁크 설계
현대차그룹은 SUV 혹은 다목적 차(MPV) 형태의 전기차를 낼 때 캠핑 등 아웃도어 활동을 강조한다. EV9 역시 여러 부분에서 비슷한 기조를 볼 수 있는데, 트렁크에서 버튼 하나로 2열과 3열을 완전히 평평하게 접을 수 있어 차박에 적합하다. 여기에 배터리 전력을 외부에서 쓸 수 있는 V2L(Vehicle to Load) 기능을 활용하면 편안한 캠핑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트렁크 용량은 기본 775L, 2, 3열을 모두 접으면 2715L까지 확보된다. 차체 앞쪽에도 수납공간을 만들었다. 평소 보닛을 잘 여닫지 않기 때문에 자주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넣으면 좋을 듯하다.
시승 차는 네바퀴굴림(4WD)에 21인치 타이어를 조합했다. 99.8㎾h 고용량 배터리로, 배터리가 가득 채워져 있을 때 최대 454㎞를 달릴 수 있다. 최고 283㎾(384마력), 최대 600~700Nm의 힘을 낸다. 매우 큰 차지만, 전기차 특성이 모두 담긴 출발 가속감이다. 매끄럽게 속도를 높이는 힘이 상당하다. 차체나 엔진 크기에 따라 달리는 느낌이 다른 내연기관에 비해 개성이 뚜렷하지 않다는 건 아쉽다. 아이오닉5나 아이오닉6, EV6 모두 주행 감각은 비슷하다.
속도는 큰 차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쉽게 잘 붙는다. 금세 도로의 제한속도에 다다른다. 엔진음도 없어 속도가 올라가는 게 잘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차체 무게가 2t을 넘어가기 때문에 민첩한 움직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순발력이나 차체에 걸리는 관성이 확실히 작은 전기차와 다르다.
EV9은 레벨3 자율주행 기능이 있다. 고속도로 같은 제한된 공간에서 최고 시속 80㎞를 운전자 개입 없이 달릴 수 있다. 그러나 시승 차는 적용되지 않았다. 하반기 출시가 예정된 GT-라인부터 장착된다. 그래도 기아의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은 상당한 수준이다. 적극적이고 정확하게 주행을 돕는다.
경기 하남에서 충남 부여까지 200㎞를 주행하는 동안 전기 효율은 1㎾당 4.7㎞를 보였다. 인증 효율이 3.9㎞라는 걸 고려하면 기본적으로 효율이 높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시승 차인 EV9 어스 4WD 기본 가격은 8163만원으로, 옵션과 액세서리를 모두 구입하면 9980만원에 달한다. 동급의 수입차와 비교해 성능이나 상품성이 뒤처지지 않다지만, 일반적인 직장인인 4인 가족의 40대 가장이 선뜻 구매할 수 없는 가격인 것도 사실이다. 다만 EV9 에어 2WD(19인치) 기본차(7337만원)의 경우 올해 책정된 국고 및 지방 보조금을 받으면 6920만원에 구입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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