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리 인상에 반기 든 韓·中·日 중앙은행] “인플레 억제보다 저성장 탈출이 우선”…통화정책 독자 노선 행보

정원석 선임기자 2023. 7. 10.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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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6월 10일 열린 ‘2023년 상반기 물가 안정 설명회’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 뉴스1 2 이강 중국 인민은행 총재가 6월 8일 상하이에서 열린 포럼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3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가 6월 10일 도쿄 일본은행 본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의에 응답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8%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하 인플레)을 잡기 위한 영란은행(BOE·영국 중앙은행)의 깜짝 빅스텝(0.5%포인트 금리 인상)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에 긴축 공포가 고조되고 있다. 노르웨이 중앙은행도 빅스텝에 가세했고, 두 자릿수 인플레에도 금리 인하 역주행을 고집했던 튀르키예(옛 터키)는 기준금리를 8.5%에서 16%로 한꺼번에 6.5%포인트 올렸다. 6월 29일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열린 유럽중앙은행(ECB) 정례회의에 참석한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와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추가 금리 인상을 시사했다.

그러나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5%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3국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2021년 7월부터 기준금리를 올린 한국은 2023년 2월부터 금리를 동결하며 긴축 전선에서 이탈했다. 엔저 호황으로 30년 만에 디플레이션(이하 디플레) 탈출을 기대하는 일본은 마이너스 금리 등 금융 완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중국은 전격적으로 금리를 인하했다.

‘인플레와 전쟁’을 위해 금리 인상 잰걸음을 걷고 있는 서구 중앙은행과 달리, 한·중·일 동아시아 3국 중앙은행은 저성장의 굴레를 끊어내기 위해 ‘반(反)긴축’ 깃발로 연대하는 모양새다.

中, 경기 부양 위해 전격 금리 인하

6월 20일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1년 만기 대출우대금리(LPR)를 3.55%로, 5년 만기 LPR은 4.2%로 각각 0.1%포인트씩 내렸다. 2022년 8월 이후 10개월 만의 금리 인하다.

인민은행은 7일짜리 역레포 금리와 단기 유동성 대출금리(SFL), 중기 유동성 대출금리(MLF) 등도 낮춰 시중 유동성 공급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인민은행이 금리를 인하한 이유는 경기 부진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2023년 5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48.8로 두 달 연속 기준치 50을 넘지 못해 제조업 경기가 위축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다른 실물경제 지표도 부진하다. 5월 소매 판매는 12.7% 증가했지만, 4월 수준(18.4%)과 시장 전망치(13.7%)를 하회했다. 산업 생산 증가율도 3.5%에 그쳐 4월(5.6%)과 전망치(3.8%)를 넘지 못했다. 고용은 16~24세 청년 실업률이 5월 20.8%를 기록해 4월(20.4%)에 이어 역대 최고치를 나타내는 등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인플레가 잡히지 않고 있지만, 중국에서는 디플레 우려가 제기된다. 2023년 3월(0.7%) 이후 3개월째 0%대에 머물러 있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월 0.2%까지 떨어지며 마이너스 물가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 것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 정부는 금리 인하 외에도 1조위안(약 182조원) 규모의 인프라 구축 등 경기 부양안을 발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韓 “성장세 둔화로 금리 동결”

중국의 경기 부진은 미 연준 등과 발맞췄던 한국의 금리 인상을 멈추게 했다. 전체 수출의 30%를 차지하는 중국의 경기 부진이 한국 국내 경기 악화로 돌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수출은 5월 15% 감소해 8개월째 마이너스 상태다. 수출 부진은 생산, 소비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통계청이 5월 31일 발표한 산업 활동 동향에 따르면, 한국의 4월 전(全) 산업 생산(-1.4%)과 소매 판매(-2.3%) 등이 모두 감소했다. 특히 제조업 재고율은 통계 작성 후 사상 최고치인 130.4%까지 치솟았다.

5월 25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연 한국은행은 통화정책 방향 의결문에서 “기준금리 인상을 저지할 동인이 되는 ‘성장세 둔화’가 지속하고 있다”면서 경기 둔화를 금리 동결 배경으로 지목했다.

日 “금융 완화 정책으로 디플레 탈출”

중국과 한국의 금리 인하·동결이 경기 부진을 방어하기 위해서라면, 일본은 경기 회복을 강화하기 위해 금융 완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22년 8월부터 3%대로 올라온 일본 경제는 지난 1분기 GDP 성장률이 0.7%(연률 환산치 2.7%)에 오를 정도로 강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은행은 6월 16일 통화정책결정회의를 열고 단기 금리를 -0.1%로 동결하고 장기 금리 지표인 10년물 국채 금리를 0% 정도로 유도하는 기존 정책을 유지하기로 했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최근 3%대를 유지 중인 물가 상승률이 2023년 회계연도(2023년 4월~2024년 3월) 중반으로 가면 둔화할 전망”이라며 “당분간 장·단기 금리 운용을 통한 양적·질적 금융 완화 정책을 지속할 계획이며, 필요시 (추가) 완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Plus Point
아시아 신흥국은 디스인플레이션이 대세

영국과 노르웨이 등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23년 5월 각각 8.7%, 6.7%까지 치솟으면서 각국 중앙은행은 금리 인상이라는 응급 처방을 쓰고 있지만,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신흥국은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물가 상승 둔화·이하 디스인플레)이 완연하다.

국제금융센터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여파로 급등했던 아시아·태평양 지역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22년 하반기 정점을 통과한 후 둔화하고 있다. 중국, 한국, 태국, 대만,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 싱가포르, 필리핀 등에서 물가 상승률 둔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들 중 인플레가 가장 극적으로 완화되고 있는 곳은 태국이다. 2022년 8월 7.9%였던 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23년 5월 0.5%까지 낮아졌다. 태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6회 연속 인상한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 밖에 2022년 9월 6.0%로 올라갔던 인도네시아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대(2023년 5월)로 내려왔다. 2023년 1월 4.9%로 정점에 올랐던 베트남의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5월 2.4%로 내려왔다. 한국 또한 물가 상승률이 2022년 7월 6.3%로 정점을 찍은 후 둔화세로 돌아섰고, 2023년 4, 5월 두달 연속 3% 초반으로 안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국제금융센터는 이런 추세에 대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유발됐던 글로벌 공급망 혼란이 줄면서 공급 병목현상으로 인한 인플레 압력이 크게 완화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집계하는 글로벌 공급망압력지수는 2022년 12월 1.2를 기록한 이후 5개월 연속 하락해 2023년 5월 역대 최저치인 -1.71로 떨어졌다. 공급망압력지수가 마이너스를 나타낸 것은 공급망 긴장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 유가 등 에너지 가격 하락과 식품 가격 하락도 아시아 신흥국 디스인플레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으로 2022년 5월 배럴당 114.67달러(월평균)까지 상승했던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 가격은 1년 뒤인 2023년 5월 68.09달러까지 내려왔다.

아시아 신흥국의 소비자물가에서 최대 40%를 차지하는 식품 가격 하락도 디스인플레를 유발하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하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2022년 3월 역대 최고치(159.7포인트)를 기록한 후 13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였고, 2023년 5월(124.3포인트)에는 25개월 만에 최저치를 나타냈다.

근본적으로 중국 경제의 부진이 전방위적으로 아시아 지역의 수요 부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국제금융센터는 “중국 경제는 부동산 경기 침체 장기화 우려, 청년 일자리 문제 등으로 투자 및 소비 심리 회복이 지체되면서 수요가 점차 약화하고 있어 향후 전망도 밝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중국의 서비스 소비가 유지되고 있으나 이는 상품 수입으로 인한 아시아 신흥국 인플레 자극 효과를 유발하기에는 제한적”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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