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준의 돈 이야기 <25>] 상장지수펀드까지 나온 비트코인은 주식인가

신상준 한국은행 이코노미스트 2023. 7. 10.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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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셔터스톡

6월 22일 암호화폐 거래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전일보다 4.9% 이상 상승한 3만263달러(약 3961만원)에 거래됐다. 연초인 1월 9일과 비교하면 75% 넘게 오른 가격이다. 세계적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미국 증권위원회(SEC)에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xchange Traded Fund)의 판매 승인을 신청한 것이 이유라고 한다. 상장지수펀드? 비트코인이 거래소(Exchange)에 상장돼 있다(Traded)는 의미인가? 그렇다면 비트코인은 주식인가?

신상준 한국은행 이코노미스트연세대 법학 학·석사, 서울시립대 법학 박사, ‘중앙은행과 화폐의 헌법적 문제’ ‘돈의 불장난’ ‘국회란 무엇인가’ 저자

비트코인의 탄생

2007년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대출) 위기를 계기로 사람들은 현재의 금융 시스템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2008년 11월 나카모토 사토시(中本哲史)라는 가명을 쓰는 사람(또는 집단)이 온라인을 통해 비트코인이라는 전자화폐를 처음으로 제안했다.

나카모토는 “암호화 증명(cryptographic proof)에 기반한 전자화폐(e-currency)를 사용하면, 제삼자인 중개인(은행)을 거칠 필요 없이 우리의 돈을 보다 안전하고 쉽게 거래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화폐가 아니라 사람들(commons)이 직접 발행하는 새로운 화폐를 만들어 시스템의 굴레에서 벗어나자는 것이었다. 2009년 1월 나카모토는 이와 관련된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공개했다. 오픈소스란 누구나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소스 코드, 즉 소프트웨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공개하는 것을 말한다. 동네 사람 누구나 무료로 소를 키울 수 있었던 중세 유럽의 공유지(common land)를 연상시키는 개념이다.

2009년 1월 3일 나카모토는 제니시스 블록, 즉 최초의 비트코인에 ‘두 번째 구제금융의 문턱에 들어선 재무장관’이라는 ‘타임스’의 헤드라인을 새겨 넣었다. 이런 행동은 시대의 아이콘이자 미학적 상징을 이용한 선전포고 같은 것이었다.

골드러시와 비트코인

1849년 골드러시가 일어난 캘리포니아를 상상해 보자. 거친 황무지에는 아무것도 없고 마차를 타고 서부로 달려온 수십 명의 광부만 존재한다. 이들은 광산 조합을 구성하고 금의 채굴에서부터 매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을 함께한다.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한 드라마 ‘그 땅에는 신이 없다’는 그 당시 미국 서부의 모습을 매우 재미있고 박진감 넘치게 그리고 있다.

이런 금광촌에 비트코인을 대입해보자. ‘비트코인’은 ‘금’이고, ‘블록체인’은 금의 거래 내역이 담긴 ‘감정서’이며, ‘분산원장’은 광산 조합에 가입한 광부들 모두가 열람하고 공유하는 ‘회계장부’다. 캘리포니아 광부들은 사람이지만, 비트코인 채굴자들은 사람이 소유한 컴퓨터들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채굴’은 사람이 직접 땅을 파서 금을 채취하는 행위를 의미하지만, 비트코인에서 채굴은 블록체인의 진위를 ‘검증’하는 행위다. 캘리포니아에서는 광부들이 채굴 행위를 통해 직접 금을 획득하지만, 비트코인에서는 광부들이 채굴(검증)에 성공하면 그에 대한 보상으로 비트코인을 받는다.

블록체인과 분산원장

비트코인은 ‘블록체인’과 ‘분산원장’이라는 두 가지 핵심 기술에 기반한다. ‘블록체인’은 비트코인의 위변조와 이중 행사를 방지함으로써 암호화폐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한 암호화 기술이고, 분산원장은 국가나 은행 같은 중앙기구 없이 암호화폐를 유통시킬 수 있는 회계적 기술이다.

기존에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원장(회계장부)은 국가나 은행이 독점하고 있는 반면, 분산원장은 네트워크의 모든 참여자가 공유한다. 분산원장을 공유하는 이유는 비트코인 거래의 정당성을 승인하기 위해서는 참여자들의 과반수의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즉, 분산원장은 참가자들의 자발적 채굴을 통해 암호화폐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고, 참가자 과반수의 동의를 통해 사이버 세계에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기술적 장치인 것이다.

블록체인은 위변조를 방지하기 위한 암호화 기술이다. 블록체인은 마트료시카 인형과 비슷하다. 러시아의 마트료시카 인형은 큰 인형 속에 양파껍질처럼 무수한 작은 인형이 담겨 있다. 블록체인에는 최초에서 최근까지 모든 거래 정보가 러시아 인형처럼 포개져 있다. 큰 인형을 열고 작은 인형을 들여다보려면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채굴이다.

수평적 채굴

채굴은 복잡한 수학 문제를 푸는 검증 작업이다. 채굴은 비트코인의 생성부터 최근 거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이상이 없는지를 검증하는 작업이다. 국가가 주도하는 화폐제도하에서는 국가기관이 화폐의 진위를 판정한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국가 같은 중앙집권적인 기구를 부정하고 모든 사람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국가나 은행 같은 중개인이 필요 없다. 예를 들어 동네에서 아이가 태어났지만, 국가의 호적부에 등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끼리 누구네 집 아이인지 확인해 주는 시스템인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 유인이 없다면 남의 일에 끼어들 이유가 있겠는가. 따라서 회원들의 자발적 채굴을 유도하기 위한 경제적 유인으로 비트코인을 제공한다. 수학 문제를 가장 빨리 푼 우승자에게 비트코인이라는 사이버 황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컴퓨터 좌파

비트코인은 네트워크에 컴퓨터가 추가될 때마다 채굴 작업이 점점 더 어려워지도록 설계돼 있다. 지표면의 황금이 바닥나면 점점 더 힘들게 땅속을 파고 들어가야 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따라서 채굴자들이 동일한 수의 코인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점점 더 많은 전력과 컴퓨터 용량이 필요하다.

2009년 비트코인 사용자들은 코인을 주조하는 데 필요한 전기 비용을 비트코인의 가치(가격)로 환산하는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당시에는 비트코인 1개당 약 0.0008달러의 전기 비용이 들었으므로, 1000개의 비트코인은 약 0.80달러의 가치가 있었다. 컴퓨터의 작업을 노동으로 본다면, 비트코인은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컴퓨터 좌파가 탄생한 것이다.

일단 비트코인의 가격이 산출되자, 사람들은 비트코인을 거래하기 시작했다. 비트코인 가격은 극단적 변동성을 보였고, 비트코인 거래는 일종의 게임처럼 보였다. 마르크스의 ‘자본론(Das Kapital)’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G(Geld)-W(Ware)-G(Geld)(돈-물건-돈)로 표현한다. 이러한 거래에서는 도구였던 화폐가 그 자체 목적이 된다.

이제 교환은 사용 가치 획득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화폐가치 축적만을 목적으로 한다. G-W-G에서 중요한 것은 사는 가격보다 파는 가격이 높은지 여부뿐이다. 이제 사용 가치는 고려 대상 밖으로 완전히 버려진다(소외).

자본의 맛

2010년 5월 플로리다의 엔지니어 라슬로 핸예츠가 비트코인 클럽에 요청해 1만코인을 주고 피자 두 판을 사는 데 성공했다. 비트코인을 수취한 영국의 누군가가 자신의 신용카드를 이용해 플로리다 잭슨빌의 한 식당에서 피자를 주문한 것이다. 얼핏 보면 물물교환처럼 어설퍼 보이지만, 이제 비트코인은 가상에서 현실로 실험적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비트코인은 화제가 됐다. 이때만 해도 비트코인은 마르크스가 상정한 정상적인 상품거래, 즉 W-G-W의 중개 수단(G)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자본의 맛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핸예츠가 피자 두 판을 구매하는 데 1만코인을 지불했다. 2023년 6월 22일 가격을 기준으로 환산해 보면 피자 한 판에 1967억원을 지불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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