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한의 일본 탐구 <37> 일본 증시, 4만엔 돌파할까] 일본 경제 회복세에 외국인 투자 몰려 33년 만의 최고 기록
일본 증시를 대표하는 닛케이 평균주가(닛케이)가 6월 3만3706엔(약 30만6700원)까지 올라 3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본 경제가 30여 년의 장기 침체에서 벗어나 회복될 것이란 기대감이 기본 배경이다. 주요 기업들이 경영 혁신에 나서 생산성 향상과 실적 개선으로 연결되는 선순환 국면에 들어갈 것이란 분석도 주가 상승에 힘을 보태고 있다. 닛케이는 6월 중순 3만3000엔(약 30만300원) 선을 돌파한 뒤 조정 국면에 들어갔다. 주가가 연초 대비 30% 가까이 급등하자 단기 차익을 노린 매도 물량이 쏟아졌다. 국내외 투자자들의 관심은 1989년 말 기록했던 사상 최고치(3만8915엔)를 이번 주가 상승기에 경신할 수 있을지 여부다.
일본 증시, 33년 만의 역사적 고점 배경
일본 경제와 증시 전망을 놓고 낙관론과 비관론이 팽팽하다. 초고령 사회에다 13년째 인구 감소가 이어지는 일본 경제가 다시 성장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그럼에도 일본 내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선 닛케이가 4만엔(약 36만4000원)을 돌파할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 1990년대 초 버블 붕괴 이후 33년 만에 최고점을 찍은 일본 주식시장의 최근 움직임을 따라가 본다.
일본 증시가 모처럼 글로벌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올 상반기에 주요국 가운데 주가 상승률이 가장 높다. 닛케이는 연초 대비 27.9% 올랐다. 이어 이탈리아 17.1%, 독일 16.4%, 미국 14.8%, 프랑스 13.0%, 캐나다 2.8%, 영국 1.8%순이다(6월 19일 종가 기준).
6월 23일은 일본 주식시장의 최근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날이었다. 이날 닛케이는 전일 대비 1.45% 떨어진 3만2781엔(약 29만8300원)에 마감했다. 개장 직후 반도체 관련 주에 매수세가 몰리며 200엔(약 1800원) 이상 오른 뒤 하락세로 돌아서 오후 장에 전일 대비 689엔(약 6200원)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하루 변동 폭이 957엔(약 8700원)에 달해 올 들어 최대였다. 오름세를 타던 일본 증시는 19~23일 주간에 11주 만에 하락했다. 상승세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투자자들 사이에 단기 급등에 대한 경계감이 커진 탓이다.
일본 증시는 1980년대 초 1만엔(약 9만1000원)대에 올라선 뒤 버블 경제 붕괴 직전인 1989년 연말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4만엔선을 눈앞에 두고 하락세로 돌아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7054엔(약 6만4100원)까지 추락했다. 2010년대 초 아베 신조 정권 출범을 계기로 상승세로 돌아선 뒤 올해 역사적 고점을 향해 가고 있다.
일본 기업과 일본 경제에 대한 긍정 평가가 늘어나는 게 주가 상승의 기본 배경이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대결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일본의 지정학적 장점과 안정성이 부각되면서 해외 투자자들이 일본 주식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다른 나라 주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싸다는 점도 매력 포인트다. 엔화 가치가 6월 달러당 143엔(약 1300원) 선까지 떨어져 외국인 투자자들이 ‘일본 주’를 사기에 아주 좋은 여건이다. 게다가 도쿄증권거래소가 시장 평가가 낮은 상장사에 대해 배당 확대와 투자자 홍보 강화 등을 강하게 요구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주요 기업들은 올해 임금 인상 폭을 3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리고, 여성 간부 사원 육성에 나섰다.
일본 경제는 회복세를 타고 있다. 올 1~3월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기 대비 연율 2.7% 증가했다. 소비자물가지수(CPI) 전년 동기 대비 상승률은 지난 5월 3.2%를 기록, 14개월 연속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의 목표치 2%를 웃돌았다. 2021년 11월 출범한 기시다 정권이 안정적 국정 운영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으며 장기 집권 가능성이 커진 것도 증시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 선·현물 동시 매입
도쿄증권거래소에 따르면 6월 중순까지 외국인 투자자들은 11주 연속 주식을 순매수했다. 매수 우위가 11주째 이어진 것은 2013년 1월 이후 10년 5개월 만이다. 이들은 주식 현물과 함께 일본 주 ‘선물’도 사들였다. ‘닛케이225 선물’과 ‘TOPIX 선물’이 주요 투자 대상이다. 지난 4~5월 두 달간 선물은 2조3800억엔(약 21조6580억원), 현물은 5조5300억엔(약 50조3230억원) 매수 우위였다.
선물 매수세가 이어지면서 주식 현물을 끌어올리는 흐름이다. 선물 매수 규모는 주가가 강세를 이어가던 아베노믹스 초기보다도 크다. 외국인들은 아베노믹스 초기(2012년 12월부터 2015년 여름까지) 주식 현물과 선물을 동시에 매수했다. 덕분에 당시 일본 증시는 큰 폭으로 뛰었다. 미즈호증권의 미우라 유타카 애널리스트는 “최근 외국인 투자자들이 매수 타이밍을 놓치는 데 대한 불안 심리 때문에 선물 투자에 관심이 크다”고 전했다. 주식 현물 매매도 활발하다. 주가가 본격 상승하기 시작한 올 3월 하순, 도쿄증권거래소 프라임 시장의 하루 매매 대금은 2조~3조엔(약 18조2000억~27조3000억원)대 후반이었으나 6월에 3조엔에서 5조엔(약 45조5000억원)대 후반까지 확대됐다. 외국인들이 선물뿐 아니라 현물 주식도 늘리고 있다.
주도주는 종합상사, 반도체, 도요타자동차
버크셔 해서웨이처럼 장기 투자하는 ‘큰손’이 있는 반면, 단기 차익을 노리는 헤지펀드도 있다. 올 2분기에 일본 증시 급등에 불을 지핀 주역은 버크셔 해서웨이의 워런 버핏이다. 그는 해외 자원 개발로 수익성이 좋은 종합상사 주식을 대거 매입 중이다. 이토추상사, 마루베니, 미쓰비시상사, 미쓰이물산, 스미토모상사 등 5대 종합상사의 평균 지분율이 8%를 넘는다. 버핏은 지난 4월 일본을 방문했을 때 5개 종합상사 가운데 일부 기업 지분을 최대 9.9%까지 인수하겠다고 밝혔다. 반도체 관련 주와 도요타자동차의 주가도 강세다. 일본 정부가 ‘반도체’ 산업 재건에 사활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부터 일본 반도체 메이커들이 쇠퇴의 길을 걸었지만, 반도체 소재와 부품, 장비 분야는 여전히 막강하다. 반도체 장비는 세계시장에서 35%, 소재는 55%의 점유율을 차지한다. 일본 최대 반도체 장비업체인 도쿄일렉트론은 최근 1년 새 주가가 2배 가까이 급등했다. 2, 3위 반도체 장비업체인 어드밴테스트, 스크린홀딩스도 2배 이상 올랐다. 반도체 소재, 장비 업체들은 50% 이상 오른 종목이 많다.
일본 대표주 도요타자동차도 상승장을 이끌고 있다. 일본 시가총액 1위 기업 도요타자동차는 올해 30%가량 올랐다. 세계 1위 자동차 메이커일 뿐만 아니라 일본 제조업의 얼굴 기업이기 때문이다. IT 기업 소니와 로봇 관련 주도 관심 종목이다.
新닛케이지수 4만엔 시나리오
일본 증시 상승세가 어디까지 이어질까. 일부에서는 경제 회복세를 타고 1년 안에 4만엔을 넘어설 것이란 예측까지 나온다. 우에다 가즈오(植田和男) 일본은행 총재는 6월 회견에서 주식시장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일본 기업들의 실적이 개선되며 주가에 반영되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증시에 대해 좀처럼 공식 견해를 밝히지 않는 일본 중앙은행 총재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평가였다. 미쓰이스미토모DS에셋매니지먼트가 최근 공개한 ‘신닛케이지수 4만엔 시나리오’도 주목할 만하다. 닛케이가 3만엔(약 27만3000원) 선을 넘어선 뒤 가파른 상승세에 대한 경계감이 확산하고 있지만, 단기적인 움직임에 눈을 빼앗기면 잘못된 투자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게 이 리포트의 골자다. 시라키 히사시 투자 전략가는 “저 PBR(주가 순 자산 비율) 기업의 경영 개혁과 명목 GDP 확대에 따라 기업들의 실적 개선이 지속될 경우 주가가 더 큰 폭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물론 일본 증시에 호재만 있는 건 아니다. 해외에서 역사적인 물가 급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추가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 미국과 유럽에서 은행들의 대출 억제 영향으로 글로벌 경기가 하반기에 둔화할 가능성이 있다. 그럴 경우 수출 감소에 따라 일본 경제도 타격을 입게 되고, 주가 상승세가 꺾일 수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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