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부영의 브랜드&트렌드 <36>]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 광고가 망친 브랜딩
브랜드를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브랜딩이 어려운 것이다. 이름, 슬로건, 그림 등 브랜드 요소를 만드는 건 돈만 있으면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강력한 브랜드로 인식되는 것’, 그러니까 브랜딩은 돈 많이 쓴다고만 되지 않는다. 브랜드와 브랜딩을 구분하지 못하는 현실은 그래서 안타깝다. 브랜드는 정형화된 실체가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 연상 등의 총합이다. 브랜드 전략은 ‘어떤 걸 강력하게 잘 떠올리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된다. 브랜딩은 이름을 짓고, 디자인하고, 슬로건을 만드는 작업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 맥락에서 이름 짓고 슬로건 뽑는 것을 ‘버벌(verbal) 브랜딩’이라고 한다. 그림, 심벌 로고를 만드는 것은 ‘비주얼(visual) 브랜딩’이라고 한다. 이런 표현은 여전히 쓰이고 있지만 이제 브랜딩은 더 큰 의미로 쓰이고 있다.
브랜딩은 경험의 문제
넓은 의미의 브랜딩은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실체로 경험돼 각인되는 과정, 즉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뜻한다. 더 크게 보면 브랜딩은 브랜드 목적이 경험으로 소비자의 동의와 인정을 받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브랜딩을 잘하는 핵심적인 원칙은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경험은 두 종류다. 직접 경험과 간접 경험이다. 음료가 있다고 치자. 광고를 봤거나 매대에서 제품을 봤거나, 주변 사람들한테 얘기를 듣는 것은 간접 경험이다. 내가 먹어 본 것은 직접 경험이다. 중요한 것은 직접 경험이다. 직접 경험이 간접 경험을 배신하면 그 브랜딩은 망하게 된다. 단언컨대 브랜딩의 핵심은 ‘언행일치’다. 메시지로서의 언(言)과 행(行)으로서의 제품, 서비스 경험을 일치시키는 것이 진정한 브랜딩이다. 대부분 메시지보다 실체가 못해 브랜딩이 실패하는데, 때로는 간접 경험이 브랜딩을 망치고 브랜드의 평판을 떨어뜨리는 경우도 있다.
네이밍(naming·이름 짓기)이나 슬로건, 디자인 등 브랜딩 요소도 브랜드의 간접 경험을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선생 마약국밥’이라는 식당 체인이 있다. 최근 ‘마선생 마약국밥’은 ‘마선생 얼큰국밥’으로 가맹점 이름을 바꾸겠다고 했다. 최근 몇 년간 ‘마약’이란 단어를 써서 네이밍했던 브랜드들이 본받아야 할 결정이다. 중독성이 있다는 콘셉트를 강조한답시고 ‘마약’이란 말을 아무렇게나 쓰는 것은 안일한 크리이에티브였다. 마약의 치명적인 부작용을 가볍게 여기게 만든다는 점에서 위험한 네이밍이었다.
브랜딩과 광고
소비자의 브랜드에 대한 간접 경험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광고와 구전이다. 하나를 꼽는다면 단연 광고다. 최악의 상황은 잘못된 광고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될 때 발생한다. 광고는 마케팅의 4대 축인 ‘촉진(promotion)’의 중요한 수단이다. 촉진의 수단에는 광고, PR, 판매 촉진 등이 있다. 소비자의 구매를 촉발하는 수단 중 하나임이 광고의 본질이다. 하지만 판촉이 직접적인 행동 유발을 겨냥하는 것에 비해 광고는 중간적인 성격도 있다. 구매를 촉발하기도 하지만 소비자의 마음을 특정 방향으로 이끌어야 하는 역할도 수행하기 때문이다. 광고의 라틴어 어원은 ‘advertere’다. 이는 ‘turn toward’, 즉 ‘(마음을) 어떤 방향으로 돌리다’의 의미다. 광고는 소비자의 마음을 우리 브랜드로 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딜레마가 생기기도 한다. 구매 유도를 위해선 광고가 소비자의 이기심을 자극해야 한다. 브랜딩을 위해선 메시지가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덕목이나 가치에 호소해야 한다. 브랜드 목적을 담아야 한다. 그래서 광고계에서는 편의상 상품 광고와 이미지 광고로 광고의 성격을 구분하기도 했었다. 브랜딩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실체로 뒷받침되는 브랜드 목적과 그것을 스토리로 잘 푼 광고다.
6월 7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들어서는 주상복합 아파트 ‘더 팰리스 73’의 분양 홈페이지에는 “본 홈페이지 내에 사용된 문구로 인해 심려를 끼쳐드린 점 깊이 사과드린다”라는 사과문이 올라왔다. 이어 “의도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중하지 않은 표현으로 많은 분께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앞으로 표현의 모든 과정에서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소비자의 이기심을 자극해야 하는 것이 광고의 숙명이라지만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이라는 메시지는 도가 지나쳤다고 본다. 이런 건 솔직한 메시지가 아니다. 솔직함이라는 덕목은 무례해도 좋다는 무차별적 허용을 뜻하지 않는다.
브랜드의 세계관, ‘브랜드 목적’ 정립해야
브랜딩에 도움이 안 되는 광고 사례는 더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인 2001년 말 한 신년 광고가 국민을 위로하며 대박을 터트린 적이 있었다. “여러분, 부자 되세요!” 바로 BC카드 광고였다. 배우 김정은이 설원에서 눈사람 주위를 빙빙 돌며 “여러분~ 여러분~ 부자 되세요. 꼭이요”를 외치는 광고는 강한 반향을 낳았다. 외환위기의 여파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이 말은 최고의 덕담이나 마찬가지였다. 직설적인 표현이었으나 소비자의 공감을 받았다. 부자가 된다는 것이 꼭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아닐 것이다. 광고에서는 부자가 되라면서 BC카드를 쓰면 얻게 되는 혜택을 보여줬다. 자신들의 브랜드 목적을 “서민들에게도 부자와 같은 구매 기회를 부여한다”로 규정했던 월마트가 떠오르는 광고였다.
문제는 다음 광고였다. 해가 바뀌고 BC카드는 ‘부자 되세요’에서 ‘돈 많이 버세요’로 메시지를 바꿔 광고를 내보냈다. 돈을 쓰게 만드는 신용카드가 ‘우리 카드를 쓰면 절약이 되니까 마음은 부자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가 이제 직설적으로 ‘돈을 많이 벌라’고 말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반발했다. 마음만 부자일 수는 있어도 마음만 돈이 많을 수는 없는 것이니까.
그로부터 약 10년 후 2010년, 아파트 브랜드 광고가 방영됐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라는 메시지였다. 프리미엄을 강조하려는 의도였겠지만. 사람들은 나라는 존재를 비싼 아파트에 사는지 여부로 규정짓는 메시지에 강하게 반발했다. 사는 곳 하나가 한 사람의 모든 것을 규정한다는 과장에는 동감하지 않았다. 메시지는 ‘캐슬’이란 브랜드 네임과 연결돼 마치 ‘성안의 분들’과 ‘성 밖 것들’로 세상을 나눈 것으로도 읽힐 수 있었다. ‘세상의 주인은 돈이란 것을 다 알지만, 그래도 사람이 주인일 거야’라고 믿는 그 한 가닥 믿음이 염치라고 영화감독 김대승은 말했다. 염치없는 광고였다.
비슷한 시기인 2011년, 블랙 프라이데이 기간에 ‘Don’t Buy This Jacket(우리 옷을 사지 마세요)’이라는 기업 광고가 미국에서 집행됐다.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의 광고였다. 광고에 나온 재킷은 친환경 제품임에도 생산하려면 많은 양의 물이 소비되고 운반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며 많은 쓰레기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니 필요하지 않은 제품이라면 굳이 사지 말라고 얘기하는 광고였다. 상술에 불과하다는 평은 많지 않았다. 왜냐면 파타고니아의 브랜드 목적은 ‘We’re in Business to save our home planet(우리는 우리의 터전,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사업을 합니다)’이고 그들은 실체와 실천으로 그들의 브랜드 목적을 현실에 구현하고 있음을 인정받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 광고는 브랜딩을 돕는 대표적인 광고 사례로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오늘날 소비자들은 브랜드가 진짜인지 아닌지 쉽게 구분한다. 이러한 시대에 브랜드를 잘 유지하고 더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광고가 브랜딩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브랜드의 세계관, ‘브랜드 목적’이 우선 명확히 정립되고 실천되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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