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학수의 골프 오디세이 <140> 이정윤 우정힐스컨트리클럽 대표 인터뷰] “선수들 말려 죽일 셈이냐”…‘지옥의 한국오픈’ 만드는 우정힐스
마스터스는 남자 골프 4대 메이저 대회 가운데 역사는 가장 짧지만, 흥행과 영향력에서 가장 압도적인 골프 토너먼트로 성장했다.
미국 골프의 전설 보비 존스와 은행 투자가 클리퍼드 로버츠가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에 창설한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1934년부터 계속 열리고 있다. 대회를 거듭하면서 숱한 명장면들이 코스에 전통으로 쌓인 것도 마스터스 성장에 큰 힘이 됐다.
6월 22~25일 열린 내셔널타이틀 대회인 코오롱 제65회 한국오픈은 2003년부터 충남 천안 우정힐스컨트리클럽(이하 우정힐스)에서 열리고 있다.
코로나19로 취소된 2020년 대회를 제외하고 올해까지 스무 번째 한국오픈이 치러졌다.
한국오픈은 1958년 1회부터 14회 대회까지 서울컨트리클럽에서 열렸다. 1970~80년대는 뉴코리아·태릉·관악·남서울·안양·한성·수원컨트리클럽 등에서 돌아가며 대회를 열었다.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서울 한양컨트리클럽에서는 2002년까지 15차례 대회가 열렸다.
1993년 문을 연 우정힐스는 대한골프협회장을 역임한 고(故) 이동찬 코오롱 전 회장 뜻에 따라 연습장과 갤러리 스타디움 등을 갖춘 국내 첫 토너먼트 코스로 지어졌다. 우정(牛汀)은 이동찬 코오롱 전 회장의 아호다. ‘코스 설계의 피카소’란 별칭이 있는 거장 피트 다이의 아들 페리 O. 다이가 설계했다.
2002년 서울 한양컨트리클럽에서 열린 한국오픈에서 당시 떠오르던 스타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가 나흘 내내 60대 타수를 치며 23언더파 265타의 역대 대회 최저타로 우승했다. 그리고 2003년 제46회 한국오픈부터 우정힐스로 옮겨 대회를 치르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오픈은 세계적인 선수들에게 한 수 배우자는 취지로 정상급 골퍼들을 초청하고 있었다. 2003년 대회에서 PGA투어의 장타자 존 댈리(57·미국)가 우승했는데 우승 스코어는 6언더파 282타였다. 이후에도 우정힐스에서 열린 한국오픈에서 양용은(51), 비제이 싱(60·피지), 배상문(37), 이경훈(32) 등 걸출한 우승자들이 나왔다.
2004년 대회에 초청 선수로 출전했던 어니 엘스(남아공)는 “아시아에서 경기해 본 코스 가운데 그린 컨디션이 최고다. 페어웨이 폭이 좁고 러프가 길어 미국 메이저 대회 같다”고 평가했다. 원래 10월에 열리던 대회는 2017년부터 디오픈 출전권 두 장을 우승과 준우승한 선수에게 주기 시작하면서 6월로 옮겨 치르고 있다.
이정윤 대표는 1995년 1월 7일 우정힐스에서 근무하기 시작해 현재는 춘천 라비에벨컨트리클럽까지 총괄 대표를 맡고 있다.
우정힐스에서 처음 열린 한국오픈부터 코스 세팅을 주관하며 오늘에 이른 산증인이다. 밀짚모자에 모터바이크를 타고 코스 구석구석을 돌다 문제가 있으면 바로 해결책을 찾아내는 그의 모습은 우정힐스의 한 부분이다.
올해 한국오픈은 페어웨이를 개미허리처럼 좁히고 깊은 러프 지옥을 만들었다.
“공이 떨어지는 지점 페어웨이 폭이 좁은 곳은 8m 안팎이었다. 러프도 페어웨이에서 가까운 A 컷은 85㎜, B 컷은 100㎜ 이상, 그 바깥은 발목이 푹푹 잠길 정도로 러프를 200㎜ 이상 깊게 길렀다. 그린은 단단하고 빠르게 만들었다. 매년 선수들로부터 너무하는 것 아니냐는 항의도 받지만, 내셔널 타이틀 대회다운 우승자가 나올 수 있도록 변별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선수들의 비거리와 기량이 늘고 있어 우리도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다. 2003년 한국오픈은 파 72에 7027야드 전장이었는데 올해는 파 71에 7326야드로 조성했다.”
한국이 골프 불모지이던 시절 토너먼트 코스를 짓겠다는 생각은 혁신적이다.
“1985년부터 1996년까지 대한골프협회 회장을 역임한 이동찬 전 회장은 골프 발전을 위해서는 선수들의 실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코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PGA투어에도 토너먼트를 열 수 있는 자격 조건을 갖춘 클럽들로 구성된 TPC(Tournament Players Club)가 있다. 일반 골퍼들의 관심을 끌어 클럽 운영에도 큰 도움이 돼 마케팅 측면에서도 성공적이다.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골프 설계 집단이었던 피트 다이 집안에 코스 설계를 맡기면서 ‘당신이 원하는 대로 그려라. 일절 관여 안 하겠다’고 선언했었다. 대집안이 설계하는 코스는 세 가지 특징이 있다. TPC 소그래스 17번 홀처럼 시그니처 홀은 아일랜드 파 3홀이고, 마지막 홀은 스타디움 형태, 페어웨이 등 코스가 울퉁불퉁한 자연스러운 형태를 지니고 있다. 다 지어지고 프로 선수들에게 ‘여기서 언더파를 치라’고 강조했었다. 선수를 위한 토너먼트 코스를 지었으니 그만한 실력을 갖추라는 뜻이었다.”
당시 보기 드문 형태의 골프장이어서 인기가 있었겠다.
“동양미를 갖춘 조경에 웨스턴 스타일의 골프장이 모습을 드러내자, 회원권이 금세 다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처음엔 노 캐디 경기를 했는데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들이 많아 1996년부터 캐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벙커가 72개고 해저드를 낀 홀이 13개 홀이다.”
대회를 치르면서 매년 18개 홀의 모습이 바뀌고 있다.
“골프장에는 조경과 코스가 만들어 내는 선이 있다. 그 선이 더 간결하고 매끈하고 단정할수록 좋은 골프장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대회를 치르면서 변별력을 만들어 내야 하는 과제가 있다. 1번 홀(파 4) 티잉 구역 높이는 예전보다 1m 낮췄다. 그래야 왼쪽 숲을 넘겨치는 게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8번 홀(파 5)은 티잉 구역 높이를 1m 30㎝ 높였다. 페어웨이 왼쪽 해저드가 잘 보이게 하자 선수들의 티샷이 더 어려워졌다. 16번 홀(파 3)은 255야드 파 3홀로 만들자 ‘말려 죽이려고 그러느냐’는 항의를 들었다. 18번 홀(파 5)은 오른쪽 나무가 자라면서 티샷이 가장 어려운 곳이 됐다. 코스를 세팅할 때마다 골프는 정말 작은 변화로도 큰 심리적 차이를 만들어내는 게임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30년째 우정힐스와 함께하고 있다.
“원래 회계 담당으로 입사했는데 이동찬 전 회장이 ‘앞으로 골프 전문 경영인의 시대가 올 것’이라며 우정힐스에 배치했고, 이웅열 회장도 골프 코스에 대해 전권을 줬다. 당시엔 믿기 힘든 선견지명이었다. 지금도 국가대표 선수들과 지역 유망주들에 우정힐스를 개방하고 있다. 한국 골프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게 우정힐스의 변치않는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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