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의 사진집 이야기 <65> 모에 스즈키(Moe Suzuki)의 ‘소코히(Sokohi)’] 시력 상실을 향한 아버지 내면의 여정을 담다

김진영 2023. 7. 10.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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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에 스즈키(Moe Suzuki)의 ‘소코히(Sokohi)’. 책은 과거부터 현재로 시간이 진행된다. 책의 초반은 본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몰랐을 과거 아버지의 사진들이 먼저 전개되지만, 중간 지점부터 시력을 잃어가는 현재 아버지의 모습이 전개된다. 사진 김진영

시력을 잃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능력을 상실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시야를 제공하는 눈의 기능을 잃는 것 이상으로 깊은 의미가 있다. 우리는 시력을 통해 세상을 경험하고, 아름다움 같은 감정을 느끼며, 글을 읽고 쓰는 행위를 수월하게 행한다. 일상이 무탈하게 흘러가고 편안함을 유지하는 데 시력은 중대한 역할을 한다.

김진영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일본 사진가 모에 스즈키(Moe Suzuki)의 아버지 테츠이치 스즈키(Tetsuichi Suzuki)는 50년이 넘는 시간 책 편집자로 일해 온 인물이었다. 그는 항상 다양한 종류의 책과 글에 둘러싸여 살았다. 또한 평생 일기를 썼고 사진 찍는 것을 즐겼다.

하지만 그런 그가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녹내장 진단을 받았다. 매일 약을 복용하고 수술도 받았지만 높은 안압이 조절되지 않아 느리지만 점진적으로 시야 결손 증상이 나타났다. 매일 어제보다 약간 더 어두운 아침을 맞이해야 하는 것은 늘 책을 읽고 일기를 쓰며 살아오면서 결코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시력이 서서히 나빠지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삶은 조금씩 지워지고 있었다.

모에 스즈키는 2018년 아버지와 함께 살기로 했다. 가까이에서 아버지를 지켜보면서 그가 독서 활동이라든지 설탕과 소금을 구별하는 일이라든지 수염을 깎는 것 같은 일상적인 일을 조금씩 어려워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에게 찻잔을 건네자 아버지는 찻잔을 잡는 대신 허공을 움켜쥐었다. 작가는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며 그와 함께하는 일상을 사진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소코히(Sokohi)’는 가족 앨범에 보관돼 있던 오래된 사진들, 아버지가 남긴 일기 그리고 작가가 아버지와 함께하는 일상 가운데 찍은 사진을 통해 아버지 내면의 여정 그리고 본다는 것의 의미를 담은 책이다. 작가는 시각 장애를 표현하는 말이자 ‘바닥에 드리운 그림자’라는 의미의 ‘소코히’라는 말을 제목으로 정했다.

과거에서부터 현재로 시간이 진행되는 이 책 초반은 가족 앨범 속 사진이 주로 등장한다. 학창 시절 카메라를 든 아버지의 모습, 여행지에서도 책을 읽는 모습, 자신을 찍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웃는 모습, 어린 딸과 전망대 망원경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모습 등과 파도치는 바다 풍경, 일몰 풍경, 고요한 산, 밤의 벚나무, 불꽃놀이 장면 등 풍경 사진이 교차하며 펼쳐진다. 본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본 풍경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사진 찍힐 당시에는 몰랐을 그 시절의 사진들이 먼저 전개된다.

책의 중간 지점에 도달하면, 왼쪽 페이지에는 눈부시게 강한 햇빛을 담은 사진, 오른쪽 페이지에는 눈을 찡그린 아버지의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여기서부터 아버지의 현재가 전개된다. 양치하거나 집 안을 거니는 일상적인 모습, 병원에 입원하거나 눈에 붕대를 붙이고 치료 중인 모습, 바닥에 실수로 계란을 깨뜨리거나 망연자실한 듯 누워 있는 모습 등…, 아버지는 시력을 잃어가는 중이다. 더 이상 아버지는 웃지 않으며 카메라를 정확히 바라보지 못한다.

또한 책의 중간중간에는 검정 종이에 흰 글씨로 쓴 메모가 수록돼 있다. 기존에 사용하던 일기장을 쓰는 것이 어려워지자, 아버지는 비주얼 이즈 블랙(Visual Ease Black) 노트를 사용해 일기 쓰기를 시도했다. 사회복지법인 도쿄 히카리(Tokyo Hikari)에서 만든 이 노트는 검은색 페이지로 돼 있어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흰 글씨를 사용해 보다 쉽게 글을 읽고 쓸 수 있도록 만든 나선형 공책이다. 하지만 결국 아버지는 이 노트마저 사용하기 어려워져 그만둬야 했다.

그리하여 책 후반부에 펼쳐지는 이미지는 아버지가 바라보는 시야를 표현한 사진들이다. 흐릿하고 파편적이며 빛이 번지는 광경들. 이 사진들은 아버지가 보고 있을 세상을 가늠하게 한다. 책은 점차 시력을 잃어가는 과정과 유사하게 점점 더 해체되고, 독자는 ‘무엇’이 담긴 사진인지 알아보기 어려워진다. 딸인 작가는 아버지 눈 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아버지가 느낄 감정을 독자에게 보여주려 시도한다.

작가는 말한다. “이 책은 아버지 내면의 여정 그리고 좁아지는 시야, 고군분투, 두려움, 수용, 내려놓음을 그가 어떻게 극복해 가는지에 중점을 두고 있다. (중략) 아버지는 실명이 진행됨에 따라 자신의 운명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희미한 시력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싸우기라도 하듯 필사적인 순간도 있다. 실명을 향한 그의 여정은 파도가 해변으로 밀려오고 또 밀려 나가는 것처럼, 빛과 그림자 사이를 오간다.”

이처럼 과거에서부터 현재로 진행되면서 ‘소코히’는 시력을 잃는다는 것에 대해 이성적, 지적으로 말하는 것을 넘어 독자가 이를 경험적, 육체적으로 공유하도록 만들어졌다. 컬러로 생생하게 보이던 풍경이 흑백으로 변하고 그 풍경마저 조각나고 어둠이 드리우는 과정을 통해 이 책은 한 인물의 감각, 정확히는 감각의 변화 내지는 상실을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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