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시네마 에세이 <83> 인디아나 존스: 마궁의 사원] 40년 전 ‘인디아나 존스’를 찾아서
인디아나 존스(인디)는 고고학계의 슈퍼맨이다. 대학에서는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쓰고 강의하는 점잖은 교수지만 유물을 찾아 떠나는 순간, 그는 터프가이가 된다. 중절모를 삐딱하게 쓰고 위험이 닥치면 허리에 차고 있던 채찍을 휘두른다. 뛰어난 두뇌로 암호를 풀고 보물에 다다르는 비밀의 문을 연다. 무덤의 정령, 황금을 탐내다 죽어 나뒹구는 해골, 총을 쏘며 쫓아오는 악당도 보물을 찾으려는 그의 집념을 꺾지 못한다.
발굴한 유물은 있던 자리에 그대로 두거나 많은 사람이 보고 배울 수 있도록 박물관에 기증, 전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인디가 원래부터 정의로운 학자는 아니었다. 그는 도굴한 청나라 유물을 비싼 가격에 팔기 위해 상하이의 한 클럽에 갔다가 보물을 빼앗기고 목숨까지 잃을 뻔했다.
일상을 벗어나 모험에 나서는 영화 속 주인공은 처음엔 좌충우돌한다. 많은 사람의 실제 삶이 그렇듯, 자기가 완성해야 할 인생 목표가 무엇인지 모른 채 엉뚱한 데서 재능과 시간을 낭비한다. 피할 수 없는 결정적 계기를 마주하고서야 운명을 받아들인다. 재미있는 어드벤처 영화의 기본 법칙인데 ‘인디아나 존스’도 예외는 아니다.
클럽에서 만난 쇼걸 윌리, 소매치기였다가 인디의 조수가 된 소년 쇼트와 함께 악당을 따돌리지만 그들을 태운 비행기는 멀리 인도까지 날아가 외딴 마을 근처에 추락한다.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일행을 마을 주민들은 하늘이 보내준 사람들이라며 환대한다. 그들은 새로운 왕이 빼앗아 간 마을의 수호석과 잡혀간 아이들을 찾아달라고 인디에게 부탁한다.
자신은 구원자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하늘에서 떨어졌으니 하늘이 보내준 사람이 틀림없다는 그들의 믿음은 확고하다. 그는 왜 하필 도움이 필요한 마을에 추락했을까. 왜 하필 마을에 떨어진 이방인이 고대 보물찾기의 달인, 인디였을까. 그들의 기도가 정말 하늘에 닿은 것은 아닐까. 강렬한 우연은 때론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운명이 되기도 한다.
물론, 인디의 결심을 굳힌 건 운명이나 사명감, 정의감이 아니다. 사라진 마을의 수호석이 전설 속 시바 신이 주었다는 샹카라의 돌, 부귀영화를 가져다준다는 다섯 개의 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인디의 모험심에 불이 붙는다. 그는 보물을 찾아오겠다며 윌리와 쇼트를 데리고 왕이 사는 궁전을 향해 떠난다.
코끼리를 타고 울창한 밀림을 통과해야 하는 여정, 똘똘한 쇼트는 뛰어난 조수 역할을 해내지만 클럽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화려한 도시 생활에만 익숙한 윌리는 정글에서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이 불편하고 무섭기만 하다. 철부지 아이처럼 끝없이 투덜대다 야생동물을 마주하고는 비명을 내지르는 윌리, 무심한 척 그녀의 매력에 빠져드는 인디가 어드벤처 영화에 코믹이라는 양념을 더한다.
성에 도착한 그들은 뜻밖에도 국왕과 수상의 환대를 받는다. 끔찍한 몬도가네식 진수성찬 앞에서 기겁하지만 아름다운 옷과 보석으로 치장한 윌리는 마음이 한껏 들뜬다. 인디도 쇼트와 함께 모처럼 긴장을 푼다. 그러나 한밤중이 되자 자객이 들이닥친다. 인디는 그들에게 감추어야 할 비밀이 있다고 확신하고 서둘러 신비의 돌을 찾아 나선다.
어드벤처 영화의 절정은 동굴과 외나무다리에 있다. 깊은 정글, 고대 유적지에서 벌이는 인디의 탐험도 필연적으로 지하 무덤에 이르는 통로, 미로처럼 연결된 동굴이 배경이다. 어둡고 긴 동굴 안에는 아차 하는 순간 죽음을 부르는 수많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그럼에도 계속 가야 하는 이유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보물이 그 끝에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동굴의 시험은 끝이 없다. 뱀과 전갈, 벌레들이 우글거리는 입구를 통과하면 화살이 날아오고 흑마법사는 산 채로 심장을 꺼내겠다며 손톱을 세운다. 악당의 칼날을 피하면 총알이 빗발치고 붉은 용암이 덮쳐온다. 불을 피했나 싶으면 물 폭탄이 쏟아진다. 롤러코스터처럼 광산 열차에 몸을 싣고 내달리며 살았다, 가슴을 쓸어내리면 철로가 끊기고 몸은 허공으로 곤두박질친다.
그래도 우리의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 인디는 지혜와 용기를 짜내 동굴 탈출에 성공한다. 윌리와 쇼트와 보물 모두 무사하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이르다. 진짜 시험은 이제부터다. 인디는 외나무다리 위에 선다. 이쪽에도 적, 저쪽에도 적, 천 길 낭떠러지 밑에는 악어가 입을 쩍 벌리고 있다.
오기가 생긴다. 인디는 부귀영화를 준다는 돌을 훔쳐 도망가려던 마음을 고쳐먹는다. 대신 저들에게서 아이들과 마을을 구하리라 다짐한다. 지원군은 없다. 오직 혼자 힘으로 다리를 건너야 한다. 그런 자만이 보물과 미녀와 세상을 구한 영웅이란 명예를 얻는다. 인디는 심호흡을 한다. 나에게 위기라면 적에게도 위기다. 그는 양쪽에서 다가오는 악당들을 향해 칼을 높이 치켜든다.
‘인디아나 존스: 마궁의 사원’은 조지 루커스 감독과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레이더스’의 후속작으로 1984년에 발표됐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중 가장 재미있는 걸작으로 손꼽힌다. 지난 6월, ‘인디아나 존스’의 다섯 번째 이야기 ‘운명의 다이얼’이 개봉됐다. 1편이 나온 지 42년 만이다. 여든이 넘은 해리슨 포드가 변함없이 주연을 맡았다.
애써 찾은 보물을 인디가 소유하는 일은 없다. 동굴 속 보물은 인간의 탐욕을 시험하는 리트머스, 제자리에 있을 때만 빛날 뿐, 밖으로 꺼내는 순간 부서지는 신기루다. 진짜 보물은 모험 중 느끼는 설렘과 성취감, 모험을 함께하는 사람들 그리고 동굴에 들어가기 전보다 성장한 자신과 조우다.
누구나 마음속에 동굴을 품고 산다. 어떤 이는 인디처럼 마음의 어둠을 속속들이 탐험하고 그 안의 보물을 만나지만, 누군가는 윌리가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들여다보는 것조차 두려워한다.
또 누군가는 그런 것이 자기 안에 있는 줄도 모르고 산다. 그래도 영화를 보는 동안은 닮고 싶어진다. 유쾌하고 통쾌하게 악당을 물리치고 자기 자신과도 싸워 이긴 인디를. 인디아나 존스의 이야기가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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