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사주’ 증인 김웅···“내 목소리 맞는데, 기억은 없다”
10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509호 법정. ‘고발사주’ 의혹 재판 증인석에 앉은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헤드폰을 벗었다. 2020년 4월 김 의원이 조성은씨에게 고발장 초안 등을 전달한 직후 통화한 내용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녹음파일을 듣는 절차를 거친 후였다. 그는 공수처 쪽을 보고 말했다.
“제 목소리가 맞습니다. 그런데 이런 통화를 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당시에 뭐, 통화를 했을 것 같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재판장 김옥곤) 심리로 이날 열린 손준성 서울고검 송무부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 의원은 “기억이 없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은 안 나는데 추정하기도 어렵다” 등 답변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고발장, 손준성이 건넸을 가능성 낮다”
‘고발사주’ 의혹은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당시 범여권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에 대한 수사를 목적으로 검찰이 고발장을 작성해 야당이던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을 통해 고발을 사주했다는 게 골자다. 피고인 손준성 서울고검 송무부장은 고발장을 작성한 사람으로, 김 의원은 손 검사로부터 고발장을 전달받아 당시 미래통합당 선대위 부위원장인 조성은씨에게 전달한 사람으로 지목됐다.
김 의원은 당초 손 검사와 공모한 혐의를 받았으나 지난해 9월 검찰이 불기소 처분했다. ‘손 검사→김 의원’으로 고발장 등이 전달된 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고 두 사람 사이 ‘제3자’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김 의원은 이날 “2020년 4월3일 텔레그램 전달하기 기능으로 조성은에게 페북 캡처자료 88장과 1차 고발장 등을 전달한 적 있나” “조성은에게 ‘고발장 초안을 저희가 만들어 보내드릴게요’라고 말한 건 무슨 뜻인가” “조성은과 연락하기 전 누군가로부터 ‘고발장도 곧 보내줄게’ 같은 이야기를 들은 사실이 있나” 등 공수처 질문에 모두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당시 김 의원이 조성은씨에게 전달한 고발장 사진 등에는 ‘손준성 보냄’이란 문구가 첨부돼 있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기억은 안 나지만 (손 검사가 고발장 초안을 작성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했다. 그는 “그 부분이 핵심일 텐데 만약 이게 대검에서 온 것이라 인식했다면 행위 자체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시 선거를 앞두고 정신없이 바쁠 때 제보자로부터 받은 자료를 그대로 조씨에게 전달했을 뿐, 제보자는 복합적이며 고발장 초안을 누구에게 받았는지도 알 수 없다는 취지이다.
재판장이 “손 검사로부터 고발장 초안 등을 받은 적이 없다는 건가, 기억이 안 난다는 건가”라고 물었을 때도 김 의원은 “기억도 없고, 제 판단으로 그랬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기억은 없어도…해명과 비판은 적극적인 김웅
그러나 조씨와 통화·고발장 전달 여부 등이 전부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김 의원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통화 녹취록을 토대로 내용을 묻자, 이에 대해서는 상세한 답변을 내놨다. 당시 조씨와 대화 내용이 어떤 맥락이었는지, 녹취록에 적힌 단어의 뜻은 뭔지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김 의원은 당시 기억은 안 나지만 녹취록을 보고 생각해봤다는 취지로 답하면서 ‘느껴진다’ ‘추정된다’ ‘그렇게 나와있다’ 같은 서술어를 썼다.
통화 녹취록에는 김 의원이 조씨에게 ‘우리가 어느 정도 (고발장) 초안을 잡아봤다. 이 정도면 검찰이 알아서 수사해준다’고 말한 내용이 담겼다. 김 의원은 “이 부분에 대해 자세히 설명드리겠다”며 답변을 시작했다. 당시 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 참석하는 조씨에게 “당신이 예를 들면 ‘우리가 어느 정도 초안을 잡아봤다’고 전략본부에 가서 얘기해라, 그리고 구체적인 건 ‘이 정도 보내면 검찰에서 알아서 수사해줘요’라고 이렇게 하시면 돼요”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어 “여기서 ‘우리’는 조성은과 김웅이지, 김웅과 제보자가 아니다”며 “공수처가 의도적으로 ‘예를 들면’ ‘이렇게 하시면’ 같은 표현을 의도적으로 삭제했는데 이런 방식의 ‘와꾸 수사’는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조씨와 대화에서 ‘검찰은 고발장을 받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받는 걸로 하고, (미래통합당은) 검찰이 왜 인지수사도 안 하냐고 항의하는 식으로 하자’는 내용을 주고받은 것도 “조씨가 먼저 제의했고 저는 거기에 동조한 것”이라고 했다.
검사 출신인 김 의원은 공수처를 몰아세우기도 했다. “이런 걸 가지고 공수처는 지금 증거라고 하는 건가요?” “공수처 같은 경우는 압수수색할 때 자료가 빠져나가는 정황이 너무 명백하지 않나”는 등 공수처 검사를 상대로 따지듯 물었다. ‘김 의원이 손 검사로부터 자료를 전달받아 당에 전달한 것 같다’는 취지의 과거 기사를 공수처가 제시했을 땐 “기사 쓴 기자를 증인으로 데려다 물어보라”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이날 오전 재판에서 김 의원은 녹음파일을 전부 듣고, 자신의 피의자신문조서를 한 장씩 넘기며 확인했다. 통상의 재판에선 보기 드문 상황이었다. 공수처 측은 이날 김 의원을 꼬박꼬박 ‘증인분’이라고 불렀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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