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규의 저널리즘책무실] ‘해장국 언론’과 뉴스 신뢰도
[저널리즘책무실]
이종규 | 저널리즘책무실장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우리나라 언론인들을 주눅들게 하는 보고서가 하나 나온다. 영국 옥스퍼드대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펴내는 <디지털 뉴스 리포트>다. 세계 40여개 나라 국민들의 뉴스 이용 실태와 뉴스에 대한 인식을 비교해서 살펴볼 수 있는 보고서다. 성적순 줄세우기 문화가 뿌리 깊어서일까? 보고서 내용 중 한국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끄는 것은 ‘뉴스 신뢰도’ 순위다.
한국은 2016년 이 조사에 참여한 이래 뉴스 신뢰도 조사에서 늘 최하위권을 맴돌았다. 최근 발간된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3>을 보면, 올해 한국의 뉴스 신뢰도는 조사 대상 46개국 중 41위였다. 뉴스를 신뢰한다는 응답이 28%에 그쳤다. 조사 대상국 평균(40%)에 한참 못 미친다. 그나마 나아진 게 이 정도다. 2020년까지는 줄곧 꼴찌를 차지했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신뢰도 조사는 ‘대부분의 뉴스를 거의 항상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문항에 ‘동의’ 또는 ‘적극 동의’하는 비율을 합산해 순위를 매긴다. 유엔이 해마다 실시하는 ‘세계 행복도 조사’만큼이나 주관적이다. 사실 ‘행복’이나 ‘신뢰’라는 말 자체가 지극히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개념인지라, 과학적으로 엄밀하게 조사할 방법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행복도 조사는 삶에 대한 주관적 만족도를 물으면서 1인당 국내총생산(GDP) 등 6가지 지표들이 행복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는지도 함께 분석하는데, 신뢰도 조사에는 그것마저 없다. 왜 신뢰도가 낮은지(또는 높은지) 좀처럼 파악하기 어렵다.
그래서 매년 10월께 나오는 <디지털 뉴스 리포트> 한국어판에는 미디어 학자들의 ‘논평’이 실린다.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신뢰도 독해법’이라 할 수 있다. 보고서에는 뉴스 신뢰도 외에 수용자들의 뉴스 소비 방식과 태도에 대한 다양한 조사 결과가 실리는데, 이것들과 신뢰도의 관계를 설명해준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낮은 뉴스 신뢰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요인으로 ‘정파적 뉴스 소비’를 꼽는다. 최근 3년치(2020~2022년) 한국어판 보고서에는 그런 견해를 뒷받침할 ‘간접 증거’들이 차고 넘친다.
우선, 한국은 ‘나와 같은 관점의 뉴스’ 선호도가 매우 높은 나라다. 응답자의 44%가 그렇다고 답했다. 세계에서 네번째로 높다. 반면, ‘나와 반대되는 관점의 뉴스’를 선호한다는 응답은 4%에 그쳐,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낮다. ‘나와 같은 관점의 뉴스’ 선호도는 ‘매우 보수’(67%), ‘매우 진보’(55%) 등 정치적 성향이 뚜렷한 이들이 중도층(38%)보다 훨씬 높다.
정치적 성향은 언론 자유에 대한 인식에도 영향을 끼쳤다. 진보층에서는 한국 언론의 정치적 자유에 동의하는 비율이 2017년 11%에서 2022년 32%로 크게 높아진 반면, 보수층에서는 그 비율이 21%에서 16%로 오히려 줄었다. 이 기간은 문재인 정부 집권 기간과 딱 겹친다.
이런 상황에선, 정파성이 강한 독자들은 자신의 신념과 반대되는 보도를 하는 언론을 극단적으로 불신하고, 중립적인 독자들마저 정파적 보도에 염증을 느껴 뉴스를 회피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어판 보고서들을 보면, 연도별로 구체적인 수치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정치적 성향이 뚜렷할수록 뉴스를 신뢰하지 않는 비율이 눈에 띄게 높다.
더욱이 한국은 유튜브를 통한 뉴스 이용 비율이 44%(2022년 기준)로, 46개국 평균(30%)보다 훨씬 높다. 올해는 그 비율이 53%로 9%포인트나 늘었다. 주지하다시피 유튜브는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맞는 이야기만 골라 들을 수 있어 확증편향을 강화하고, 허위 정보가 여과 없이 유통되는 플랫폼이다.
물론 뉴스 신뢰도 저하의 근본적인 책임이 언론에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언론이 정치권의 진영 대결에 직접 ‘선수’로 뛰어들어 편향적인 보도를 해온 것이 ‘정파적 뉴스 시장’의 자양분이 됐다는 지적은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특히 정파성에 갇혀 사실 검증을 소홀히 하거나 사실을 자의적으로 취사선택하는 등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외면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수행한 ‘2022 언론수용자조사’를 보면, 한국의 뉴스 이용자들은 언론의 가장 큰 문제로 ‘편파적 기사’(22.1%)를 꼽았다. ‘허위·조작 정보(가짜 뉴스)’라고 답한 비율(19.9%)보다 더 높다. 또 한국의 뉴스 이용자 42%가 ‘뉴스 회피’의 이유로 ‘뉴스를 신뢰할 수 없거나 편향적이어서’를 꼽았는데, 이는 29%인 세계 평균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다.(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2) ‘해장국 언론’을 선호하는 정파성 강한 독자들의 요구만 좇아 언론이 편파적인 보도를 차별화 전략으로 삼는 것은 미디어 산업의 동반 몰락을 재촉하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저널리즘책무실장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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