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의 위기, 평생의 캐릭터가 흔들린다
최근 모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물에 달린 댓글을 보고 개인적으로 크게 놀랐다. 허재 관련 내용이었다. 농구 전문은 아니었고 이런저런 다양한 주제를 함께 나누는 성격을 띈 자유게시판 형식의 커뮤니티였다. 과거 농구대잔치 시절 허재가 상대팀의 폭력성 파울에 시달리다가 참지못해 폭발했고, 이에 다른팀 선배들이 주먹질을 하는 모습을 담고있었다.
내용 자체는 사실 생소할 것도 없었다. 실업시절 허재는 서장훈과 함께 일대일 아니 더블팀으로도 막기 힘들었던 존재다. 그런 허재에 강동희, 김유택, 한기범 등 다수의 국가대표선수들이 버티고있던 기아자동차는 그야말로 무적이었다. 때문에 기존 팀들은 언제부터인가 전략적으로 반칙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냥 반칙도 아니었다. 몸싸움이 등이 지금보다 상대적으로 더 관대한 당시 기준으로봐도 움찔할 정도의 반폭력성 반칙이 난무했다. 특히 주득점원 허재에게 쏟아지는 반칙의 수위는 린치에 가까웠다. 다혈질 성향의 허재를 흥분시켜 플레이에 지장을 주거나 싸움을 일으켜 같이 퇴장당하려는 등의 목적이 포함됐다.
기아자동차 측에서도 이를 감안하고 어지간한 것은 넘어갔다. 하지만 정도가 심해지면 참지못하고 경기가 잠시 중단되는 사태도 일어났다. 그 가운데 선배들의 폭력에 허재가 당하는 장면은 지금까지도 종종 흐린 영상으로 커뮤니티를 돌고 있다. 해당 커뮤니티에 올라온 영상도 그런 것이었다.
폭력성 반칙에 흥분한 허재가 상대에게 가까이 다가간후 얼굴이 닿을듯한 거리에서 마치 박치기하듯 머리를 들이밀었다. 이에 선배인 상대는 주저없이 주먹을 날렸다. 이후 허재는 양팀 선수들이 몸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자신을 때린 상대에게 달려들었지만 옆에 있던 다른 선배의 주먹에 다시 한번 얻어맞고 코트 바닥으로 나가떨어지고 만다.
그만큼 당시의 허재가 상대팀 입장에서 답이 없는 존재였음이 재확인되는 대목이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폭력은 용납될 수 없다. 해당 사건은 워낙 화제였던지라 오랜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각종 영상, 움짤 등으로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당시 팬들은 물론 그 시절을 겪지않은 팬들마저도 ‘다시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다.
이런저런 것을 떠나 영상 속에서의 허재는 피해자다. 흥분해서 함께 고성을 지르고 과격한 리액션을 취하기는 했지만 폭력성 반칙을 당한 것도, 이후 얻어맞은 것도 모두 팩트다. 때문에 그동안은 관련 게시물이 올라오면 상대를 비난하거나 허재와 기아자동차 멤버들의 아픔을 공유하는 댓글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좀 달라진 모습이다. 해당 게시물도 그랬다. 상대팀 선수들을 두둔하는 댓글은 물론 ‘정의구현’, ‘맞을 짓을 했으니까 맞은거다’는 등 눈을 의심할 정도의 댓글들이 달렸다. 몇 개가 아니었다. 대부분 댓글이 그랬고 간혹 팩트로만 얘기해보자는 댓글에 대해서는 공격하거나 부정하는 답글까지 달렸다.
아무리 인터넷상이라고는 하지만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해서 비슷한 내용의 과거 게시물을 찾아봤는데 댓글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이전 게시물의 상당수는 당시 팩트로만 얘기하고 인신공격성 댓글은 많지않았다. 댓글 반응만봐도 허재라는 인물을 바라보는 최근 시선이 엄청나게 달라졌음을 느끼게 해줬다.
허재는 농구계를 상징하는 인물중 한명이다. 독보적인 실력에 스타성까지 갖추고있어 용산고시절부터 전국구 스타였으며 기아-삼보(현 DB)에서의 선수생활 및 KCC, 국가대표팀 감독시절에도 인기의 중심에서 벗어나지않았다. 최근에는 각종 예능프로그램에서 맹활약하며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오빠부대부터 형님부대 거기에 더해 넥타이 아저씨 팬들까지, 남녀노소 전연령층에서 높은 인기와 인지도를 자랑한다. 대한민국 농구 역사상 이정도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은 인물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거기에 더해 ‘럭키 가이’로도 유명하다. 선수와 감독 시절 놀라운 드래프트 운이 대표적이다.
워낙 많은 팬층을 보유하고 사랑을 받은 덕분이었을까. 현역 시절부터 악동기질이 다분했던 그는 적지않은 사고를 치기도 했다. 특히 음주관련해서는 더 이상 할말이 없을만큼 적지않은 실수가 있었으며 중간중간 논란이 되는 사건에도 연루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팬들의 관심과 사랑은 변하지않았다. 호불호는 존재하지만 사랑받는(사랑받은) 스타임은 분명하다.
그런 허재가 최근에는 흔들리고 있다. 이른바 팬심이 흔들리고있는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데이원 사태’가 큰 영향을 끼쳤다. 해당 사건으로 피해를 보고있는 이들은 선수단을 비롯해 주변 업체 관계자들까지 굉장히 넓다. 다행히 좋은 쪽으로 풀려가는 분위기지만 대표를 역임했던 허재에 대한 비난여론은 여전히 심한 분위기다.
대표로서의 직함, 창단 과정에서의 적극적 개입 등으로 말미암아 책임에 대한 의견이 들끓었던 가운데 무책임하고 우유부단했던 태도에 대해 실망하고 분노한 팬들이 많다. 사태의 책임이 오롯이 허재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데이원=허재’라고 할정도로 해당 구단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책임지려는 모습과 태도가 아쉬웠다는 의견이 많다.
농구팬중 농구인 허재를 좋아하지않은 이들은 많지않을 것이다. 기자 역시 어린시절부터 허재의 팬이다. 아쉬웠던 순간에도 쉴드까지는 아니지만 그의 입장으로 마음이 살짝 기울었던 적도 있었다. 때문에 어떤 사건 때도 좀처럼 흔들리지않았던 허재의 이미지가 폭락한 이유에 대해 다각도로 생각해보았고 주변 팬들과도 의견을 나눠봤다.
다양한 이유가 쏟아지는가운데 ‘형님 이미지의 추락’에 대한 부분에 공감이 갔다. 현역시절부터 허재는 리더십이 강한 인물로 꼽혔다. 출중한 실력에 더해 후배들을 든든하게 지키고 챙기는 인물로 유명했다. 전쟁터에서 선봉에 선 장수가 그렇듯 믿고 따를 수 있는 인물이라는 이미지가 컸던 것이다. 실제로는 어땠을지 몰라도 허재하면 ‘의리’, ‘츤데레’ 등의 단어가 따라붙었다.
이같은 이미지는 허재가 이런저런 사고를 칠때마다 감싸주는 무언의 방패같은 역할을 했다.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닌데…’, ‘단순우직해서 그렇다’는 등 많은 팬들은 인간 허재, 형님 허재를 믿었다. 그런 허재의 형님 컨셉이 이번 데이원 사태를 통해 철저히 무너졌다. 데이원 경영문제로 선수단이 고통받고 있을 때 ‘괜찮다. 지켜봐달라’는 말로만 일관했으며 사건이 절정에 처하고나서야 사실을 밝히며 ‘나도 거의 돈을 받지못했다’는 피해자 발언으로 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물론 허재도 피해자 중 한명일 수 있다. 하지만 대표라는 직함이 주는 무게감과 일련의 과정을 보면 가해자의 입장에도 발을 걸친 것 또한 사실이다. 또한 경제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었던 다른 이들과 비교해 대표 재직중에도 예능프로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며 적지않은 수입을 올렸다. 알려진 것 외에 말못할 어려움이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겉으로 드러난 지금까지의 모습만 놓고보면 ‘지켜주는 허재’, ‘믿을 수 있는 허재’의 이미지가 적지않게 부서져버렸다. 오랜 인기를 지탱해주었던 캐릭터가 흔들리고있는 허재의 향후 행보가 더욱 궁금해지는 이유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백승철 기자, 윤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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