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덩이 아기에 놀라 달려간 편의점 …"타이레놀 없어요"
어린이용 타이레놀 등 2종
1년4개월 전 국내생산 중단
품절대란에 소비자만 발동동
정부, 대체약 지정 없이 방치
약사회 반대에 회의도 못열어
약국이 문을 닫는 심야 시간이나 공휴일에도 편의점에서 살 수 있었던 어린이용 타이레놀 2종을 더 이상 구할 수 없게 됐다. '안전상비의약품'으로 지정된 두 약품의 생산이 중단된 지 1년이 넘었지만 정부가 사실상 방치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뒤늦게 "두 약품을 대체할 의약품을 지정해야 하는데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7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전국 안전상비약 판매 업소 4만3000여 곳에서 어린이용 타이레놀정 80㎎과 타이레놀정 160㎎을 찾아보기 힘들다. 안전상비약의 대표 판매 채널은 편의점이다. 1만6700곳으로 전국 점포 수가 가장 많은 편의점인 CU에서는 작년 9월부터 두 제품의 공급이 중단됐다. GS25는 일부 소도시를 제외하고 대부분 점포에서 재고가 바닥났고, 세븐일레븐 역시 올 초부터 공급 불안정을 겪다가 현재 발주가 중단됐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올 초부터는 어린이 타이레놀 현탁액도 전국적인 공급난으로 납품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2012년부터 해열진통제 5종, 감기약 2종, 소화제 4종, 파스 2종 등 총 13개 품목을 상비약으로 지정해 약국 외 장소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외국과 달리 약국에서만 상비약을 구매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국민 불편을 해소하겠다는 취지였다. 일반의약품 중 주로 가벼운 증상에 시급하게 사용할 수 있는 필수 상비약 중 성분, 부작용, 함량, 제형, 인지도, 구매 편의성 등을 고려해 복지부 장관이 지정했다. 진통해열제 중에는 어린이용 타이레놀정 80㎎, 타이레놀정 160㎎, 어린이 타이레놀 현탁액, 타이레놀정 500㎎, 어린이 부루펜 시럽 등 5종이 있다.
타이레놀 공급 중단 사태는 타이레놀 제조사 한국얀센이 2020년 향남공장을 매각하면서 예견된 일이다. 국내에 남은 유일한 제조설비를 철수하면서 한국얀센은 타이레놀 공급처를 해외로 돌렸다. 안전상비약 가운데 타이레놀정 500㎎과 어린이 타이레놀 현탁액은 곧바로 수입하는 식으로 대응했지만, 2022년 3월부터 생산이 중단된 어린이용 타이레놀정 80㎎과 타이레놀정 160㎎은 1년4개월 넘게 공급이 끊겼다. 그럼에도 정부는 대체품을 지정하거나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수수방관해왔다.
복지부 관계자는 "제조소가 바뀌면 새로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타이레놀정 500㎎과 어린이 타이레놀 현탁액은 빠르게 허가를 받았다"며 "(생산 중단된) 나머지 두 제품은 재허가를 못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대체품 지정과 관련해서는 추가 논의를 해야 한다"며 "꼭 해당 성분의 약일 필요는 없다. 공공 심야 약국 법제화 등으로 도입 당시와 상황이 변화해 안전상비약의 개념을 원점에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1년 넘게 손 놓고 있다가 뒤늦게 고민에 나섰다"며 "안전상비약 품목을 확대하기는커녕 13개 품목 관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편의점 약'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졌고 도서산간 지역에서는 안전상비약이 약국의 공백을 채우고 있는데도 국민 보건에 신경 쓰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안전상비약 시민네트워크가 성인 남녀 1000명을 상대로 조사해 지난 5월 발표한 '편의점 안전상비약에 대한 국민 수요 설문'에 따르면 편의점에서 안전상비약 구입을 경험한 비중은 71.5%로 집계됐다. 이 중 95.7%가 지속적으로 구매할 의향을 표시했다. 구매 이유로는 '공휴일, 심야 시간 급하게 약이 필요해서' 비율이 68.8%로 가장 높았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에 따르면 약국이 문을 닫는 명절 연휴 또는 휴일엔 편의점 안전상비약 매출이 평일 대비 50%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수요가 늘어나고 있지만 복지부가 주최하는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 회의는 5년째 열리지 않고 있다. 안전상비약은 약사법에 의거해 20종 내로 규정하고 3년마다 타당성을 검토해 개선 등 조치를 취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2017년 대한약사회 간부가 안전상비약 확대를 반대하며 회의장에서 자해 소동을 벌여 논의가 흐지부지됐고 이후 단 한 차례의 중간 점검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 교수는 "안전상비약 제도가 도입된 지 10년이 넘었고 안정적으로 정착됐는데, 복지부는 모니터링조차 하지 않고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진영화 기자 / 강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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