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계단' 보고 南 인권 있다 느껴"…7년만에 하나원 공개
(안성=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중국에 있는 많은 탈북민이 한국에 오고는 싶어 하지만 오는 길이 너무 위험해서 못 오고 있어요. 저는 목숨을 걸다시피 해서 오는 데 성공했지만, (북송) 위험 때문에 못 오는 분들이 많습니다."
10일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 대강당에서 20대 여성 탈북민 A씨는 내외신 취재진에게 한국행 과정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A씨를 비롯한 하나원 여성 '교육생' 3명은 신분 노출을 우려해 모두 이름과 정확한 나이, 출신지 등을 숨기고 어렵게 취재진 앞에 섰다.
특히 2019년 탈북한 A씨는 신원을 철저히 숨기려고 벽 뒤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2014년 북한에서 탈출한 30대 B씨도 "한국으로 오는 길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면 안 올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북송의 후과가 어떨지 몰라 한국행을 택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지, 탈북자들이 (한국에) 오길 원하지 않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인터뷰에 응한 탈북민 3명 모두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이전에 탈북해 중국에 3∼19년 머무르다가 올해 입국했다.
이들은 모두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국경을 넘었다. 탈북 초기에는 중국어를 몰라 바깥 활동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2004년 탈북한 30대 여성 C씨는 "탈북 당시에 식량이 공급되지 않아 먹고 살기 어려워 '꽃제비' 생활도 해봤다"며 "배추 같은 채소도 못 먹어 영양실조가 왔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비교적 최근에 탈북한 A씨는 "북한에서 살던 곳이 산이 많아 자체적으로 뭘 해결할 수가 없고 밀수를 못 하면 생활이 힘든 곳인데 2016∼2017년에 당국이 밀수를 못 하게 막다 보니 생활이 힘들어졌다"며 "기름 등 생활용품이 특별히 부족했다"고 탈북 전 삶을 소개했다.
최근에 북한을 떠난 탈북민은 한국 문화의 영향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 '천국의 계단'을 시청했다는 A씨는 "한국 드라마를 처음 접했을 때 인상적이었고 한국 모습이 (조선중앙)TV에서 보던 것과 달랐다"며 "한국은 잘 사는 사회, 인권이 있는 나라라는 것을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깨달았다"고 했다.
탈북 2∼3년이 지나 중국어를 익히게 된 후로는 일자리를 구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2019년 말 코로나가 닥치면서 일상에 제약이 극도로 심해졌다.
A씨는 탈북 뒤 국경지역에 있는 중국인 집에서 은신하며 일을 했는데 신분증이 없으니 임금을 중국인의 절반밖에 못 받았고, 코로나 때문에 사실상 갇혀 살다시피 했다고 한다.
C씨도 "신분증이 없어서 아플 때 병원에 가는 것이 가장 힘들었고, 기차 같은 것도 타기 어려웠다"고 했다.
B씨는 "중국에 와서 아이도 낳고 지킬 것이 생기니까 북한으로는 다시 돌아가서 살지 못할 것 같았다"며 "무엇보다 안전하게 살고 싶고 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한국에 왔다"고 설명했다.
지난 7일 개원 24주년이 된 하나원에는 이날 기준으로 탈북민 40여 명이 교육받고 있다. 12주간 400시간에 걸쳐 우리 사회 이해증진, 진로 지도, 초기 정착지원, 정서안정 및 건강증진, 성평등 등 5개 분야에서 교육이 진행된다.
하나원 시설은 이날 취재진에 공개된 경기도 안성의 본원 외에 2012년 강원도 화천에 완공된 분원이 있다. 본원에 여성, 분원에 남성이 입소한다.
현재 시설과 인력은 연간 최대 3천명에 육박하는 교육 수요에 맞춘 것이다.
2020년부터 탈북민이 급감하면서 하나원은 교육을 마친 수련생을 대상으로 직업훈련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현재까지 250여 명이 직업훈련을 받았고 90% 이상이 한식조리, 제과·제빵, 바리스타, 미용, 피부미용, 요양보호 등 자격을 취득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이날 내외신 언론 간담회에서 "코로나로 탈북민이 급감한 후 시설을 놀리는 것보다 탈북민 재교육·심화교육을 하면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해서 하나원이 적극적으로 찾아서 추진한 업무"라고 밝혔다.
탈북민 규모가 줄었다고 안성 본원과 화천 분원을 통합할 계획은 없다고 한다.
이날 취재진 앞에 선 탈북민들은 정착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자아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한목소리로 드러냈다.
C씨는 "한국에서 말이 좀 안 통하는 것은 사실이다"라면서도 "북한에서 그렇게 힘들게 살았는데, 여기선 노력만 하면, 내 신분으로 당당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기대했다.
B씨는 "이전에 꿈꿀 수 없던 것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며 "잘해보겠다는 생각으로 기대를 품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의 세금으로 내가 한국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교육도 받고 도움도 받는데 한국에 살면서 돈을 많이 벌면 세금을 많이 내게 될지, 그러한 걱정도 하고 있다"고 말해 취재진의 웃음을 자아냈다.
tr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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