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라파엘 그로시
"여기서 마지막 한 방울까지 안전하게 방류되는지 지켜보겠다." 파란 구명조끼를 입은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지난 5일 후쿠시마 원전 앞바다로 나갔다. 거센 파도에 배가 흔들리자 왼손으로 난간을 꼭 잡고선 말했다. 전날 일본 총리를 만나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에 대한 IAEA의 평가 보고서를 전달한 그는 바닷물을 가리키며 "보고서는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딸 일곱과 아들 하나를 키우는 8남매의 아빠다. 그는 유엔의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8남매 양육법을 설명하면서 아이들에게 늘 "팩트를 보라(Look at the facts)"고 강조한다 했다. 스마트폰 세대인 요즘 아이들은 손가락 끝에서 팩트와 가짜뉴스를 혼동하기 쉽기 때문에 우선 팩트를 확인하고, 그 후에 의견을 제시하라고 교육한다고 덧붙였다.
2박3일간 한국을 방문했던 그로시 사무총장은 가짜뉴스의 홍수를 몸소 체험하고 떠났다. 9일 더불어민주당과의 만남에서 당 지도부로부터 "오염수는 핵 폐기물"이며 "보고서는 일본 맞춤형 부실 조사"라는 주장을 들었다. 팩트나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지만 생방송이 됐다. 심지어 "우리도 분담금 140억원을 내고 있으니 책임감 있게 행동하라"는 발언도 나왔다. "IAEA는 유엔 산하기구가 아니다"고 주장하는 의원도 있었다.
IAEA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는 북한과 이란 정도다. 북한은 1990년대부터 분담금을 많이 내는 미국이 IAEA를 조종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민주당이 분담금을 근거로 IAEA 뒤에 일본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의 국회의원 발언이 이 정도라니 낯 뜨겁다.
글로벌 중추 국가를 넘어 G8까지 노리는 한국. 하지만 삼성 반도체가 세계 최고이고 K팝이 전 세계를 호령하고 있다고 해서 G8이 되는 건 아니다. 가짜뉴스가 판치고 국회의원이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 상황에서 G8을 언급하는 것조차 사치다.
[한예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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