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병’ 아이에게 필요한 5가지 응원…① 기초생활보장비
13~15살 뇌 가장 복잡하고 활발히 발달
육체·정신·정서 성장…부모 관심 필요
중학생 자녀에 대한 충고와 훈육은 독
‘너를 믿고 이해한다’는 메시지 전해야
“말할 때는 짜증부터 내고, 무언가를 물어보면 ‘엄마가 왜 궁금해?’ 반문하거나 ‘그냥’, ‘몰라’, ‘알아서 할게’라고 무시하기 일쑤입니다. 도무지 대화가 통하지 않아요.”
중학교 2학년 딸을 둔 엄마 최윤경(40)씨는 최근 자신과 아예 말을 섞지 않는 딸 때문에 고민이 많다. 며칠 전에는 늦잠을 깨우는 최씨에게 “꺼져!”라고 해 충격을 받았다. 그는 “작년까지만 해도 살가운 딸이었는데, 요즘은 가족과는 담을 쌓고,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며 “기말고사 기간엔 ‘공부 좀 하라’ 했더니, ‘엄마 때문에 시험 망칠 것’이라고 협박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자신의 딸이 ‘중2병’임을 참작하더라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최씨처럼 중학생 자녀와의 소통으로 힘들어하는 부모들을 위해 박미자 성공회대 민주자료관 연구교수에게 대화의 방법들을 들어봤다. 그는 30년 중학교 교사 경험을 바탕으로 2013년 <중학생, 기적을 부르는 나이>을 출간해 중학생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바꾸는 계기를 만들었다. 올해 3월 10주년 개정판에 이어 지난 6월에는 <사춘기, 기적을 부르는 대화법>을 펴냈다.
중학생, 생각의 봄 피어나는 시기
한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병이 ‘중2병’이고, 거리에서 ‘중2’를 만나면 무조건 피해야 한다거나, 북한이 남침을 못 하는 이유가 남한의 ‘중2’ 때문이라는 농담이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또는 또래의 사춘기 청소년들이 겪는 심리 상태와 행동을 이해하기보다 병적으로 치료 대상으로 본 것이다.
박 교수는 중학교 2학년 및 그 전후 시기의 행동을 병적으로 보는 이런 시각에 반대한다. 오히려 ‘중2병’ 시기를 말썽부리는 시기가 아니라 사춘기(思春期), 뜻 그대로 ‘생각의 봄이 피어나는 시기’로 본다. 육체·정신·정서적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이 시기에는 자녀가 자신의 삶의 주체로 독립적으로 살 수 있도록 부모가 생각과 사고의 틀을 넓혀줘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부모들은 대개 자녀가 중학생이 되면 ‘육아’가 끝났다고 생각하기 쉽다”며 “오히려 이때 부모의 관심과 노력이 가장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뇌과학자들도 중학생 시기인 13살부터 15살까지의 뇌는 가장 복잡하고 가장 활발하게 발달하기 때문에 이 시기를 ‘제2의 탄생’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너무나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는 중학생 시기엔 자녀 자신도, 부모도 당황을 겪는다. 부모가 ‘말썽부리는 자녀’를 끊임없이 충고하고 훈계할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성장의 시기로 여기고, 믿어주고, 지지해주고, 격려해줘야 한다.
박 교수는 중학생 자녀에 대한 충고나 훈육은 오히려 독이라고 단언한다. 중학생 아이들은 심심한 것을 못 견뎌하고, 재미를 추구하기 때문에 스마트폰을 보고, 오락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이다. 이런 자연스러운 행동을 통해 자신만의 개성을 뽐내고, 잘하는 것에 몰두함으로써 자아정체성을 형성하면서 삶의 주인으로 성장해간다는 것이 박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부모와 자녀 사이 어느 정도의 ‘거리 두기’가 오히려 나을 수 있다”며 “행동을 바꿀 목적으로 지나치게 자녀의 일상에 개입할수록 소통은커녕 반항심이 더 심해지는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이해와 존중, 그리고 거리두기
중학생 자녀와 잘 소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박 교수는 방법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데, 이를 ‘친환경 대화’라고 칭했다. ‘네가 태어나서 고마워’ ‘너라는 존재 그 자체로 축복이야’ 등 ‘너를 믿고 이해한다’는 메시지가 반드시 담겨야 한다. 친환경 대화를 하게 되면 아이의 말에 먼저 귀를 기울이게 되고, ‘이렇게 하면 안 돼’가 아니라 ‘네가 이런 행동을 해서 마음이 아파’ 등 믿어주고 이해해주는 말이 먼저 나오기 마련이다.
주의할 점은 아이를 바람직한 행동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부모의 목적의식이다. 대화에 앞서 ‘아이가 공부하게 만들어야지’ ‘정리정돈을 잘하게 만들어야지’ ‘미래에 대한 목표를 갖게 만들어야지’ 같은 생각을 한다면 이 대화는 시작 전부터 실패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아이가 내 말을 듣지 않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는 “너는 내가 말할 때 뭘 들은 거야?”라고 화를 내기 전에, 대화의 속도를 한 박자 조절하면서 “네가 지금 어떻게 하고 싶은지 잘 알았어” 같은 말로 아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와 아이의 상황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자녀와의 대화 속에서 부모가 잘못했을 때에는 사과부터 해야 한다. 부모의 사과는 아이의 상처를 치유하는 첫 번째 과정이기 때문이다.
자녀가 학교 끝나고 집에 와서 짜증 낼 때, “왜 짜증이야?” “어이구…. 또 시작이군!” 등으로 반응할 게 아니라 “무슨 일이야?” 물으며 좀 더 깊게 들여다봐야 한다. 즉답을 피하거나 맘에 안 드는 행동을 한다고 해서 끝까지 대답과 행동 변화를 유도할 것이 아니라 “다음에 얘기하자”고 한 발 뒤로 물러나야 이후에라도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다.
박 교수는 “중학생인 자녀가 아름다운 성장을 하느라 발버둥친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사랑스럽게 보일 것”이라며 “무한사랑을 주되,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명확하게 구분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자녀가 원하는 대부분을 허용해주되, 자신과 타인, 사회에 해를 끼치는 행위만큼은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자녀에 집착하는 모습은 ‘그만’
중2를 비롯 중고생 자녀가 있는 요즘 대다수 부모의 관심사는 자녀의 성적이다. 자녀와의 대화에 앞서 부모는 스스로 ‘자녀 성적=나의 행복’으로 여기고 있지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중학생 자녀들은 그런 부모의 모습을 싫어할 뿐 아니라 자신에게 올인하기 때문에 ‘부모가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 공교롭게도 자녀에게 그런 부모는 현재의 자신을 더 우울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 제공자일 뿐이다. 그는 “중학생 자녀를 공부 잘하느냐, 못하느냐로 도구화시켜 대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신의 삶이 자녀 삶의 목표가 되고 있는지, 더 나아가 자녀에게 너무 ‘집착’하고 있는 건 건 아닌지 반성하고 성찰해보는 시간을 먼저 가져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삶의 주인으로 살고자 독립적인 사고와 생활을 꿈꾸는 청소년들은 자신의 생활에 지나치게 개입하고, 사랑을 넘어 지나친 관심을 기울이는 ‘집착형 부모’를 특히 싫어한다. 반면 부모 입장에서 자녀와 거리를 두는 일이 쉽지 않다. 그는 “자녀의 일상에 간섭하기보다 응원하고 격려하는 한편 자녀와 거리를 두면서 자녀가 정서적·심리적·물리적으로 혼자서 삶을 헤쳐나갈 수 독립훈련을 시켜야 한다”며 “부모는 그 대신 개인의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길 때”라고 조언했다.
중학생에게 필요한 다섯 가지 응원
몸과 마음이 급격하게 성장하는 중학생은 정서적으로 불안정해 주위와 갈등을 일으키고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경향이 크다. 박 교수는 이 점을 고려해 ‘중학생에게 꼭 필요한 다섯 가지 응원’의 실천을 제안했다. △기초생활보장비 지급 △날마다 환대 △“나가!”라는 말 금지 △가족 행사에 역할 부여 △가족 소통 모임 등이다.
기초생활보장비는 용돈과 유사하나, 명칭을 기초생활보장비로 바꿔 지급함으로써 자녀에게 다른 의미를 전달하기 위함이다. 용돈은 보호자가 베푼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기초생활보장비는 자기의 노동력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가족 구성원에게 일정 금액을 쓸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자산 관리에 대한 책임감을 부여할 수 있다. 박 교수는 “중학생 자녀와 함께 필요한 금액을 합의하고 날짜를 정해 매월 일정한 날에 입금해준다”며 “용돈을 주는 보호자의 태도와 지급방식에 따라 청소년의 자존감이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가족에게 사랑받고, 환영받고 환송받는 이들은 행복할 뿐 아니라 자존감이 높아진다. 또한 자신을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삶이 즐겁고, 하는 일마다 잘 될 확률이 높다. 박 교수가 ‘환대’를 중시하는 이유다. 그는 “청소년 시기 날마다 부모로부터 환영과 환송을 받는 생활을 하면 일상생활이 행복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며 “현관까지 나가 ‘잘 갔다 와라’고 열렬히 환송하고, 집에 들어올 때도 현관까지 나가서 반갑게 맞아주는 것부터 실천하자”고 제안했다.
부모들이 화나면 “나가!”라는 말이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이때 곧바로 문을 박차고 나가는 것이 사춘기의 특징이다. 나중에 “왜 나갔냐?” 물으면 “엄마가 나가라고 해서 나갔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박 교수는 “‘나가’라는 말이 하고 싶은 상황이 되면 차라리 부모가 나가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산책하고 돌아오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사춘기 때는 최씨의 딸처럼 가족과 어울리지 않고 자신만의 동굴에서 나오지 않으려 하는데, 여행이나 가족 행사 등을 활용해 아이가 가족 구성원의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해주면 좋다. 이때 자녀와 함께 의논하고, 식사, 간식, 입장료 등의 재정을 담당하는 총무를 맡게 한 뒤 칭찬하는 방법을 활용한다면 자연스럽게 자녀와의 대화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박 교수는 여행과 가족 행사와 별개로 한 달에 한 번 가족이 함께 모이는 갖는 ‘가족 소통 모임’도 제안했다. 가족회의라고 해서 딱딱한 분위기를 연출할 것이 아니라, 가족이 맛있는 음식을 먹는 날로 삼고,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가족 간 대화를 가져보라는 것이다. 그는 “가족 소통 모임은 가족들의 생활에 대한 이해는 물론 서로 응원하고 배려하는 시간을 갖게 해 끈끈한 가족 공동체를 만들어준다”고 말했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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