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 이주민 이유로…‘포천 집단폭행’ 피해자는 구금되고, 가해자는 풀려나고
경기 포천에서 10대 청소년들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한 미등록 이주민이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되고 가해 청소년들은 귀가 조치되면서 외국인 범죄 피해자에 대한 보호 조치가 미흡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주한 베트남대사관과 피해 이주민 측은 법무부에 구금을 일시 해제하고 체류 자격을 부여해달라고 요청했다.
10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포천의 한 도로에서 지난 1일 오전 7시쯤 오토바이를 몰던 10대 4명이 또 다른 오토바이를 운전하던 베트남 국적 미등록 이주민 A씨와 B씨를 길가에 멈춰 세웠다. 청소년들은 두 사람이 탄 오토바이에 번호판이 없는 것을 보고 지갑을 내놓으라 요구하며 “불법 체류자 아니냐, 신고하겠다”며 겁박했다고 한다.
A씨는 가까스로 도망쳤지만 B씨는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청소년들로부터 1시간 넘게 온몸을 두들겨 맞고 도로 위에서 끌려 다니는 등 폭행을 당했다. 이후 119 구급대가 출동해 인근 병원으로 B씨를 이송하려 했지만 병원 측이 미등록 체류 상태라는 이유로 거부하면서 B씨는 제때 병원 치료를 받지 못했다. 지난 3일 병원에서 발급받은 상해진단서에 따르면 B씨는 흉부에 타박상을 입었다.
경기 포천경찰서는 가해 청소년들을 귀가시켰지만 B씨는 미등록 이주민이라며 양주 출입국·외국인사무소(외국인보호소)로 인계했다. 양주 출입국·외국인사무소는 곧바로 B씨를 구금했다. 경찰이 범죄 피해자인 B씨를 출입국·외국인사무소로 인계한 건 경찰 내부 지침과 함께 출입국관리법상 공무원이 미등록 이주민을 발견하면 출입국·외국인사무소에 통보하도록 한 ‘통보의무 제도’ 때문이다.
통보의무 제도는 그동안 인권 침해 소지가 크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임금체불을 구제받기 위해 노동청에 신고를 하거나 자녀의 출생신고를 할 때, 범죄 피해를 신고할 때 등과 같이 관공서 방문이 꼭 필요한 상황에서도 미등록 이주민들은 이 제도 때문에 관공서를 찾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 현행 출입국관리법에도 범죄 피해나 인권 침해를 당한 미등록 이주민에게 피해 구제가 필요할 경우 공무원은 통보하지 않아도 되도록 규정됐다. 하지만 공무원이 임의로 출입국·외국인사무소에 미등록 체류 사실을 통보하거나 인계하는 것까지 막을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포천 집단폭행 사건의 경우 경찰이 가해 청소년들 주장에 따라 B씨도 쌍방폭행 혐의로 입건까지 했다. 경찰은 집단폭행 사건과 별개로 B씨의 무면허 운전 혐의가 발견돼 규정대로 조치한 것이라 밝혔고, 양주 출입국·외국인사무소도 구금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주한 베트남대사관은 이날 탄원서를 작성해 법무부 등 관계기관에 B씨에게 필요한 조치를 해줄 것을 요청했다. 대사관은 “한국 정부는 범죄 피해자 등 인도적인 사유가 있을 경우 미등록 외국인의 외국인 보호소 구금을 일시 해제하거나 피해회복 관련 법적 절차를 거치는 기간 동안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체류 자격을 미등록 외국인에게 부여하고 있다”며 “피해자가 범죄 피해자로서 권리를 실현하고 피해를 온전히 회복할 수 있도록 외국인보호소의 구금 일시해제 및 체류자격 부여 등 인도적인 조치를 취해주실 것을 요청드린다”고 했다.
B씨 측도 이날 법무부에 주한 베트남대사관의 탄원서를 제출하고 민원을 제기했다. B씨 변호인인 최정규 변호사는 “피해 외국인이 형사 절차에서 피해자의 권리를 행사하고, 피해회복을 위한 민사 소송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구금 상태가 신속하게 해제돼야 한다”며 “중대범죄 피해로 민·형사상 권리구제 절차가 진행 중인 사람에게 부여되는 G-1-11 체류자격도 부여할 것을 요청했다”고 했다.
최 변호사는 “이 사건은 단순한 폭행이 아닌 인종차별 범죄인데 우리나라는 인종차별 범죄를 처벌할 규정도, 수사기관의 의지도 없다”며 “강도상해로 처벌돼야 할 범죄가 폭행으로만 입건됐고, 피해 외국인은 외국인보호소로 인계됐다”고 했다. 이어 “피해 외국인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호소하고 있다. 그가 치료와 피해회복에 집중할 수 있도록 우리 정부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보라 기자 purp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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