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서] ISDS재판부 한마디에 벌벌 떠는 나라
1990년대 '탱크주의'로 이름을 날렸던 대우전자는 2000년 대우그룹의 몰락과 함께 채권단의 손에 넘겨졌다. 새 주인을 찾기 위한 험난한 여정 끝에 2010년 이란 기업 엔텍합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채권단은 엔텍합이 투자확약 단계에서 금액을 임의로 낮췄다는 이유로 계약을 해지했다. 지루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S)의 서막이었다.
채권단에서 동부그룹, 대유위니아그룹으로 주인이 세 차례 바뀌었음에도 ISDS 소송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2015년 엔텍합의 소유주인 이란 다야니 가문이 정부를 상대로 ISDS를 제기했고, 2018년 ISDS 중재판정부는 한국 정부가 다야니 측에 73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대(對)이란 제재 강화로 배상금 지급이 지연되자 다야니는 이를 이유로 2021년 다시 ISDS 소송을 걸었다.
ISDS 소송의 유탄은 위니아전자와 직원들이 맞고 있다. 한때 고객이었던 다야니가 위니아전자에 갚아야 할 채무를 ISDS가 끝난 뒤 갚겠다는 핑계로 수년째 미뤄왔다. 다야니 측은 236억원 상당의 매출채권을 한국 정부로부터 받을 배상금으로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또 다른 다야니 가문 사람들이 위니아전자에 소송을 제기하면서 일이 꼬였다. 최악의 자금난을 겪는 위니아전자에 이 돈은 '최후의 보루'다.
다야니는 '걸면 걸린다는' ISDS의 맹점을 파고든 대표적인 케이스다. 밑져야 본전이고, 갚아야 할 돈도 이를 핑계로 안 갚고 있으면 된다.
ISDS는 국내법을 초월한다는 맹점도 있다.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한 ISDS 소송에서 대화 내용을 몰래 녹음해 증거로 제출했던 일이 있다. 론스타는 대화 내용을 동의 없이 녹음하는 것이 합법인 나라로 당사자를 불러 녹음했다. 후에 이 녹음 내용은 중요한 증거로 작용했다.
ISDS는 최근 헤지펀드 엘리엇이 제기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관련 소송에서 한국 정부가 1400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일각에서 판정에 불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자 어디선가 엘리엇·삼성물산의 비공개 합의 내용이 흘러나왔다. 우연의 일치라기에는 전개 방식이 너무도 극적이다.
ISDS 중재인들은 글로벌 로펌 출신 법률인이 대부분이다. 로펌들과 관계가 깊은 측이 게임에서 유리하다. 우리는 언제까지 ISDS의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는 나라로 남아야 할지 한숨만 나온다.
[최승진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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