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법정] 밀레의 그림값

2023. 7. 10.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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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작품 재거래될 때마다
유족에 수익 일부 주는 추급권
소수 유명작가에게만 유리해
판매기회 확대·저작권 강화 등
예술가를 위한 실질방안 필요
장 프랑수아 밀레의 1857년作 '만종'. 매경DB

텅 빈 들판에 선 남루한 차림의 부부가 하루 일을 마치는 의식을 거행하듯 기도한다. 숭고하고도 평온하다. 1857년 장 프랑수아 밀레가 제작을 의뢰받아 그린 '만종'이다. '이발소 그림'이라 불릴 만큼 훗날 최고 걸작으로 많은 이의 사랑을 받았다.

밀레는 프랑스 바르비종에서 지내며 이웃 농민들의 삶을 화폭에 담았다. 혁명 이후 노동자와 농민들의 봉기와 소요가 이어지고, 이를 틈타 루이 나폴레옹이 공화제를 폐지하고 제정을 시작하던 혼란한 시기였다. 보수화된 중산층은 밀레의 그림이 편치 않았다. '좌편향되었다' '불순하다'는 오명 속에 작품은 팔리지 않았다. 작품을 의뢰했던 이 역시 이 그림을 사지 않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밀레가 세상을 뜬 후 이 그림값은 폭등했다. 1860년 1000프랑이던 그림값이 1881년 16만프랑에, 이어 55만2000프랑에 미국으로 팔려갔다. 1890년 한 프랑스 기업인이 80만프랑에 되사들이고 프랑스 정부에 유증했다. 그림값이 가파르게 치솟아도 이득을 보는 이들은 따로 있었고, 정작 밀레의 유족은 가난에 허덕였다. 이때 탄생한 개념이 바로 추급권(재판매보상청구권)이다. 작품이 다시 판매될 때마다 발생하는 수익의 일부를 원저작자인 작가 또는 유족에게 배분하자는 것이다. 프랑스는 1920년 추급권을 법제화했고, 이후 베른조약에 따라 유럽연합(EU) 국가들도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최근 재판매보상청구제도가 담긴 '미술진흥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미술계는 작가의 권익 보장을 위한 제도라며 대체로 환영하고 있다.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도 있다. 애초에 추급권 도입은 2010년 한·EU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시 EU 측의 요구 조건이었다. 교역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인이 유럽에서 사들이는 작품과 유럽에서 사 가는 우리 작품의 비중은 차이가 크다. 신흥 미술 시장보다 이미 대가의 반열에 올라 끝없이 재판매가 이뤄지는 작품이 많은 유럽 미술 시장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 이 제도를 도입하지 않는 이유다.

혜택은 극소수의 유명 작가들에게 돌아갈 뿐 1차 판매도 어려운 게 현실인 작가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에 비해 제도화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은 크다. 집계가 분명한 음원이나 도서 산업과 달리 사인 간 거래가 많은 우리 미술 거래의 특성상 재판매를 파악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정부나 징수 기관에 거래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부담은 오히려 미술 시장을 위축시키거나 거래를 음성화할 수도 있다.

정말 우리 시대 예술가들에게 필요한 것은 실효성이나 실리성이 떨어지는 20세기의 추급권이 아니라, 1차 판매 기회를 확대할 수 있는 미술 시장의 활성화와 저변 확대, 그리고 저작권료 징수 현실화를 포함한 저작권 제도의 적극적인 활용이다.

[캐슬린 김 미국 뉴욕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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