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리대첩의 김좌진, 노비해방·교육계몽도 했다 [함영훈의 멋·맛·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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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홍성)는 의기, 충절, 문화, 예술의 팔방미인 고을이다.
고려 최영 장군의 의기, 조선 성삼문의 지혜와 충절을 백야 김좌진이 일제의 오금을 저리게 하던 의병정신으로 이어받았다.
홍성군에서는 1995년 문화제 행사시 제 1회 최영 장군 영신제를 갖고 1996년 이후에도 영신제를 올려 최영 장군의 넋을 달래고 있다.
홍성군은 매년 10월 25일 청산리전투 승전기념일에 맞춰 이곳에서 장군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는 추모제를 거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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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주(홍성)가 낳은 인물 열전
최영·성삼문·한용운·이응노의 유산
족적·스토리·교훈, 인문학 여행지로
이응노화백, 만해의 아들과 초등 동기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홍주(홍성)는 의기, 충절, 문화, 예술의 팔방미인 고을이다.
고려 최영 장군의 의기, 조선 성삼문의 지혜와 충절을 백야 김좌진이 일제의 오금을 저리게 하던 의병정신으로 이어받았다.
그리고 백야는 노비 해방, 학교설립을 통한 교육·계몽을 통해 평등사회 구현과 국가 백년대계도 도모했다는 사실이 향토사학자들의 고증을 통해 밝혀졌다.
시 만 쓰는 줄 알았던 만해 한용운은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고, 일제 지배의 부당성을 명문장으로 설파하는 등 저항운동을 펼쳐 옥고를 치른다.
만해 한용운의 아들 한보국과 초등학교 동창생인 이응로는 팝아트로 상업화된 채 미술사적 흐름을 이어가지 못하던 세계미술계에 ‘문자 추상’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며 세계를 놀라게 한다. 홍성은 위인들의 고향이다.
▶최영장군 사당= 홍북면 노은리는 고려 공민왕 때 최영 장군이 1316년에 출생한 영지이다. 노은리 삼봉산정에 있던 무민공의 사우는 어느 때 철거되었는지 기록이 없고 1995년 말 삼봉산정에 사당을 재건축했다.
최영은 어려서부터 기상이 영민하고 남다른 용맹과 지모가 있어 문무를 겸비한 비범한 인물이었다.
공민왕 이후 각종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뛰어난 장군이자 고려정권의 핵심에 있었으나, 이성계의 군사 쿠데타 이후 조선건국 세력들에 의해 실각하고 죽음을 당한다.
홍성군에서는 1995년 문화제 행사시 제 1회 최영 장군 영신제를 갖고 1996년 이후에도 영신제를 올려 최영 장군의 넋을 달래고 있다.
▶성삼문선생 유허지= 홍북읍 매죽헌길은 성삼문 선생의 외가가 있던 곳으로 유허지는 그가 태어난 집터이다. 성삼문은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폐하고 왕위에 오르는 것에 반대한 사육신의 한 사람이다.
세종(재위 1418~1456) 때 집현전의 학자로 훈민정음 창제에 크게 공헌하였으며, 단종 폐위에 대해서도 굳은 절개를 지켜 죽임을 당했다.
1954년 홍성 고적현창회에서는 제단을 보수하고, 해마다 음력 10월 20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전의 제단자리는 이곳에서 동북쪽으로 약 50m 지점에 있으며, 유허비는 약 30m 거리의 마을 앞에 있다.
▶김좌진장군 생가지= 갈산면 백야로 546번길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독립 운동가 백야 김좌진장군이 태어나고 성장한 곳이다.
김좌진장군은 한국 독립투쟁사에서 최고의 전과로 기록되는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것으로 유명하다.
장군은 이곳에서 15세 때 노비문서를 불사르고 전답을 나눠줬으며, 17세 때는 갈산중고등학교 자리에 호명학교를 세워 신학문을 교육했다.
1991년부터 성역화사업을 추진해 본채와 문간채, 사랑채를 복원하고 기념관, 사당, 공원을 조성했다.
홍성군은 매년 10월 25일 청산리전투 승전기념일에 맞춰 이곳에서 장군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는 추모제를 거행하고 있다.
▶한용운선생 생가지= 결성면 만해로 318번길은 독립 운동가이자 승려이며 시인인 만해 한용운 선생이 1879년 태어난 곳이다.
1919년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의 공약 3장을 작성했으며 1926년에는 시집 ‘님의 침묵’을 출간해 저항문학에 앞장섰다.
생가는 낮은 야산을 등진 양지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생가가 쓰러져 없어진 것을 복원해 생가와 관리사무소, 만해사, 민족시비공원 등을 조성했다.
싸릿대 울타리로 복원된 만해선생의 생가는 초가지붕을 얹었으며 방2칸, 부엌 1칸으로 구성된 일자형 구조로, 한용운이라는 문패가 걸려있다.
생가 입구에는 만해 선생의 생애를 알 수 있는 만해문학체험관이 있다. 생가지 뒷편 소나무숲길은 건강 산책길이다.
▶고암 이응노생가 기념관= 이응노 화백은 1904년 홍성에서 태어나 1989년 파리에서 생을 마칠 때까지 온 삶을 새로운 추상회화 장르의 개척, 가족사랑, 고국사랑 관련된 그림으로 채운 화가이다.
21세인 1924년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처음 입선한 이후 일제강점기에 이 전람회에서 여러 차례 수상했다. 일본 유학을 거쳐 해방 후에는 새로 개설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를 지냈고, 50대에 프랑스 파리로 건너갔다.
이응노는 한국의 전통 서화를 바탕으로 한 ‘문자 추상’ 작품을 선보여 유럽 예술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으며 학교를 세우고 서구 젊은이들에게 동양 예술을 가르쳤다.
그가 남긴 3만 여점의 작품은 전통 서화부터 그가 개척한 ‘문자 추상’에 이르기까지 매우 폭넓고 다양하다.
홍북읍 이응노로 61-7 생가기념관 앞 연지에는 7월 중순부터 연꽃이 만발한다. 기념관은 생가를 비롯하여 전시동과 부속동(자료실, 북카페), 연지공원과 야외전시장으로 이루어져있으며, 유품과 작품 863점을 소장하고 있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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