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에 하나원서 탈북민 인터뷰…"죽겠구나 싶어서 도망"
2016년 이후 7년 만에 처음…촬영 금지 조건
통일부, '대북지원부 탈피' 지침 이행 분주
[안성=뉴시스] 남빛나라 기자 = "영양실조가 왔고 이렇게 하다간 내가 죽겠구나 해서 도망가게 됐다."
"신분증이 없어서 중국 사람 절반 값에 일하고 코로나19 때문에 바깥 출입도 못했다. 한국에선 신분이 생기니까, 저도 사람처럼 당당히 살고 싶었다."
10일 경기도 안성에 위치한 하나원(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에서 탈북 여성 3명이 70여명의 내외신 기자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하나원 교육생이 이곳을 방문한 취재진과의 인터뷰에 나선 건 2016년 이후 7년 만에 처음이다.
2014년 북한에서 탈출한 30대 A씨는 중국에서 가정을 꾸려 아이를 낳고 살다가 한국행을 결심했다. 그는 "중국에서 불법으로 있다 보니까 사회적인 활동도 할 수 없고 당당하게 나서지 못했다"며 "이전엔 몰랐던 삶에 적응이 되니까 북한으로 돌아가서 살던대로는 다시 살지 못하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빠져나온 지 19년이 됐지만 최근 국내 입국에 성공한 30대 B씨는 영양실조 위기에서 "신분증이 없어도 중국이 북한보다 낫다"는 마음으로 중국 땅을 밟았다.
B씨는 "북한에서 먹고 살기 힘들어서 꽃제비(가난한 어린 부랑자) 생활도 해봤다"며 "7살, 8살 땐 (식량) 배급을 받았는데 10살부턴 배급이 없었다. 엄마가 장사를 했는데 장사도 안 되고 쌀만 갖고 내려오면 경비대 사람이 다 뺏고 이런 상태에서 미공급(식량 배급 중단)이 강하게 돼서 먹기도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중국에선 신분증이 없어서 병원에 갈 때, 기차를 탈 때 힘들었다"며 "언니들이 한국에 가면 신분증도 주고 중국보다 더 잘 살 수 있다고 해서 오게 됐다"고 말했다.
비교적 최근인 2019년 탈북한 20대 C씨는 "국경지대에 살았는데 2016, 2017년부터 밀수를 못하게 너무 막다 보니까 생활이 너무 힘들어져서 나오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만 우린 영어도 잘 모르고 외래어도 잘 모른다"며 "탈북민이라고 해서 이상한 눈길로 보면서 말이 다른 것(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를 시청한 경험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 드라마를 처음 접했을 때 인상적이었다. (북한) TV에서 말하는 것과 다른 현실을 보게 됐다"며 "(남한은) 잘 사는 사람이랑 못 사는 사람 차이가 엄청 심하다고 들었지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국은 잘사는 나라구나, 인권이 보장되는 나라구나 하는 걸 드라마를 통해서 보게 된다"고 말했다.
이번 인터뷰는 일정 자체가 이례적이라 눈길을 끌었다. 통일부가 취재진을 하나원에 초청하는 행사는 종종 있었지만, 행사에서 비보도(보도하지 않음)가 아니라 보도 전제로 탈북민 인터뷰 자리를 마련한 경우는 드물다.
실제로 통일부는 언론 노출을 꺼리는 탈북민들을 설득한 끝에 이번 인터뷰 일정을 성사시켰다. 인터뷰에 나선 탈북민들은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목소리를 방송할 경우 음성변조를 한다는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C씨는 얼굴을 드러낸 A, B씨와 달리 커다란 검은 구조물 뒤에 서 모습을 가린 채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통일부가 이런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인터뷰를 조율한 건 남북대화, 교류, 협력 및 인도지원이란 기존 역할에서 벗어나 북한인권, 탈북민 정착 지원에 힘쓰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침을 이행하기 위해서다.
권영세 장관은 인터뷰 배경을 묻는 외신기자 말에 "특별한 의도는 없고, 지난 정부와 달리 우리 정부의 특징을 보여야 하는 부분에 대해선 보이겠단 말씀을 드린 바 있다"고 답했다.
하나원의 언론 노출도는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에 따라 변화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었던 문재인 정권 시절인 2019년 7월 열린 하나원 개원 20주년 행사는 통일부 장차관 등 고위인사들이 무더기로 불참한 채 비공개로 치러졌다. 당시 북한을 의식한 정부가 의도적으로 행사를 축소했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권 장관은 지난해 23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데 이어 올해도 하나원을 방문해 탈북민들과 오찬을 진행하고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south@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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