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가 놀던 돌’ 노들섬…여기에 펍, 미타임, 스퀘어 섞어야 할까
지난 6월 3일 서울 용산구 노들섬을 찾았다. 한강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있다. 노들섬, 여의도, 선유도, 밤섬, 세빛섬….
이 중 노들섬은 한강대교 중간에 있는 타원형 모양의 땅으로 ‘백로가 놀던 돌’이라는 뜻의 ‘노돌’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한때는 한강 놀이문화의 중심지였으나 40여 년간 외딴섬으로 방치돼 있던 노들섬을 서울시가 2019년 자연·음악·책과 쉼이 있는 문화복합공간으로 만들었다.
맑고 선선한 날씨를 보인 이날 노들섬은 나들이를 나선 가족, 연인, 친구들로 북적였다. 때마침 노들섬 일대에선 ‘2023 서울비보이페스티벌’이 열려 징검다리 연휴를 맞아 축제를 찾은 시민들이 비보이(B-boy·브레이크 댄스를 전문적으로 추는 사람)들의 열정적인 공연에 흠뻑 빠져들었다. 무대 앞을 지나자 ‘3on3 댄스 배틀’이라는 말이 보였다. ‘댄스 배틀’은 요즘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많이 쓰는 말이지만 ‘3대3 춤 대결’이라고 하면 누구나 쉽게 그 뜻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김형주 상명대 국어문화원 교수는 “‘3on3’이니 ‘댄스 배틀’이니 하는 외국어가 우리말에 들어온 지는 한참 됐는데 하루아침에 ‘3대3 춤 대결’로 바꿔 쓰자고 하면 어색하게 느낄 수도 있다”며 “다만 ‘배틀’을 그대로 쓰면 ‘전투’나 ‘싸움’의 성격이 강하지만 ‘대결’이나 ‘겨루기, 한판승부’ 등으로 바꾸면 스포츠가 될 수 있다. 순화어를 씀으로써 우리의 생각이 바뀔 수 있으면 더 좋겠다”라고 말했다.
노들섬 주요 시설 대부분이 외국어
한강대교를 사이에 두고 서쪽 편으로 들어서 1층으로 내려가면 가장 먼저 노들오피스가 나온다. 노들섬 시설 소개 누리집(https://nodeul.org/)을 보면 ‘다양한 문화 산업을 생산하고 있는 업체들이 입주해 있는 업무공간’이란 설명이 있는데 ‘노들오피스’ 대신 ‘노들업무공간’ 혹은 ‘노들사무실’이라고 쓰면 어떨까? 노들오피스를 나와 잔디마당 쪽으로 향하자 다양한 식물로 둘러싸인 공간 안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노들라운지’가 나왔다. 한글문화연대 ‘쉬운 우리말 사전’에 따르면 라운지는 ‘맞이방’, ‘휴게실’로 쉽게 표현할 수 있다. 2층으로 올라가자 노들섬 입구 광장 ‘노들스퀘어’가 펼쳐졌다. 굳이 스퀘어란 표현을 쓸 필요 없이 우리말로 풀이한 ‘노들광장’이라고 쓰면 좋겠다.
노들섬 소개 안내판을 보면 노들오피스, 노들라운지, 노들스퀘어 외에 라이브하우스, 노들갤러리, 노들펍, 노들LAB 등 대부분이 영어식 이름으로 돼 있다. 노들은 순우리말이지만 정작 노들섬을 구성하는 주요 공간들 이름엔 외국어를 섞어 쓴 경우가 많다. 필요하다면 로마자를 함께 쓸 수는 있지만 장소의 이름을 모두 외국어와 외래어로 쓴다면 뜻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인근 세빛섬도 외국어 표현 일색이기는 마찬가지다.
‘세 개의 빛나는 섬’을 뜻하는 우리말 이름인 세빛섬은 영어로 ‘some sevit’이라고 쓴다. 세빛(sevit)에 ‘경탄할 만한, 환상적인’ 등의 의미를 가진 ‘awesome’을 결합해 방문객들이 감탄을 자아낼 만한 멋진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게다가 세빛섬을 구성하는 4개의 인공 섬 표기도 외국어 투성이다. 가빛섬(some gavit, 佳島), 채빛섬(some chavit, 彩島), 솔빛섬(some solvit, 帅島)과 연계시설인 예빛섬(some yevit, 艺島)을 국제적인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영문, 중문으로 표기했다는 것이다. 과연 이 표기를 보고 외국인들이 세빛섬을 ‘세 개의 빛나는 섬’으로 인식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친근한 우리말 ‘달빛노들’·‘잔디마당’
물론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살린 시설도 노들섬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노들섬 둘레길을 걷다보면 거대한 인공 달을 만날 수 있다. ‘달빛노들’이다. 달빛노들은 보름달을 형상화한 지름 12m 원형구조의 공공미술작품으로, 국제지명공모 당선작이다. 백년 휴양지였던 노들섬의 의미와 달에 대한 한국인들의 기원적 정서를 담았다고 한다.
달빛노들을 지나 강변을 걸으니 3000㎡ 규모의 잔디밭 ‘잔디마당’이 펼쳐졌다. 서쪽으로 펼쳐지는 황홀한 저녁 노을의 낭만을 즐길 수 있고 다양한 야외 행사도 열려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 이날도 곳곳에 많은 시민들이 돗자리를 펴고 한강을 바라보며 나들이를 즐기고 있었다. 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은 김석현 씨는 “달빛노들, 잔디마당 등 우리말 명칭이 외국어보다 훨씬 친근하게 다가온다”며 “영어식 시설물 이름을 우리말로 바꾸는 것도 좋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실제 과거 서울시는 한강공원 시설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국적 불명의 외국어로 된 한강공원 시설물의 명칭을 친근한 우리말로 바꾼 바 있다. 이에 따라 ‘플로팅스테이지’는 ‘여의도 물빛무대’로, ‘리버뷰 8번가’는 ‘광진교 8번가’로 바뀌었다. 또 뚝섬에 있는 ‘워터 스크린’은 ‘뚝섬물보라극장’으로, ‘망원 그린웨이’는 ‘망원초록길’로, 난지한강공원에 있는 ‘중앙연결 브릿지’는 ‘난지하늘다리’로 새 이름을 얻었다. 서울시는 “한강 주요 시설물에 국적 불명의 외국어가 과도하게 사용됐다는 지적이 많아 아름다운 순우리말로 개선했다”라고 설명했다.
글·사진 나윤정 객원기자
감수: 김형주 상명대 국어문화원 교수
공동기획: 한겨레신문사 (사)국어문화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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