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런 미중관계 봉합했지만…이번엔 대만 여당후보 방미 '암초'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의 6∼9일 중국 방문으로 미중 양국이 오판에 따른 충돌을 막을 수 있는 '상황 관리'의 틀을 마련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양국 갈등과 대립은 그저 '봉합'된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핵심 사안인 미국의 중국 배제 첨단 반도체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 중국의 갈륨·게르마늄 수출 제한, 미국의 대(對)중국 고율 관세 등과 관련한 논의에선 한 치의 진전도 이루지 못한 가운데 비중 있는 돌발 사안이 발생하면 언제든 틀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대만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의 라이칭더 총통 후보의 방미 가능성도 그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라이 후보는 8월 중 산티아고 페냐 파라과이 대통령 취임식 참석을 계기로 미국 방문을 논의 중이다.
미·중 관계가 겨우 봉합됐지만 앞으로도 가변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옐런 '상황 관리' 채널 복원에도 美中 핵심 현안 긴장 여전
그간 미국은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 각종 경제·안보 이슈로 수년째 압박해왔으며, 중국은 '대국 굴기'의 기치를 들고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이런 탓에 첨단 반도체 문제에서 대만·남중국해 영유권 문제, 우크라이나전쟁 등 모든 분야에서 미·중 간에 충돌 위기가 고조됐다.
미국이 지난달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에 이어 이번에 옐런 재무장관을 중국에 보낸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상황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미국 정관계에서 자신을 '대중국 비둘기파'로 칭한 옐런 장관은 이번 방중 기간 4차례의 10시간 회담을 통해 미국의 상황 관리 의지를 부드러운 톤으로 피력했다. 그러면서도 디리스킹·대중 고율 관세 등에선 입장 변화가 없음을 알렸다.
중국 역시 예상했다는 듯 갈륨·게르마늄 수출 제한이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그런데도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에 미·중 관계가 약간의 진전을 이뤘고, 고위급 대화 채널이 복원될 수 있도록 장애물을 통과했다고 평가했다.
적어도 미·중 간 경제·안보 논의 채널 확보는 성과라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기간을 포함해 수년째 미중 양국 간 경제·안보 소통 채널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고, '시진핑 집권 3기'의 경제팀이 전원 물갈이됐는데도 미·중 간에 전혀 교류가 없던 상황에서 옐런 장관의 방중이 기회가 됐다.
4년 만에 방중한 옐런 장관은 이번 방중 기간에 리창 국무원 총리를 정점으로 허리펑 부총리, 류쿤 재정부장,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행장 취임이 유력시되는 판궁성 인민은행 당 위원회 서기를 만나 집중적으로 의견을 나눴다.
옐런 장관이 중국을 떠나기에 앞서 "직접적이고, 실질적이며, 건설적인 대화였다"고 밝힌 것은 경제·안보 채널 가동을 의식한 언급으로 읽혔다. 신화통신 등 중국 관영 매체들도 대체로 "실무적인 교류였다"는 반응을 보였다.
10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류쿤 재정부장도 옐런 장관 방중으로 미·중 간에 경제 분야 고위급 교류가 합의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충돌한 '디리스킹', '갈륨·게르마늄 수출 제한' 등과 관련한 논의에서 양국이 서로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은 건 의미가 작지 않다.
옐런 장관은 디커플링(공급망 등 분리)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면서도, 미국의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첨단무기 제조로 이어질 수 있는 반도체 등에 대한 대중국 디리스킹 필요성을 강조했다.
중국 역시 국가 안보 핑계를 댔다. 8월 1일부터 시행할 갈륨·게르마늄 수출 제한 역시 국가 안보와 이익 때문이라는 주장을 고수했다.
중국은 그러나 추가적인 압박 조치를 거론하지는 않았다.
미국의 중국산 제품 고율 관세 부과 문제와 관련해서도 양 측은 팽팽했다. 이는 중국의 대미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악화시키는 요인이지만, 해법은 나오지 않았다.
이처럼 미중 양국은 핵심 갈등·대립 사안에 '마이웨이' 식으로 대응했다.
옐런 장관은 미국 현지시간 9일 CBS의 '페이스 더 네이션' 방송에 출연해 "미·중 양국이 서로 경제 관계에 해를 끼칠, 의도하지 않은 사태 격화에 관여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방중 목적이었다"고 언급했다.
해결 힘든 건 일단 놔두자…기후 변화 협력 가능성 눈길
외교가에선 미·중 양국이 서로 의견이 상충하는 사안에 대해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서로 이익이 되는 사안을 우선 추구하는 '구동존이(求同存異)' 가능성을 기대한다.
특히 기후변화에 맞서는 협력을 할지를 주목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케리 미 기후변화 특사가 이번 주 중국을 방문한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2020년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2030년에 탄소 배출 정점을 찍고 2060년에 탄소 중립을 실현하겠다는 이른바 '쌍탄'(雙炭) 목표를 제시했을 정도로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의지를 보여왔다.
물론 중국은 최근 1∼2년 새 에너지 부족 위기 속에서 석탄 화력발전소를 증설하기도 했으나, 자국의 기후 변화 대처 의지는 분명하다는 입장이다.
미국 역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임 시절 기후변화 대처 노력이 미흡했으나, 조 바이든 행정부 이후 적극적인 자세로 바뀌었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국제사회는 케리 특사의 이번 방중을 통해 세계 최대 환경오염 배출 국가인 미·중 양국이 '의미 있는' 합의를 할 지 주목하고 있다.
옐런 장관도 8일 중국의 기후변화 관련 당국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기후변화는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라면서 "세계 최대의 두 경제 대국이 이 같은 도전에 맞서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케리 특사에 이어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의 방중이 이뤄진다면 미·중 간 고율 관세 문제가 심도 있게 논의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또한 기후 변화 협력 이외에 펜타닐 위기 대처 협력 방안도 미·중 간 접점 찾기가 가능한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좀비 마약'으로 불리는 펜타닐로 미국이 골머리를 앓는 데 비해 중국은 펜타닐 원료의 주요 공급국이다.
중국은 마약 문제에 대한 국제협력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진통제인 펜타닐 원료만을 생산하는 중국 기업에 대해 미국이 무작정 불법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입장이어서 합리적인 논의가 이뤄진다면 접점이 찾아질 수 있어 보인다.
작년에만 11만명의 미국인이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는데 이들의 사인 중 3분의 2가 펜타닐 등 합성마약이었다는 점에서 미국은 다급하다.
이 때문에 이미 '합성마약 대응을 위한 글로벌 연대회의'를 출범시킨 미국은 펜타닐 위기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이 연대회의에 중국은 참여하지 않았다.
'中 극렬 반발' 대만 라이칭더 방미 카드 급부상
라이칭더 후보의 미국 방문 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현재로선 그 폭발력을 가늠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중국이 작년 8월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을 계기로 사실상 대만 침공 군사훈련을 벌이고 미국과의 주요 소통 채널을 차단했던 전례로 볼 때 그와 유사한 대응을 할 것으로 점쳐진다.
라이 후보는 지난 4월 차이 총통이 중미 과테말라·벨리즈 방문을 계기로 미국을 찾은 것과 비슷하게 방미를 추진 중이다. 페냐 파라과이 대통령 취임식 참석 길에 미국을 경유하면서 미국 내 주요 인사들을 만나겠다는 것이다.
중국의 입장은 단호해 보인다. 독립 성향의 차이 총통의 후계자인 데다 오랜 기간 자신을 "실용적인 대만 독립운동가"라고 밝혀온 라이 후보의 방미를 그냥 두고 보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최근 라이 후보는 총통 당선 시 대만 독립을 선언할 계획이 없다고 밝히는 등 중국에 유화적인 메시지를 보내고 있으나, 중국은 라이 후보의 총통 당선을 강력하게 저지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하다.
2016년 차이 총통의 당선 이후 양안(중국과 대만) 당국 간 교류를 사실상 중단해온 중국은 허우유이(국민당) 또는 커원저(민중당) 후보 당선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져야 교류를 재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대만과 미국이 라이 후보의 방미에 합의하고, 그에 중국이 대만해협 무력시위로 대응한다면 미중 관계가 다시 틀어질 가능성도 크다.
바이든 미 행정부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한다는 입장이지만, 무력을 사용한 중국의 일방적인 현상 변경에 반대하며 대만의 자위권 보장을 위해 첨단 무기 공급을 늘리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kji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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