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옷에 녹음기 숨겼죠?” 하이브 팬 몸검사…신체수색죄 되면 징역 가능

노자운 기자 2023. 7. 10.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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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팬사인회서 과도한 신체 검사 논란
영장 없는 몸 수색, 신체수색죄 처벌 가능
벌금형 없이 징역형 엄중 처벌
수색받는 자 ‘동의’ ‘양해’가 관건
아이돌 그룹 '앤팀'. /하이브 레이블즈 재팬 제공

하이브 소속 아이돌그룹의 팬 사인회에서 여성 보안요원이 팬들의 속옷을 검사했다는 폭로가 잇따르고 있다. 몸 안에 몰래 숨긴 녹음기를 찾아낸다는 이유로 신체 검사를 했다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가슴을 만지는 등 성추행에 가까운 신체 접촉이 이뤄졌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하이브 측에서 신체 검사 사실을 일부 인정하며 공식 사과문을 발표한 가운데, 법조계에서는 보안요원들의 행동이 위법 행위에 해당될지 따져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관건은 형법상 ‘신체수색죄’의 성립 여부다. 주거 및 신체수색죄는 3년 이하의 징역형이 가능한 죄다.

◇“가슴 꾹꾹 눌러보며 열심히 만졌다”…하이브 “녹음 내용 유출할까봐”

논란은 지난 7일 시작됐다. 하이브 자회사 위버스컴퍼니가 운영하는 ‘위버스샵’이 7~8일 이틀 간 하이브재팬 소속 아이돌그룹 ‘앤팀’의 팬 사인회를 진행했는데, 이 행사에 참석했던 일부 팬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폭로문을 올린 것이다.

트위터와 틱톡 등에는 “가슴 좀 만진다면서 만지다가 ‘(스마트) 워치죠?’ 하면서 작은 공간으로 날 데리고 가더니 옷을 올리라고 했다”, “윗가슴 꾹꾹 눌러보더니 밑가슴도 꾹꾹 눌러보고 거의 애무 급으로 열심히 만졌다”는 등의 글이 올라왔다.

조선비즈 취재를 종합하면 팬들의 이 같은 폭로에는 다소 과장이 섞여 있었으나 내용 자체는 대부분 사실이었다. 다수의 팬이 녹음 가능한 전자기기를 몸 안에 숨겨 반입한 것 같다는 외주 운영사 소속 여성 보안요원의 자체적 판단이 있었고, 수상해 보이는 팬들의 가슴 등 신체 일부를 손등으로 만졌다고 한다.

팬들의 몸을 직접 만져서 수색하지 않고 금속탐지기 등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보안요원들은 그 경우 속옷 와이어나 장신구 때문에 전자기기를 제대로 적발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손으로 만져 전자기기가 확인된 경우에는 “옷을 올려 스스로 제거하라”며 밀폐된 공간에 가라고 지시했다 한다.

행사를 주최한 위버스샵 측은 9일 공식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렸다. 위버스샵은 “팬사인회는 아티스트와 팬 간 1대1 대화의 자리로, 녹음 내용이 외부에 유출돼 팬과 아티스트가 함께 곤란해지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녹음과 촬영이 가능한 전자장비의 반입을 엄격하게 제한해 왔다”며 “그러나 8일, 전자장비를 몸에 숨겨 반입하는 사례가 다수 발생하여 이를 확인하는 보안 보디체크가 여성 보안요원에 의해 진행됐고 팬 여러분에게 불쾌감을 드렸다”고 해명했다.

/트위터 캡처

◇신체수색죄, 3년 이하 징역 가능…대화 녹음은 불법 아냐

이날 보안요원이 행한 ‘보디체크’는 위법 행위일까. 실제로 SNS에는 “법적 대응을 해야 한다”는 팬들의 글이 다수 올라온 것으로 확인됐다.

영장 없이 몸을 수색하는 것은 신체수색죄에 해당되는 위법 행위다. 형법 제321조는 “사람의 신체, 주거, 관리하는 건조물, 자동차, 선박이나 항공기 또는 점유하는 방실을 수색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이는 1953년 형법이 제정된 이래 한번도 변하지 않은 조항이다.

주거침입이나 퇴거불응죄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된 것과 달리, 신체나 주거 수색죄는 벌금형 없이 징역형으로만 엄격하게 처벌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21년 손님이 물건을 훔쳐간다고 생각해 신체를 수색한 편의점주가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 받은 사례가 있다. 이 편의점주는 “어이, 가글 두고 가”라고 말하며 손님으로 방문한 20대 여성을 불러세운 뒤, 양손을 피해자의 외투 주머니에 넣어 뒤지고 피해자가 메고 있는 가방을 열어 내부를 살펴봤다고 한다.

만약 몸 수색이 불법 행위에 대한 정당방위라면 위법성조각사유(형식상 범죄 또는 불법 행위의 조건을 갖췄지만 실질적으로는 범죄나 위법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유)가 될 수도 있으나, 이번 팬 사인회에서 보안요원이 신체를 수색한 명분은 이와 거리가 멀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상대방이 구성 요건에 해당되는 행위를 했어야 신체 수색에 대한 위법성조각사유가 발생하는데, 전자기기로 당사자 간 대화를 몰래 녹음하는 건 죄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승 연구위원은 “팬 사인회에서 두 사람이 나눈 대화를 녹음하거나 아이돌 멤버의 사진을 촬영하는 행위는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 한 적법하다”고 덧붙였다.

통신비밀보호법 제14조는 “누구든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하여 청취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이와 달리 당사자 간 대화나 통화는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몰래 녹음해도 합법이다. 다만 이를 상대방 동의 없이 공개하면 민법상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 있으나, 단지 팬들이 ‘향후 대화 내용을 공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는 신체를 수색할 정당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팬들이 동의했는지가 중요…“국가 형벌권 남용” 우려도

법조계 관계자들은 보안요원의 행위와 관련해 더 중요하게 봐야 할 부분이 ‘팬들의 동의 여부’라고 말한다.

형법 제24조는 “처분할 수 있는 자의 승낙에 의해 그 법익을 훼손한 행위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즉, 신체 수색을 당한 사람이 이를 승낙했다면 위법이 아니라는 얘기다.

형법상 범죄 여부를 판단하려면 먼저 구성 요건을 갖춰야 하고, 그 다음으로 위법성 조각사유가 없어야 한다. 구성 요건 단계에서는 ‘양해’ 여부를, 위법성 조각 단계에서는 ‘승낙’ 여부를 따진다. 만약 팬들이 신체 수색을 정상적으로 양해하거나 승낙했다면 보안요원의 행위가 적법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

관련된 판례도 있다. 지난해 1월, 대구지법은 9세 여아의 신체를 수색했다는 혐의를 받은 서점 주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서점 주인은 여아가 펜을 훔친 것으로 오인해 다른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데려가 “CCTV로 보고 있었는데, 펜 훔치는 것 봤다”고 말하며 패딩과 조끼 주머니에 손을 넣어 뒤졌다. 이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서점 주인의 수색 행위를 ‘적어도 묵시적으로 승낙했다’는 게 무죄의 근거가 됐다.

그렇다면 앤팀의 팬들은 신체 수색을 승낙했다고 볼 수 있을까. 법조계 관계자들의 의견은 둘로 나뉜다. 한쪽에서는 팬들이 ‘승낙’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승 연구위원은 “팬들이 강압적 분위기에서 묵인하는 상태로 신체 수색에 동의했고 보안요원들에 의해 강제로 밀폐된 공간에 가 옷을 올렸다면, 이는 하자 있는 의사표시이기 때문에 위법성 조각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른 쪽에서는 승낙이 이뤄진 것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부장판사를 지낸 민철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주최측이 사전 안내 단계에서 ‘전자기기 반입을 제한한다’는 문구를 명시했거나 현장에서 ‘지금 수색을 할테니 동의해달라’고 말했고, 팬들이 이런 조건을 받아들여 행사장에 남아있었다면, 수색이 당사자의 승낙 하에 이뤄졌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민 변호사는 행사 주최측이 대화를 몰래 녹음하는 행위를 제재한 데도 법적 근거가 있다고 덧붙였다. 당사자 간 대화를 몰래 녹음하는 것 자체는 불법이 아니지만, 대화 당사자 중 한 명이 “나와의 대화를 녹음하는 걸 원치 않으니, 여기에 동의하지 않으면 대화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김재현 오산대 경찰행정과 교수는 “신체 검사가 사회 통념상 허용되는 범주를 벗어났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다만 형법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국가 형벌권의 과도한 남용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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