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블릿 20대씩 들고 로그인까지…‘1인 1기기’ 제동 서울시의회
서울의 한 초등학교 영어 전담 ㄱ교사는 디지털 기기 활용 수업 때마다 진을 뺀다. 1인 1디지털기기 보급이 되지 않아, 그는 매번 교내 공용 태블릿피시 20여대를 가방에 싸 들고 교실을 옮겨 다닌다. 학생들에게 공용 기기를 나눠주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개인 기기가 아닌 탓에 수업 때마다 교실을 돌아다니며 학생들의 계정 로그인을 돕는다. 여기까지만 10여분, 수업시간 4분의 1을 세팅하는 데 쓴다. 이마저도 공용 태블릿피시 사용을 예약하지 않으면 기기 활용 수업을 할 수 없다. 전교생이 1200여명인데, 공용 기기는 250대에 그치기 때문이다. 수업이 끝나도 ㄱ교사의 ‘기기 관리 업무’는 끝나지 않는다. 이후 디지털 기기를 써야 하는 다른 교사들을 위해 배터리 충전 등 사후관리까지 해야 한다.
디지털기기를 활용한 수업이 의무가 아닌데도 ㄱ교사가 2주마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덴 이유가 있다. 고학년일수록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의 수업 참여도에 차이가 벌어진다는 걸 느껴서다. ㄱ교사는 “학습자료를 특정 수준에 맞춰 준비하면 잘하는 아이는 지루해 하지만, 누군가는 수업을 따라오지 못한다. 반면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면, (학습 프로그램을 통해) 개별 학생의 수준에 맞춘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ㄱ교사처럼 최근 학교 현장에선 적극적인 디지털 기기 활용 수업을 하고 싶어도, ‘1인 1기기 보급’ 환경이 구축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특히 서울의 경우, ‘1인 1기기’가 지급된 중학교 1학년을 포함해도 전체 초·중·고 학생의 태블릿피시 보급률이 32.1%에 그친다. 전국 보급률(약 58%)의 절반을 약간 넘는 수준이다.
서울시교육청이 추진해온 ‘디벗’(디지털과 ‘벗’의 합성어) 사업은 디지털교과서 시대에 맞춰 지난해부터 관내 모든 초·중·고교생과 교사에게 ‘1인 1태블릿피시(디지털 기기)’를 무료 보급을 목표로 진행해온 사업이다. 비슷한 외국 사례로 미국의 ‘브링 유어 오운 디바이스’(BYOD·Bring Your Own Device) 사업의 경우, 학생 개인이 보유한 스마트기기를 가져오도록 해 학생 간 경제적 격차와 심리적 불평등을 유발한다는 등의 문제점이 제기된 바 있다.
문제는 국민의힘 의원이 과반을 차지한 서울시의회가 ‘조희연 교육감의 선심성 사업’이란 등의 이유를 들어 예산 배정을 막고 있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12월 서울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국민의힘 소속 황철규 시의원은 이번 사업을 두고 “조희연 교육감의 선심성 포퓰리즘이 담긴 퍼주기 역점사업”이라고 주장했다. 학생 상당수가 이미 스마트폰을 포함해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고 있는데도, 일부 시의회 의원들은 ‘1인 1기기 보급’으로 학생들이 유해사이트 노출·디지털 중독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내놓기도 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의회는 지난 5일 2차 예산 추가경정 때 디벗 예산 1059억원 가운데 785억원을 삭감해 564억원만 반영했다. 지난해 말 2023년 본예산 심사 때도 디벗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가 지난 4월, 1차 추경 때 290억원이 반영됐다.
시의회 우려와 달리 ‘디벗’ 사업에 대한 교육 현장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지난해 10월 서울시교육청이 중학교 1학년 교사를 상대로 디벗 활용도를 조사한 결과에서 전체 응답자 720명 가운데 78.9%가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게다가 서울시의회가 올해 3월 공개한 ‘스마트기기 휴대학습 디벗 사업 설문조사 결과보고서’를 봐도, 만족한다는 응답이 56.3%(매우 만족 21.3% 포함)로 나타났다. ‘보통이다’는 응답이 28.7%, 불만족스럽다는 반응은 14.9%(매우 불만족 5.8% 포함)에 그쳤다.
내후년부터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를 본격 도입하려는 교육부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다음 본예산 때라도 충분한 예산이 확보돼야 정부 정책에 발맞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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