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적자’ 티빙·웨이브 합병설에… 콘텐츠업계 “독점 플랫폼 탄생하면 협상력 약화” 우려
”오리지널 OTT 콘텐츠, 소수 블록버스터에 더 집중될 것”
”거래처 줄면 콘텐츠 제작자 협상력 어떡하나”
토종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과 웨이브가 합병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콘텐츠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적자에 허덕이는 두 기업이 돌파구를 찾는다고 하지만, 이들 플랫폼에 콘텐츠를 제작·공급하는 입장에선 ‘거래처가 1군데로 줄면 타격을 입을 것이다’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10일 콘텐츠업계에 따르면 티빙·웨이브 합병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콘텐츠 제작·공급자의 협상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티빙과 웨이브의 모회사인 CJ ENM과 SK스퀘어가 합병을 협의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콘텐츠업계는 국내 주요 콘텐츠 유통 플랫폼이 2개에서 1개로 합쳐지면 킬러 콘텐츠 유치를 위한 OTT간 경쟁이 없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몸집이 커진 독점 플랫폼이 탄생하면서 두 회사가 각자 제작하던 콘텐츠 개수가 줄어들고, 이들이 협상 테이블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면 콘텐츠 값이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콘텐츠 생산자인 드라마 제작사가 수익을 벌어들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게임’처럼 특정 OTT 플랫폼에서만 독점적으로 공개하는 ‘OTT 오리지널’을 제작하는 것이다. 이 경우 OTT 플랫폼이 모든 제작비를 제작사에 제공한다. 콘텐츠의 지식재산권(IP)은 모두 OTT가 가져가게 되며, 제작사는 제작비의 10~20% 수익만을 보전받는다. 두 번째는 제작사가 국내 방송사, 간접광고(PPL) 등을 통해 제작비를 직접 마련하고 OTT에 동시방영권을 판매하는 경우다. 이 경우 IP는 제작사가 갖게 된다.
콘텐츠업계는 티빙과 웨이브가 하나의 공룡 플랫폼으로 재탄생하게 되면, 수익을 얻는 두 가지 방법 모두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대박 오리지널’을 만들기 위해 전체 오리지널 콘텐츠에 대한 투자 건수가 줄어들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두 OTT가 합병할 경우 ‘대박’이 기대되는 블록버스터 드라마나 영화에 모든 자원을 집중하기 위해 1년에 제작하는 콘텐츠 개수를 줄일 것으로 보인다. 저예산 콘텐츠는 설 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라며 “양사의 자본이 합쳐져 더 많은 투자금이 모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수혜를 받게 되는 회사는 결국 소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업계에선 몸집이 커진 OTT 회사가 콘텐츠업계와의 유통 협상 과정에서 일방적인 ‘갑’의 위치에 설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영화 배급사 대표는 “플랫폼이 다양하면 콘텐츠를 유통하기 위해 선의의 경쟁이 일어나지만, 플랫폼 수가 적어지면 ‘우리가 안 사’하면 끝이니 콘텐츠 공급자 입장에선 협상력이 약해진다”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티빙과 웨이브 모두 적자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두 회사가 힘을 합쳐 지금보다 규모 있는 투자를 집행하고 글로벌 진출에 집중하는 것이 OTT는 물론 콘텐츠업계 모두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티빙과 웨이브의 지난해 적자는 각각 1191억원, 1216억원에 이른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양사가 많은 적자를 감수하면서 투자를 진행해 왔지만 이러한 구조로 계속 사업을 이어가기는 더 이상 어렵다”라며 “시장 상황이 좋다면 다양한 판매처가 존재하는 것이 콘텐츠 업체에게도 유리하겠으나, 지금처럼 상황이 어려울 땐 어떻게든 남은 플랫폼을 키워서 생존부터 하는 것이 우선이다”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또 “대다수 국내 콘텐츠 제작사가 국내 플랫폼뿐 아니라 넷플릭스 등 해외 OTT에도 콘텐츠를 유통하는데, 웨이브와 티빙이 합병한다고 해서 무조건 경쟁이 없다고 볼 수 없다. 해외 OTT와의 경쟁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2023 콘텐츠가 전부다’의 저자인 노가영 작가는 “이번 토종 OTT 합병 움직임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구독경제의 함정’이다. 구독모델은 가입자가 규모의 경제에 도달하지 않으면 공급자가 버티기 힘들다”라며 “가입자가 글로벌 규모로 커지지 않으면 원가(콘텐츠 투자비) 부담이 어렵고 비용감축이 시작되면 낮아지는 상품력에 소비자는 탈퇴한다”라고 했다. 이어 “소비행태가 파편화되면서 구독 모델이 과잉이라고 생각하는 소비자가 생기고 있다. 방대한 콘텐츠를 모아 싸게 제공하는 구독모델은 새로운 과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노 작가는 “향후 웹3.0 시장에선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콘텐츠를 단건 결제하는 시장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중단기적으로 스튜디오가 각자의 IP를 잘 지켜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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