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무도회에 초청받은 아이들의 한여름 밤

한겨레 2023. 7. 1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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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박성훈의 브루더호프 이야기]

요정무도회에 초대받은 공동체 아이들. 브루더호프 공동체 제공

한 여름날 오후 공동체 식구들이 모두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다섯살 짜리 꼬마 브랜던이 엄마에게 자랑스럽게 네잎 클로버가 있는 붙어 있는 종이 한 장을 보여줍니다. 브랜던의 네잎 클로버 종이를 보니 저희가 공동체에 온 첫해 어느 여름날 다섯살된 하빈이가 흥분해서 집으로 들어오던 날이 생각납니다.

“엄마,아빠, 나 당장 네잎 클로버를 찾아야 해요”

“네잎 클로버는 왜?”

“나 요정들의 무도회에 초대 받았어요.”하며 조그마한 종이 초대장을 엄마에게 보여 줍니다.

무슨 소리인가 싶어 하빈이가 건넨 초대장을 읽어 보았습니다.

요정무도회장으로 향하는 표시. 브루더호프 공동체 제공

“요정들의 무도회 초대장

장소: 숲 속 호숫가

일시: 토요일 오후 6시

입장권: 네잎 클로버 “

하빈이는 그날 이후로 열심히 잔디밭을 뒤지며 네잎 클로버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 살 때 어쩌다 한번 네잎 클로버를 찾으면 행운이 온다며 좋아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요정들의 무도회에 갈 수 있는 티켓이었네요.

드디어 하빈이가 손꼽아 기다리던 요정들의 무도회 날이 왔습니다. 이제 갓 돌을 지난 유빈이를 안고 하빈이의 손을 잡고 숲 속 입구로 갔습니다. 여기저기서 하빈이 친구들이 이쁜 요정 옷들을 차려입고 흥분되어 오네요. 숲속 길에는 꽃잎이 뿌려져 있어 아이들을 요정들의 무도회장으로 인도합니다. 예쁜 꽃잎을 밟으며 호수 가까이 가자 호수 건너편에 멋진 요정들이 음악에 맞추어 우아하게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요정들의 멋진 댄스가 끝나자 저 멀리서 요정들이 아이들에게 따라오라며 손짓합니다. 아이들이 신이 나서 요정들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니 숲 속 한쪽에 요정들이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케이크와 과자, 사탕들이 작은 테이블에 차려져 있네요.

요정옷을 입고 춤추는 아이들. 브루더호프 공동체 제공

알고 보니 해마다 여름이 되면 이곳 7-8학년 아이들이 어린 아이들에게 동심을 심어 주기 위해 요정으로 분장해 마련한 무도회였네요. 더운 여름에 케이크와 과자를 구어 다과를 준비하고 멋진 춤을 추어 어린 동생들에게 기쁨을 선사한 아이들이 참 고맙고 대견했습니다.

브랜던의 네잎 클로버 입장권을 보며 그 때 일을 기억하며 잔디밭을 찾아 보니 네잎 클로버가 바로 눈에 보여 꺾었습니다. 나도 이제 요정무도회에 갈 수 있겠다 싶어 제 아내에게 자랑스럽게 보여 주며 제 아내를 위해서도 네잎 클로버를 찾아보니 근처에 네잎 클로버가 한 스무개는 넘게 자라고 있었네요. 어떤 날은 네잎 클로버 찾기가 그리 싶지 않더니만 아마도 씨가 뿌려져 무리지어 피었는지 어쨌든 행운이 넘치는 날이네요.

한여름날이 되면 7-8학년 아이들만 바쁜 것이 아닙니다. 저희가 제일 좋아하는 이안 할아버지와 재닛 할머니도 바빠집니다. 매주 수요일 오후는 이안 할아버지에게 제일 신나는 시간입니다. 할아버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날 만큼은 비우려 노력하시는데 바로 어린이집 3세 반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이안 할아버지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는 매주 수요일마다 아이들을 할아버지가 직접 끄는 말 마차에 태워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위해 만든 동산에 데리고 가십니다. 할아버지는 공동체 한쪽에 ‘Three’s Island (세살 아이들을 위한 섬)’이라 불리는 작은 동산을 만들어 그곳에 조그마한 연못, 흔들 그네, 모래밭과 모닥불을 피울 장소를 설치하고 아이들이 맘껏 따먹도록 온갖 과일나무와 꽃들을 심으시곤 시간만 나시면 열심히 가꾸십니다. 그 곳에서 할아버지는 아이들과 함께 요리도 하시고 게임도 하시고 책도 읽어 주시며 아이들과 함께 하는 행복한 시간을 즐기십니다.

이안할아버지의 날. 브루더호프 공동체 제공

이안 할아버지와 재닛 할머니는 몇 년 전 부터 3세 반 아이들을 위해 ‘한여름 밤의 반딧불 산책’을 해오셨습니다. 저는 시골에서 반딧불을 보고 자랐지만 서울에서 자란 아내는 반딧불을 본적이 없어 공동체에 처음 왔을 때 여름날 반딧불이 눈앞에서 반짝반짝하자 너무 신기해하며 좋아했습니다. 공동체에서 살면서 집 앞에서 반딧불이 여기 저기서 반짝거리는 것은 봐왔지만 한밤중에 반딧불을 보기 위해 숲을 산책한 적은 없어 그동안 말로만 들어온 세살된 아이들을 위한 ‘한여름 밤의 반딧불 산책’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밤 아홉시 반이 되자 젊은 엄마, 아빠들이 집에서 자고 있던 어린아이들을 깨워 공동체 어린이집 뒤뜰로 데리고 왔습니다. 이안 할아버지께서 앞장을 서시고 그 뒤로 아이들이 부모님들과 숲길로 걸어갑니다. 어린이집 앞에서 서너개 반짝거리던 반딧불이 빛이 없는 숲속으로 들어가자 갑자기 여기저기서 수천개의 반딧불이 불꽃놀이 하듯 팡팡 터지며 반짝거리기 시작해 그 찬란한 빛에 압도되어 입이 딱 벌어지면서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태어나서 이렇게 멋진 불꽃 쇼는 처음 봅니다. 조물주의 섬세한 터치에 정말 감탄만 나옵니다.

나무가 우거진 숲 속 깊이 들어가자 나무 곳곳에 야광 팔찌 링이 걸려 길을 인도하고 헬륨 풍선도 하늘 높이 띄어 풍선 줄에 야광 팔찌를 달아 놓았습니다. 자넷할머니는 아이들을 위해 통나무 의자가 둘러싸인 조그마한 탁자에 작은 등과 함께 아이들을 위한 선물과 함께 다과를 차려놓고 아이들을 맞았습니다. 처음엔 졸려 하던 아이들도 이제는 신이 나서 눈이 말똥말똥 생기가 돌면서 재잘재잘 떠들며 즐거워하는 것이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이안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공동체 아이들. 브루더호프 공동체 제공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며칠 전부터 이 날을 위해 젊은 청년들과 함께 숲에 와서 풀을 베고 자른 통나무들을 모아 나르고 아이들을 위해 아늑한 장소를 만드셨습니다. 저는 요 며칠 날씨가 너무나 덥고 후덥지근해 집 앞을 나서기도 숨 막히고 힘들었는데 이 찌는 더위에 아이들의 동심을 위해 땀 흘리며 수고하시고 아이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에 흐믓해 하시며 기뻐하시는 이안 할아버지와 재닛 할머니께 정말 박수갈채를 보냅니다. 아이들이 부르는 반딧불 노래를 들으며 할아버지, 할머니의 덕분에 저도 한여름 밤의 꿈을 아주 행복하게 꾸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한 여름밤 꼬마 하이와타

문앞에 나와 앉았네

소나무의 속삭임,

찰랑이는 시내소리 들었네

한 여름밤 꼬마 하이와타

반디불을 한 여름밤 꼬마 하이와타

문앞에 나와 앉았네

소나무의 속삭임,

찰랑이는 시내소리 들었네

한 여름밤 꼬마 하이와타

반디불을 보았네

나무 사이로 반짝이며

춤을 추는 하얀 등을 보았네

나무 사이로 반짝이며

춤을 추는 하얀 등을 보았네

글 박성훈 (미국 브루더호프 공동체 메이플리치 거주 공동체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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