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조 칼럼]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성과와 과제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Soft and Weak like water)’를 주제로 열린 이번 전시회에는 50여만 명의 관람객 발길이 이어져 현대 미술이 이제는 하나의 대중문화로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었다.
한국의 이숙경 예술감독이 기획하여 전 세계 31개국 43개 도시, 79명 작가의 340여 작품이 전시되었다. 주요 작품들이 현대미술의 난해함을 덜어주어 관람객들이 편안하게 다가가는 작품들이 절제된 미학 속에서 조화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해외 유수 문화예술 기관이 참여하는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특별관)도 도심 곳곳에서 주목을 받아 광주비엔날레가 본전시는 물론 각 국가들의 수준급 현대미술 파노라마를 연출하기도 하였다.
때문에 캐나다, 중국, 프랑스, 이스라엘, 이탈리아, 네덜란드, 폴란드, 스위스 등 광주비엔날레를 참관을 위해 다양한 국가의 인사들이 발길을 내딛어 국제문화교류의 무대로서 역할을 했다.
국내적으로도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직접 광주비엔날레 전시장을 방문했고, 문재인 전 대통령 내외도 다녀갔다.
외신의 호평과 해외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방문도 이번 행사의 성과로 집약할 수 있다.
미국 휘트니미술관의 아담 D 웨인버그 관장, 테이트 모던의 프란시스 모리스 관장, 카스텔로 디 리볼리 현대미술관의 캐롤린 크리스토프-바카기예프 관장, 일본 모리미술관의 마미 카타오카 관장 등이 방문해 광주비엔날레의 국제적 위상을 실감하게 했다.
◇ 관람객 이동 동선 180도 바꿔 ‘신선’
이번 전시회가 이전의 전시회와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전시회 관람 동선이었다. 관람객 이동 동선을 180도 완전히 바꿔 놓은 것이다. 입구의 위치, 전시회 시작 지점을 과거 출구로 옮겨놓았다.
출구나 다름없던 1층 좌측 전시장을 입구로 바꿔 관람객을 입장시켜 과거 전시회와는 사실상 역순으로 이동 동선을 짠 것으로 작고 쉽지만 큰 변화로 다가왔다.
이것은 당연히 전시회 구성에도 많은 변화와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광주비엔날레 전시가 확 달라졌다는 인상을 받기에 충분했다.
이것은 입·출구를 남향 한 방향, 즉 시계방향으로 맞춰 놓은 순환을 의미했다. 관람객들은 전시회를 보고 나면 전시장 전체에 하트모양의 발자국을 남기고 다시 광장으로 돌아 나오게 되었다.
이는 사람의 심리와 물 흐름의 순리를 깊이 통찰한 전시공학의 일면이 엿보이게 했다.
그래서 5개의 전시공간을 지나가는 내내 발길의 흐름이 주제처럼‘부드럽다, 참 편하다’는 느낌을 갖게 했다.
비엔날레 정문에 들어서면 앞마당 광장을 통하여 곧바로 1층 왼쪽 전시장으로 들어 간 것이다.
멈추거나 오르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빨려들었다. 주제의 정신이 출발 동선을 통해 전시회에 스며드는 효과를 가져왔다.
◇ 5·18광주민주화운동 정신 전시회에 반영
미술이 사회적, 정치적 참여를 함으로써 민중을 일깨우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의미를 알게 했다. 대중에게 알리고 계몽하는 성격이 강한 시각적 예술의 특성을 반영한 결과를 확인시켜 주었다.
특히 제2전시장의 작품들은 5·18광주민주화운동 43주년을 앞두고 예술가들의 작업을 통해 정치적 갈등과 국가폭력에 저항하고 고통받고 고민해 온 사람들을 대변해 주었다.
한국적인 화풍으로 널리 알려진 민중미술가 고 오윤의 목판화 연작이 선보였다.
광주비엔날레가 지향하고 담아야할 ‘광주정신’에 많은 공간과 목소리를 참여토록 하였다는 인상을 받게 했다.
광주의 작가와 시민과 그리고 ‘5·18’로 인해 분출된 시대상황을 다시 한 번 더 예술의 시각으로 다독이고 안아주고 가는 것 같아 ‘은은한 강함’을 느끼게도 했다.
◇ 관람객 직접 참여형 작품 및 전시장 인기
관람객이 직접 작품을 작업하는 과정에 들어가 행위를 함으로써 작품이 진행되는 완벽한 ‘관람객 참여형 작품’도 눈길을 끌었다.
한국작가 이건용의‘바디스케이프76-3’는 관람객이 색연필을 손에 쥐고 손을 몸 바깥방향으로 올렸다가 곡선을 그리며 떨어 뜨린다.
다시 반대쪽 손을 이용하여 시작점에서 같은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자신만의 바디스케이프 드로잉을 남기는 방식이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그림을 작가 혼자서 하는 개인 창작물이 아니라 관람객과 함께 만들어 간다는 개념을 인식시켰다.
미술이 대중과 호흡할 때 생명을 갖는 것이란 의미라 생각되었다. 제도와 관습, 틀에 갖힌 고정관념을 벗어나고자 하는 예술가의 진보적 성향을 엿보게 하였다.
관람객 참여형 이벤트가 진행 중인 제3전시장 끝은 글라스월로 통유리를 통해 화창한 봄날의 바깥 풍경을 보너스로 볼 수 있었다.
중외공원 솔숲의 바람과 향기를 느끼는 듯 쉼을 안겨주었다.
이곳에선 현대미술 작품 재료의 일상화, 또는 한계의 초월을 경험하게 했다. ‘이것도 미술작품일까?’의문 갖게 하는 전시도 엿보게 했다.
이런 작품은 전통적 미술 개념을 깨뜨린 것으로 보였다. 때문에 현대미술은 알면 알수록 쉽고 단순하다는 생각도 들게 했다.
◇ 인간의 ‘오감’을 자극하는 일상 속 작품들
현대미술은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과 미각, 후각, 촉각에 이르기 까지 흔 ‘오감’을 자극하는 것이 대세이다.
이번 전시장마다 음향효과를 곁들인 작품들이 나놔 미술이 눈으로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귀로 듣는 즐거움도 함께 선사해 주었다.
이런 작품들은 가장 ‘현대미술’에 가까운 작품들로 회화, 사진, 설치, 영상, 조각, 문자, 비디오 등의 작품을 총 망라하였다.
그리고 관람객들은 동선 구애 없이 자유롭게 작품들 사이를 오갈 수 있고, 쓱 둘러보고 영상 작품 앞 나무 의자에 앉아 쉬어가도록 배려했다.
이미지 조형이 아닌 문자를 사용하여 직설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도 나왔다. 벽면에 글을 써놓고 읽도록 한 것은 전통적 미술의 개념을 탈피한 흥미를 배가 시켰다.
또 객관적 입장인 제3자의 시각으로 우리들과 이주민의 관계를 들여다본 작업은 객관화를 간접 경험하게 했다.
일본인의 눈으로 중앙아시아(구 소련)에서 한국으로 이주해온 고려인들을 바라본 것이어서 그 관점이 흥미를 끌었다.
◇ 부담 없는 가족 문화 나들이 자리매김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가족과 함께 한나절을 즐기기에는 최적의 공간으로 통했다.
전시장 전체를 한 바퀴 도는데 두 세 시간 정도 보통 걸리지만 관람하는 동안 내내 지루하지 않고 마치 잔잔한 호수의 표면을 미끄러져 지나온 듯한 감흥을 자아냈기 때문이다.
아무런 부담 없이, 난해함 없이 들여다보기에 좋은 전시회로 평가됐다. 전시장 곳곳에 관람객들이 직접 작품 속으로 들어가고 직·간접의 체험 기회를 주어 현대미술이 어렵다는 선입견을 떨쳐 내는데 도움을 주었다.
일반인들이 가장 친숙하게 다가가는 그림인 얼굴 이미지가 대부분이어서 낯설거나 하지 않는 편안한 관람이 되었다.
또한 전시실 중간 중간에 나무의자를 놓아 관람객들이 쉬어갈 수 있게 배려한 것도 ‘쉼’과 ‘여유’라는 전시공학의 컨셉을 보여주었다.
공간 구획에 있어서도 격한 구조보다는 친환경 소재를 다뤄서 격자형 부스를 만들어 작품의 일부로써 인식되기도 하였다.
◇ 여전히 채우고 보완해야할 과제
반면 지역성을 강조하는 지역 미술계 일부에서 ‘광주다운’강한 임팩트는 부족하다는 지적의 목소리도 여전했다.
‘5월’ 봄에 열린 ‘광주’비엔날레는 그 창설 일부 취지에 부합하는 ‘광주정신’이라고 하는 큰 목소리와 메시지를 어디에선가는 부각시켜야 했다.
물처럼 부드럽게만 강조하다보면 애써 5·18을 외면한 느낌도 지우기 어렵다는 우려도 나왔다.
또 국내외 현대미술 평론가나 언론들의 이렇다할만한 평가가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지 못했다. 이는 국제 홍보와 국제미술계와의 소통을 더욱 활발하게 해야한다는 과제를 떠올리게 한다.
이와 함께 관람은 편하고 쉬웠다는 느낌이지만 끝내 머리속에 담아 나오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에 대한 반문도 해보게 된다.
여기에 올해 첫 수상자를 배출한 '비엔날레 박서보 예술상'이 비엔날레의 정체성을 위협한다는 국내 미술계의 논란에 휩싸인 점은 옥의 티로 지적됐다.
광주시가 제작한 광주비엔날레 홍보 영상은 진지함과는 거리가 먼 장난스러움으로 논란이 일기도 했다.
'비엔날레’와 발음이 비슷한 ‘비엔나’ 소시지를 소재로 활용해 비엔날레의 품격을 떨어뜨렸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다음 행사를 준비하며 재단이 새겨들어야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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