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는 가라… ‘미래무형유산’ 육성 첫발 뗀 제주 갈옷
제주는 마당이 있는 집에는 감나무 한그루 정도는 심었다. 제주 사람들은 매해 여름이면 그 감나무의 토종 감을 이용해 직접 감물을 들여 입었다.
#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들이 입었던 노동복… 미래무형유산으로 보존 계승돼야
갈옷은 떫고 잘고 씨 많은 제주 풋감으로 제주의 자연기상과 사람의 땀, 지혜와 정성을 함께 모아 만들어낸 작품이다. ‘대맹이(머리통)’가 벌러지는(깨지는) 더운 한 여름에 미리 만들어 놓은 옷에다 방망이로 바수고 짓이긴 감을 넣고 어깻죽지가 빠지게 치댄 다음 햇볕에 앞뒤 골고루 바래서 얻어낸 걸작이다. 경제적이고 위생적이고 자연친화적인 우수한 자원이며 제주의 자랑거리 중 하나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와 제주학연구센터는 10일 오후 제주라마다호텔에서 연 문화재청 미래무형유산 발굴육성사업 제주 갈옷 학술대회에서 “제주 갈옷이 보존 전승되어야 할 미래무형유산”이라고 밝혔다.
# 조선시대부터 입었던 300년 넘은 실용복 … “3년 뒤 도 무형문화재 지정 힘쓸 것”
이날 임홍철 세계유산본부 세계유산문화재부장은 “제주 갈옷은 지난해 문화재청의 미래무형유산 발굴 육성사업으로 선정됐다. 그 첫해로 제주 갈옷에 대한 조사 연구를 통한 가치 발굴을 목표로 다양한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면서 “무형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높아 3년 뒤에는 도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해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현진숙 제주도무형문화재위원장은 격려사를 통해 “우리네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들은 ‘갈옷을 언제 벗어 볼 날이 올꼬’라고 말했었다”면서 “그 갈옷이 이젠 미래무형유산으로 보존 전승되어야 할 중요한 옷이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먼저 고부자 전 단국대 교수는 제주 갈옷의 전통과 계승 발전 방향을 주제로 한 기조 강연에서 “갈옷은 더러움이 잘 타지 않고 흙이 잘 안 붙는다. 그래서 여름에 밭일을 할때 즐겨 입었다”면서 “갈옷은 물이 빠지거나 색이 바래면 또 감물을 들여 새옷처럼 입을 수 있을 정도로 재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조 영조 39년(1763) 안덕면 창천리 사람 강위빙이 한양으로 압송되어 심문을 받을 때 입고 갔던 갈옷 덕으로 특별히 사면을 받았고 증보탐라지(1765)에도 감물을 들인 옷을 농가에서 입었다고 한 것을 보면 그 실용성이 어땠는지 알 수 있다.
2000년대부터는 감물공예기법이 개발되면서 옷과 각종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제주를 상징하는 대표 상품들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23년 현재는 혼합염료의 개발과 옷 외에 모자, 신, 가방, 침구류 소품 및 장식거리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염직물공예품까지 개발되고 있고 다양한 섬유에도 염색이 가능해졌다. 그런데 문제는 제대로 된 갈옷의 장점 살리기와 고유의 색상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정통기법으로 완성된 한복 갈옷, 정통감물 제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시점에서 왜 제주 갈옷이 보존 전승되어야 할 미래무형유산으로 거론되는 걸까. 이는 그 귀한 가치와 함께 본연의 원형을 되살리면서 더 바르게, 더 다양하게 계승발전시켜 가야 할 책무와 과제가 중요시되기 때문이다.
# 고달픈 삶의 품을 판 대가로 하늘이 제주 사람에게 내린 최적의 선물… 제주도에 관련부서 조직돼야
더운 여름 밭에서 농사 지을때 입던 몸뻬(트레이닝복 같은 하의), 갈중이(남자 아래옷) 등 노동복이자 일상복이었던 정통 갈옷은 1970년대를 이후로 거의 사라지고 있다. 2000년대에는 국가 차원에서 전통기능지원자 선정, 제주10대문화상징 선정 등 갈옷 관련 지원사업이 이루어졌다. 또한 웰빙이 대세가 되면서 천연감물염색에 대한 가치를 재인식하게 됐다.
그는 “갈옷은 제주 사람의 한이 서린 옷이자, 자존심이며 긍지인 동시에 제주의 물, 태양, 거기에 한더위 뙤약볕 아래서 고달픈 삶의 품을 판 대가로 하늘이 제주 사람에게 내린 최적의 선물”이라며 “갈옷은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현시대의 요구에 가장 알맞는 옷이기 때문에 무공해 노동복 갈옷의 바른 행적과 바른 쓰임은 물론 정통으로 바로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도민들을 위한 무료 강좌를 개설하고 상설체험관을 운영하고 지역사회단체와 연계한 체험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전문가 양성을 위한 전승교육을 실시하고 도 차원의 관리부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 가장 친환경적인 소비가치를 지닌 옷이자 탄소중립을 실천하는 옷
홍희숙 제주대 교수는 제주갈옷의 역사와 변천 양상 주제 발표에서 “제주에서 행해진 감물들이기 문화와 감물들인 옷의 역사는 객관적으로 조선시대 후기 이전으로 볼 수 있으며 약 30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다”면서 “현재 우리가 부르는 갈옷이란 명칭 또한 적어도 일제강점기인 1931년 이전부터 92년 이상 사용되어 온 명칭”이라고 말했다. 그는 “제주 갈옷과 감물들이기는 화산섬에 기인한 농토의 척박성과 사면이 바다인 생업환경 및 목축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제주 사람들의 지혜와 경험이 축적된 의생활 문화로서 조선시대 이전부터 있어왔던 것이다”며 “최근에는 세계적인 흐름인 지속가능성을 위한 친환경적 소비 가치의 중요성으로 제주 갈옷과 감물들이기의 가치가 더욱 주목 받으며 그 쓰임새 또한 더욱 확장되고 있다”고 전했다.
김순자 제주학연구센터장은 “제주 갈옷 문화는 제주 여성들이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온 제주 전통 문화이자 지속가능한 미래 유산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면서 “갈옷의 가치와 효용성을 다른 분야까지 확장해 제주의 감물 염색이 제주를 대표할 수 있는 미래 자원으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제주사회가 지혜와 힘을 모야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허북구 (재)나주시천연염색문화재단 국장은 “제주 갈옷은 입는 것만으로도 탄소중립을 실천하게 된다”면서 “합성 섬유로 된 옷, 합성염료로 염색된 옷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는 많은 탄소를 배출하나 제주도 전통 감물염색 옷은 염색에 이르기까지 탄소배출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8월 4일부터 농업기술원 서귀포농업기술센터에서 천연염색 페스티벌도 열려
한편 제주특별자치도 농업기술원 서귀포농업기술센터는 오는 8월 4일부터 6일까지 서귀포농업기술센터 야외 잔디광장에서 ‘2023 천연염색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제주 전통 감물염색의 가치를 계승하고, 우수성과 생활 속의 다양한 활용법을 알리기 위해 2000년부터 이어져 온 이번 행사에서는 천연염색을 주제로 다양한 프로그램과 체험·교육이 이뤄진다. 올해는 감물염색의 중요성 및 보존가치, 산업화 사례에 대한 학술행사가 처음으로 진행된다.
또한 전통방식의 감물염색 시연회와 천연염색 제품 전시, 갈옷 패션쇼, 천연염색 문양 만들기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이외에도 도내 농촌융복합사업장 홍보·판매코너, 어울림 작은 음악회 등의 부대행사와 향토음식점도 운영된다. 이번 행사의 가장 큰 묘미인 ‘천연염색 물들이기 교육’은 도시민과 소비자를 대상으로 행사기간 동안 매일 4회에 걸쳐 이론과 실습을 병행한다.
천에 감물을 들이고 햇볕 아래에서 서서히 말려 갈천 고유의 색이 나타나는 전 과정을 체험할 수 있다.
교육 사전신청은 7월 11일부터 선착순으로 1일 320명, 총 960명을 모집하며 행사 당일 현장에서 1일 80명에 한해 접수를 받는다.
참여 희망자는 서귀포농업기술센터 농촌자원팀으로 전화(760-7821~5) 또는 방문(남원읍 중산간동로 7413) 신청하면 된다. 교육 및 체험 내용에 따라 신청자 자부담액이 발생할 수 있다.
이정배 농촌자원팀장은 “최근 뉴트로 열풍 속에서 제주의 옛 문화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에게는 제주선인들의 지혜가 담긴 문화체험을, 중장년층에게는 옛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제주 향토자원을 활용한 상품개발을 위해 다양한 교육과 지원방안을 지속적으로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글 사진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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