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죽은 후 이름 바꾸고 재혼...세기의 천재와 사랑했다, 그것도 두번이나

이용익 기자(yongik@mk.co.kr) 2023. 7. 10.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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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라흐헤스트’ 창작
세 여성 작가·작곡가 인터뷰
이상·김환기 아내로 알려진
김향안 여사 일대기 그려내
“결혼 비혼 동시 장려라는
관객평에 함께 깔깔댔죠”
뮤지컬 라흐헤스트를 창작한 문혜성, 김한솔, 정혜지(왼쪽부터)
시인 이상과 화가 김환기. 한국 문학사와 미술사를 대표하는 두 거장의 공통점은 한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이상과 뜨겁게 사랑하다 사별한 변동림은 이름을 김향안으로 바꾸고 김환기와 재혼해 그 자신 역시 수필가·화가·미술 평론가로 족적을 남겼다. 누군가의 뮤즈로 남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만든 것이다.

이 흥미로운 김향안의 이야기를 뮤지컬 ‘라흐헤스트’로 만든 김한솔 작가와 문혜성·정혜지 작곡가는 최근 대학로 CJ아지트 공연장에서 기자와 만나 “당시로서는 결코 쉽지 않았을텐데도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모습이 너무 멋져 뮤지컬로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했었다”고 돌아봤다. 김 작가가 김향안 이야기를 꺼내자 마침 며칠전 그 얘기를 나눈 적이 있던 두 작곡가는 운명적으로 손을 잡았다.

뮤지컬 라흐헤스트 공연 장면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라는 김향안의 글에서 ‘예술은 남는다’는 프랑스어를 따와 제목을 붙인 라흐헤스트는 30대1의 경쟁률을 뚫고 CJ문화재단 2020 스테이지업 창작뮤지컬에 선정되었고, 무려 10개 제작사의 러브콜을 받으며 작년에 이어 올해 재연이 열렸다. 3명의 여성 창작자들이 또 다른 여성의 일대기를 소재로 삼아 만든 뮤지컬이 탄생해 자리를 잡은 셈이다. 하지만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다듬어 쓰고, 노래를 붙여 뮤지컬로 만드는 과정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김 작가는 “원래 실존 인물이 가장 드라마틱하다 생각하고 여성 서사에도 관심이 많아 그런 뮤지컬을 써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어떻게 두 천재의 아내가 되었나 신기했는데 그만큼 사실과 다른 추문도 많았어서 나까지 누를 끼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사실 관계에 집중했더니 초고는 다큐멘터리처럼 됐었다”며 웃었다. 이후 그는 한 인물인 변동림과 김향안을 두 인물로 나누고, 노인이 된 김향안의 시간이 거슬러 올라가는 동안 이상을 만났던 변동림의 시간은 순서대로 흘러가는 구조로 만들어 호평을 받을 수 있었다.

뮤지컬 라흐헤스트 포스터
음악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작품으로 입봉한 문혜성·정혜지 작곡가는 “한 사람이 작곡을 해도 때에 따라 느낌이 달라질 수 있는데 두 사람이 함께 곡을 쓰려니 쉽지는 않았다”며 “음악의 톤을 맞추기 위해 색, 시각적인 얘기를 많이 했었다”고 밝혔다. 시각적으로 곡을 쓰는 것이 뭔지 묻자 문 작곡가는 “처음 사랑에 빠지는 부분은 봄 같은 느낌으로 노란색, 그것도 파스텔 톤이 나는 느낌으로 하자고 서로 얘기를 나누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 작곡가는 “한 사람이 곡 전체를 다 쓴 것 같다는 말이 큰 칭찬으로 느껴졌다. 내가 쓰지 않은 곡을 누가 좋다고 해도 굳이 알려주지 않고 고맙다고 답한다”고 웃으며 덧붙였다.

사랑을 예술로 승화시킨 인물에 빠져 뮤지컬까지 만들어서일까. 사랑은 예술 그 자체만큼이나 중요한 요소였다. 정 작곡가가 “사람은 가도 예술은 남는다는 뮤지컬을 함께 썼지만 사실 사랑이 있어야 사람도, 예술도 있는 것 같다. 같이 죽자는 이상의 말이 고백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가방 하나 들고 나오는 그 용기가 너무 부럽다고 늘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자 김 작가가 이어받았다. “공연 후기 중에 라흐헤스트는 결혼과 비혼을 동시에 장려하는 뮤지컬이라는 후기가 있었는데 참 말이 재밌고 예뻐 함께 웃었다. 친구들도 사랑에 빠진다면 내가 쓴 뮤지컬 속에서 사랑하고 싶다는 말을 해줬는데 나 역시 극중 인물이든 가족이나 친구든 사랑하는 마음이 글을 쓰는 큰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강조였다.

뮤지컬 라흐헤스트를 창작한 문혜성, 김한솔, 정혜지(왼쪽부터)
어느덧 라흐헤스트는 장기 공연까지 이어지는 뮤지컬이 됐지만 이들은 해외 진출이라는 더 큰 꿈도 내비쳤다. 김 작가가 “뮤지컬에서 서울 외에도 도쿄와 파리, 뉴욕이 배경으로 등장하다보니 해외 관객들께도 보여줄 날이 온다면 좋겠다. 사실 일본에 가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유명 과일가게인 센비키야나 미츠코시 백화점도 일부러 가봤다”고 말하자 문 작곡가 역시 “나도 뉴욕에 갔을 때 김환기 선생님이 사셨다는 골목을 찾아가 걸어보고 그랬다. 작은 콘서트라도 할 날이 오기를 바란다”면서 동의했다. 이들의 마음이 담긴 라흐헤스트 재연은 9월 3일까지 서울 대학로 드림아트센터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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