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日 오염수 안전하다' 주장이 안먹히는 이유
후쿠시마 오염수의 방류 결정을 놓고 안전하다는 측과 위험하다는 측의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5월 말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환경운동연합의 여론조사에서 85%의 응답자가 방류에 반대했고 일본 정부의 발표를 불신한다는 의견이 79%에 달했다.
반대로 일본 정부는 방사성 물질들을 제거한 뒤에 방류되는 물이 안전하다고 주장해 왔다. 다른 나라의 원자력 전문가들도 비슷한 의견이다. 한국 정부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조사보고서 결과를 존중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 위험 인식은 다양하다
정부와 전문가가 안전하다고 하는데 왜 국민은 위험하다고 생각할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위험(risk)과 위해(hazard), 위기(crisis)를 구분해야 한다. 위해는 인명, 재산, 기반시설의 피해를 유발하는 자연적이거나 인위적인 사건인데 반해 위험은 주어진 환경에서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어떤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이다.
이와 달리 위기는 보통 짧은 시간 내에 일어나는 중대한 비상사태를 의미한다. 위기는 위해가 심각해서도 (예를 들어 지진으로 수만 명이 목숨을 잃어서) 생기지만 위험이 심각하다고 생각해서 (예를 들어 미국산 소고기를 수입하면 광우병이 퍼질 것이라고 두려워해서) 발생하기도 한다.
후쿠시마 오염수의 방류는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는 사건이어서 확률을 알기 힘든 상당히 불확실한 위험에 속한다. 일본 정부는 알프스(ALPS)라는 다핵종제거설비로 오염수를 여과하면 세슘, 스트론튬, 플루토늄 같은 대부분의 방사성 물질을 국제 기준치 이하로 걸러낼 수 있고 이후 희석을 해서 30년 동안 조금씩 방류하면 바닷물이나 생태계의 오염은 무시해도 좋다고 주장한다.
삼중수소나 탄소-14 같은 방사성 물질은 알프스로 걸러지지 않지만 그 농도가 미미하기에 이 역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국내외 과학자들도 알프스가 잘 작동한다면 방류수가 인체와 환경에 심각한 위해를 끼칠 확률은 0에 가깝다는 의견이 대체로 일치한다.
문제는 시민들이 위험을 확률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지해서가 아니라, 위험을 인식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위험 인식(risk perception)에 대해서는 1960년대부터 많은 연구가 축적됐다. 연구를 종합해 보면 시민들은 다음과 같은 위험의 경우 두려움을 더 크게 느낀다. 광우병의 위험, 방사능의 위험이 이런 위험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1) 비자발적인 위험
(2)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위험
(3) 도망칠 수 없는 위험
(4) 새로운 위험
(5) 자연적이지 않고 인간이 만든 위험
(6) 돌이킬 수 없는 위험
(7) 후속 세대에 지속되는 위험
(8) 두려움의 정도가 큰 위험
(9) 과학이 잘 모르는 위험
(10) 전문가들 사이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위험
● 위험 커뮤니케이션의 실패
위험을 다루는 위험 커뮤니케이션(risk comm-unication)은 지금 당장 해를 끼치는 위해가 아닌 경우 시민들이 위험을 너무 두려워해서 위기 상황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막는 것을 일차적 목표로 한다.
많은 경우에 위험이 과장됐다는 과학적 사실을 잘 전달하면 두려움에 떨었던 시민들도 점차 안정을 되찾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2008년에 미국산 소고기 수입과 관련한 위험은 한국사회를 총체적인 위기의 상황으로 몰고 갔다. 위험 커뮤니케이션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앞서 열거한 1~10의 상황이 얽혀서 위험 인식의 정도가 매우 높은 경우 확률이 적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하는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은 잘 작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역효과를 내기 십상이다. 이럴 경우에 정부, 언론, 과학자 단체가 안전하다고 목소리를 높일수록 많은 시민은 위험이 진짜 심각한데 누군가 감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홍보, 이익을 보장해주기 위한 겉치레라는 것이다.
●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이슈, 그리고 정치
한국 사회처럼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 극단적인 사회의 경우 위험을 정치적 성향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인다. 대략적으로 봤을 때 보수적인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진보적인 사람들보다 원자력 발전이나 방사능에 대해 위험을 덜 느낀다.
전자는 원자력 발전이 안전하고 과학자들이 정한 기준치 이하의 방사능은 마치 병원에서 X선 촬영이나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하는 것처럼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진보적인 사람들은 이런 위험을 더 크게 느끼는 경향이 있다.
또 위험은 정치권에 정치적 공세를 펼 수 있는 이슈를 제공한다. 현재 야당은 후쿠시마 오염수의 방류를 강력하게 반대하고, 정부의 미지근한 태도를 공격한다. 현재 정부가 보이는 모습을 보면 일본의 방류를 승인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에 이에 반대하는 국민들이 결집하고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는 2024년 4월의 다음 총선까지 이어질 정치적 이슈가 될 것이다. 결국,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이슈는 중층적으로 정치적이라 위험하지 않다는 과학적 사실로 국민을 설득하기 어렵다.
● 올바른 위험 커뮤니케이션 방법은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국민과 위험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을까. 지난 5월 여당의 초청을 받아 방한한 영국의 한 노교수는 알프스로 처리한 후쿠시마 방류수를 1L 마시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6월에는 방사선약학을 전공하는 한국의 한 대학교수도 처리된 오염수를 약 480배 희석한 물을 마실 수 있다고 선언했다. 그는 국민들이 후쿠시마 오염수 위험을 너무 과장해서 생각하는 게 답답해서 이런 인터뷰를 했다고 밝혔다.
오염수의 위험을 걱정하는 시민이 이런 얘기를 들으면 설득될까. 아마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렇게 안전하면 일본 사람들이 식수로 사용하지 왜 바다에 방류하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위험 체감도를 낮추는 열쇠는 안전하다는 얘기를 앵무새처럼 되뇌는 데에 있지 않다.
마법의 열쇠는 신뢰를 확고히 하는 데에 있다. 기존의 여러 연구는 정부나 과학자 단체에 대한 시민의 신뢰가 확고하게 형성될 때 시민들이 사실을 더 쉽게 수용함을 보여준다. 신뢰는 신용에 근거한 공약, 타인에 대한 배려, 예측성 같은 요소로 구성되는 일종의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다.
국민은 정부가 한국 국민의 건강과 먹거리 안전을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얘기를 듣고 싶어 한다. IAEA 같은 국제기관의 측정과 검증을 엄중하게 지켜보고 자체 모니터링을 강화해서 혹시라도 우리나라 해양에 방사성 물질의 농도가 하나라도 기준치를 넘으면 일본에 강력하게 항의해서 오염수 방류를 중지시키겠다는 약속을 듣고 싶어 한다.
안전하다는 주장의 강도를 높일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신뢰받는 정부나 연구 기관이 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게 위험을 심각한 위기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현명한 길이다. 과학기술이 낳는 위험에 대해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논란이 광우병 사태와 같은 사회적 위기로 이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필자소개.
홍성욱.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를 거쳐 2003년부터 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과 생명과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크로스 사이언스’, ‘홍성욱의 STS, 과학을 경청하다’ 등이 있고, 공저로는 ‘미래는 오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유령’ 등이 있다.
[홍성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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