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남자는 우산을 쓰지 않는다?[박광규의 알쓸패잡]
연일 장마가 이어지고 있는 한국의 거리에서는 누구나 우산을 쓰고 다닌다. 비가 오는 날 우산을 미처 준비하지 못해 이 건물 저 건물 입구에서 비를 피해 발을 동동 구르거나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풍경인 ‘비가 오면 우산 쓰는’ 모습은 외국에선 의외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광경이다.
또 ‘영국 신사’하면 중절모에 우산을 들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지만, 실제 영국 남자들은 우산을 별로 들고 다니지 않는다. 영국뿐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웬만한 비에는 우산을 쓰지 않는다. 왜 우산을 쓰지 않느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여러 이유 중에 문화적 차이를 들 수 있다. 서양에서는 비가 올 때 우산을 쓰고 다니는 사람들을 ‘샌님’이나 ‘나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폭우가 내리면 이들도 우산을 쓰지만, 비가 좀 온다고 우산을 쓰는 사람은 유난을 떤다거나 남자답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우산은 본래 기원전 3000년 전 고대 이집트에서 왕족이나 귀족들이 햇빛을 가리기 위해 사용됐다. 고대 중국에서도 왕족들이 햇빛을 가리는 용도로 우산을 사용했는데, 이때는 하인이 우산을 대신 들어줬다. 귀족들은 본인이 직접 우산을 들지 않았고, 햇빛을 가려줄 누군가가 존재했다. 쉽게 말해 과거의 우산은 하인들이나 사용하는 물건이었다.
우산이라는 것이 태생 자체가 비를 피하는 용도보다 햇빛을 가리는 물건이다. 우산을 뜻하는 영어인 ‘Umbrella’가 그림자를 뜻하는 라틴어 ‘Umbra’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런 것을 보면 우산은 비를 막는 것이 아니라 햇빛을 가리는 용도로 처음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햇빛을 가리는 용도 때문에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서는 부유한 여자들이 자신의 부를 나타내기 위한 패션 아이템으로 사용됐고, 여자를 차별하고 무시하던 그 당시 남자들은 우산을 들고 다니지 않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모자를 쓰거나 마차를 타거나 아니면 망토에 이어진 두건을 쓰고 그냥 비를 맞았다.
군 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비 오는 날 우산 대신 ‘판초 우의’(천 중앙에 구멍을 뚫고 그곳으로 머리를 내어 입는 형태의 비옷)를 입고 훈련을 받은 추억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오늘날 군인들이 우산을 쓰지 않는 관습도 남자다움을 뽐내던 고대의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우산을 쓰는 것은 ‘남자답지 못하다’라는 인식만은 그대로 남아 대부분이 남성으로 구성된 군대에서 이어졌을 듯하다(현재는 군대에서 “비전술적 상황에서 우의가 없을 시에는 군인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색상의 우산을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렇듯 남자들이 우산을 잘 사용하지 않는 관습이 깨지기 시작한 것이 18세기 중반 무렵부터다. 1750년경 영국의 조나스 한웨이(1712~1786)는 우산이 나약한 사람들의 물품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30년간 매일같이 우산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를 비웃던 사람들이 점차 우산의 필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영국 신사들의 상징물인 우산은 ‘한웨이(Hanway)’로 불리게 됐다.
영국은 비가 자주 내리는 나라이긴 하지만 한국의 장마처럼 한 번에 많은 양이 내리지 않는다. 그래서 비가 오면 잠깐 비를 피하거나 애초에 방수가 되는 옷 등 레인코트류를 입는 것으로 대체한다. 또한 주로 자동차를 중심으로 이동하는 문화 때문에 우산 사용을 귀찮고 불편하게 여긴다. 비에 대한 인식 자체도 다르다. 한국에선 비가 오면 ‘오염된다’는 인식이 강해 우산을 꼭 쓰지만, 많은 외국에서는 비가 오면 ‘그냥 젖는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남자답다는 인식도 적고 비를 자발적으로 맞는 사람은 찾기가 힘들다. 한국 사람들은 환경문제 탓인지 비를 맞으면 산성비에 머리카락이 빠진다는 등 비를 맞는 것을 안 좋게 생각한다. 하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어린 시절 비를 맞으며 물웅덩이를 찾아 첨벙거리며 놀던 추억이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그때처럼 한 번쯤은 삶을 대하는 자세가 좀더 여유러워졌으면 한다. 서양에서처럼 ‘그깟 비 그냥 물인데, 맞으면 좀 어때’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날도 괜찮지 않을까?
올여름 한 번쯤은 우산에 숨지 말고 빗속으로 나가서 두 팔을 벌리고 비를 껴안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박광규는 누구?
이랜드그룹과 F&F에서 근무한 데 이어 EXR 중국의 임원을 거쳐 NEXO 대표이사를 지냈다. 현재는 서울패션스마트센터 센터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이와 함께 패션산업에 30년 종사한 경험을 바탕으로 소상공인 지원, 청년 인큐베이팅, 패션 융복합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미국 Gerson Lehrman Group의 패션 부문 컨설턴트이기도 하다.
패션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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