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모든 샷은 마지막 남은 화살

방민준 2023. 7. 10.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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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블비치 골프링크스에서 열린 2023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대회 제78회 US여자오픈에 출전한 신지애 프로가 최종라운드에서 경기하는 모습이다. 마지막 홀 버디에 힘입어 준우승으로 순위를 끌어올렸다. 사진제공=USGA/James Gilbert

 



 



[골프한국] 골퍼가 날리는 모든 샷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지금 여기서 내가 날리는 샷은 두 번 다시 되풀이해서 날릴 수 없는 유일무이한 샷이다.



수많은 프로 골퍼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미스 샷을 내고 나서 "다시 한번 샷을 할 수 있다면…"하며 후회하고 아쉬워하지만 골프에서 가정법이란 허망할 뿐이다. 



 



그럼에도 주말골퍼들은 샷은 무한히 되풀이할 수 있는 것인 양 골프채를 휘두른다. 지금 내가 날리는 샷이 두 번 다시 날릴 수 없는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란 것을 깨닫지 못하고 허겁지겁 덤벼들다 미스샷투성이의 라운드를 하고 만다.



 
지금 내가 날리는 샷이 이 순간에 내가 날릴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샷이란 것만 깨달아도 라운드의 내용이 달라진다. 무엇보다 경기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져 허투루 날리는 샷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샷을 날리기 전에 주변 상황에 대한 점검도 치밀해지고 어떤 샷을 날려야 할지 결단을 내리는 과정도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결행하는 순간의 자세가 신중하고 결연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최근 이보다 더 좋은 효과를 발휘하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지금 내가 날리는 샷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생각도 효과적이었지만 '지금 내가 날리는 샷은 마지막 남은 화살'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렸더니 훨씬 강한 집중도를 체험할 수 있었다. 



 



'지금 내가 날릴 샷은 난공불락의 적군의 성을 불태울 수 있는 마지막 남은 불화살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함부로 화살을 날릴 수 있겠는가. 장기간의 전쟁으로 수많은 아군이 목숨을 잃었고 살아있는 병사들도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상황에서 오직 남은 희망은 마지막 남은 이 불화살을 적군의 성문에 정확히 맞혀 불태운 뒤 성 안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길을 여는 것이다. 불화살이 정확히 목표지점에 꽂히도록 발사대의 방향과 발사각을 정확히 맞추고 발사대가 흔들리지 않게 불이 붙은 화살을 발사해야 한다.



 



이것은 골퍼가 목표지점을 향해 샷을 날리는 것과 결코 다르지 않다. 생각은 목표지점으로 볼을 날려 보내겠다고 하지만 이런 절박성이 결여된 상태의 샷은 몸 따로 마음 따로다. 자연히 내가 날린 샷은 당초 의도와는 달리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고 만다. 



 



그러나 지금 내가 날릴 샷이 내 개인이 샷이 아니라 내가 속한 집단의 생사를 결정짓는 중차대한 것이라면 흐트러진 자세로 제멋대로 샷을 날리지는 못할 것이다. 



이 이미지를 실전에 활용했더니 그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비거리가 짧아 페어웨이 우드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결코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토핑이 나거나 빗맞거나 뒷땅을 치거나 했다. 그러나 '지금 날릴 샷이 마지막 남은 화살'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스윙을 해보니 볼은 드라이브샷을 방불케 할 정도로 잘 날아갔다. 한두 번이 아니라 매번 그랬다. 그래서 요즘 짧은 비거리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남부끄럽지 않은 라운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페블비치 골프링크스에서 열린 2023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대회 제78회 US여자오픈 우승을 차지한 앨리슨 코푸즈가 최종라운드에서 경기하는 모습이다. 사진제공=USGA/Jason E. Miczek

 



 



대부분의 골퍼들이 18홀을 돌고 나서 9홀 혹은 18홀을 더 돌았으면 하는 아쉬움을 갖는다.
이 경우 대개는 초반에 몸이 덜 풀려 스코어가 시원치 않았다가 후반에 접어들어서야 리듬을 찾고 몸도 풀려 볼이 제대로 맞기 시작한다는 뜻인데 이것은 그만큼 집중도가 떨어진 골프를 했다는 증거다.



 



정말로 모든 샷마다 혼신을 다해 라운드를 했다면 18홀을 마친 뒤 그렇게 민숭민숭할 까닭이 없다. 게임에 몰입해 18홀 동안 최선을 다하는 골퍼는 날씨와 관계없이 등에 진한 땀이 배고 라운드를 끝내고 나면 절로 '이제야 끝났구나!'하는 안도의 숨을 내뱉게 된다. 이래야 정상이다.



 



18홀을 돌고도 성이 안 차고 미련이 남는다면 그것은 힘이 남아서가 아니라 골프에 몰입하지 못하고 건성으로 라운드했다는 증거다. 흘러간 물에 두 번 다시 손을 씻을 수 없듯 온갖 상황에서 맞는 모든 샷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것도 적군의 성문을 불태울 수 있는 마지막 남은 불화살이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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