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도로 이익, 김건희가 누리면 '논란'이고 농민이 누리면 문제 없나?
[조정흔 감정평가사]
서울-양평 간 고속도로,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일가와 일가 회사가 소유한 토지와 가깝게 고속도로 노선이 변경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서울-양평 간 고속도로는 1조8000억 원의 세금이 투입되는 국책사업으로 2년 전 예비타당성 조사를 마쳤다. 이 상황에서 노선이 변경되었다. 원래 추진하던 고속도로 종점은 양서면이었으나, 강상면으로 변경되었다. 변경된 노선의 종점지 5백미터 이내에 김 여사 일가의 토지들이 몰려있다. KBS 보도에 따르면 김 여사 일가는 일대에 총29개 필지, 축구장 5개 크기의 수천 평에 달하는 토지를 보유 중이라 한다.
논란이 커졌으나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김 여사 일가 땅 특혜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대신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을 전면 백지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갑작스러운 발표로 인해 논란이 더욱 커지는 양상이다.
공공이 사인의 이익에 복무해도 되나
특정인의 토지 주변으로 고속도로 노선이 변경된 사안이 논란인 이유는 단순하다. 고속도로와 같이 대규모 세금이 투입되는 사회간접자본이 들어오면서 주변 토지가격이 상승하고, 토지가치 상승으로 인한 개발이익이 주변 토지의 소유자에게 고스란히 이전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정치인 등 유력 인사들이 소유한 토지 인근으로 고속도로나 철도가 생기거나 신도시가 개발되는 경우 특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국민의힘 당대표인 김기현 의원의 경우에도 KTX울산역이 생기기 전, 역세권 토지를 사전에 내부정보를 활용하여 구입한 것이 아닌지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지난 대선 당시 여당의 대통령 후보이자, 현 야당 대표인 이재명 의원의 발목을 잡고 있는 대장동 의혹 또한 사실 본질은 다르지 않다. 이 의원이 대장동 도시개발사업에 인허가권자로서 부당한 특혜를 제공하고, 아파트 등이 건설되면서 발생한 막대한 개발이익 중 일부를 편취한 것 아닌지가 핵심이다. 이재명 대표 재판은 진행 중에 있다.
도로, 철도, 하천, 항만, 공항, 주차장, 공원, 수도, 학교 등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는 기반시설은 국민 모두의 공공복리를 증진하고,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하는 공공자산이다. 도시개발사업 등을 통한 주택공급사업 또한 쾌적한 도시환경 조성과 국민의 주거안정이라는 공공복리 증진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현실은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상태다. 국민의 주거안정을 위하여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주택 공급이 사업자의 수익창출 도구로 전락한지 오래다. 공공이 민간 사업자의 수익을 극대화해주기 위해 민자고속도로를 놓고, 유력정치인이 갖고 있는 땅값을 올려주기 위해 노선을 변경하며, 일부 부유한 이들이 부동산 투기로 돈 벌게 해주기 위해 주택을 짓는다.
개발이익 환수가 필요하다
세계불평등연구소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소득불평등이 가장 빠른 속도로 악화하고 있는 나라다. 2022년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피케티 지수가 9.6배로 올라, 불평등이 더욱 심화했다. 통상 다른 선진국 수준인 4∼7배는 물론이고, 거품이 정점이던 1990년 일본의 8.1배보다 높은 수치이다. 피케티 연구에서 역사적으로 9배를 넘어선 국가는 한국 외에 없었다. 대한민국 불평등의 원인은 부동산을 매개로 한다.
고속도로 건설이나 신도시개발로 인한 막대한 개발이익의 수혜자가 대통령 부인인지, 여야 당대표인지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영부인은 개발이익을 취하면 안 되지만, 고속도로 옆에 넓은 농지를 보유하고 있던 농부는 개발이익을 모두 자기 주머니에 넣어도 되는가? 이처럼 누군가는 부동산으로 인해 '로또'를 맞고 다른 이는 이익을 공유하지 못하는 건 정당한가?
영부인이, 여야 당대표가 권력을 이용한 특혜를 받았는지 여부로 논쟁을 벌이는 것보다 훨씬 좋은 대책은 누구에게라도 예외 없이 개발이익을 적절히 환수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부동산에 의한 불평등을 최소화하고 그로부터 나오는 이익을 사회가 공유하도록 보장할 제도가 필요하다. 그에 따라 궁극적으로 토지가격이 안정되어 주택 공급이 국민 주거안정에 기여하고, 토지가 공업이나 농업 등의 안정적인 생산 활동을 뒷받침하는 선순환의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
개발이익 환수제도가 잘 마련되어 있다면, 고속도로 주변 토지 소유자가 누구이더라도 논란이 일어날 여지가 없다. 그러나 1989년 노태우 정부 당시 토지공개념의 국민적 열망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토지공개념 3법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개발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은 각종 부과 제외, 감면 조항, 산정방법의 편법과 꼼수만 남아 누더기가 된 채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더 문제는 개발이익 환수의 혜택을 입을 부동산 약자마저 이익 사유화를 옹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정치권의 유력자들만 토지투기에 열을 올리는 것이 아니다. 지난 몇 년간의 부동산 가격 폭등과 투기 광풍은 2030청년, 서민 영끌 투기의 결과이다. 저금리에 기반한 부담 없고 손쉬운 대출이 주택 약자들의 불안과 투기심리와 만났다. 유튜브와 SNS로 인해 정보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대중의 투기심리를 자극하는 부동산 투자마케팅이 대중화한 결과, 너도나도 투기대열에 뛰어들었다. 이제는 개발이익 환수를 말하면 일반 시민이 반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누구나 적절한 생산활동을 통하여 이윤을 얻고, 개인의 이익과 사회 전체의 이익의 방향이 같아지도록 머리를 맞대야 마땅하다. 그러나 양평 고속도로 의혹을 제기하고 대장동 개발이익을 말하는 사람 어느누구도 개발이익 환수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제도는 국민의 열망과 사회적 합의가 모아져야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런데 이제는 정치인을 욕하면서 너도나도 투기판에 동참하는 세태가 되었으니 좋은 제도가 만들어질리가 없다. 누구의 책임일까.
[조정흔 감정평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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