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치 한마리에 3만원…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한숨' [視리즈]
서울 중랑동부시장 가보니…
물가ㆍ인건비 상승에 고통 커져
동네장사 가격 올리기 쉽지 않고
배달 수수료에 한숨만 절로
소비자물가의 오름세가 다소 둔화했지만, 곳곳에서 들리는 신음소리는 여전하다. 서민뿐만 아니라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고물가 국면'은 정말 견디기 힘든 시절이다. 누구랄 것 없이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는 서울 중랑동부시장 속으로 더스쿠프가 들어가봤다.
수도권 지하철 경의중앙선 중랑역 4번 출구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면 중랑동부시장 북문이 나온다. 반대편 남문까지 400m가량에 이르는 거리에 조성된 이 시장은 2015년 문화관광형 시장 육성사업에 선정됐다. 문화의 거리, 만남의 거리, 축제의 거리, 패션의 거리로 구역이 나뉜 시장엔 140여개의 점포가 자리 잡고 있다.
기자가 중랑동부시장을 찾은 지난 3일 오후는 한낮 기온 34.6도, 전국적으로 폭염주의보가 발령된 날이었다. 그래서일까. 중량동부시장은 숨 막히도록 고요했다. 호객하는 목소리도, 가격을 흥정하는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등 한복판으로 흐르는 땀줄기를 느끼며, 한 그릇가게 문을 열었다. 단골손님과 대화하던 장순미(가명)씨가 기자를 반겼다. 그는 이 자리에서만 30년 넘게 그릇 장사를 하고 있는 동부시장의 터줏대감이다.
"중랑역이 환승역이에요. 이곳을 지나는 버스도 많고요. 유동인구가 그만큼 많아요. 시장이 한창 잘될 땐 이곳에서 장 봐서, 버스 타고 다른 지역으로 나가는 손님도 많았는데, 이젠 까마득한 일이 됐네요."
장씨는 "시장에 손님이 많아야 상인들도 바쁘게 보낼 텐데, 다들 한가하게 앉아 있다"면서도 "하지만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며 말을 이었다. "손님들이라고 뭘 안 사고 싶겠어요? 물가가 워낙 올랐으니 지갑 열기가 쉽지 않은 거죠."
옆에서 가만히 얘기를 듣던 이영옥(가명)씨가 "먹거리 물가가 너무 올랐다"며 말을 거들었다. "우리 같은 노인들이야 예전에는 1만원 갖고도 하루 생활이 가능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2만원으로도 어림없어요. 엊그제는 갈치 한 마리에 3만원 달라고 하더라고요. 별도리 있나요. 안 쓰고 살아야죠." 물론 숱한 세월을 이겨낸 그들에게도 이번 고물가는 이전과 다른 게 분명하다.
손님들만큼 자영업자들도 무척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장씨가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우린 그나마 오래 거래하던 손님들이 있으니 그럭저럭 먹고 사는데, 다들 상황이 말도 아닐 거예요. 대출 상환 시기는 돌아오고, 인건비가 자꾸 오르니 알바도 못 써요. '최저임금을 동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시위 현장에 나가는 분들도 있는데, 거기에 동참하지 않으면 살 만한 줄 알더라고요. 근데요, 가고 싶어도 못 가요. 그럼 가게는 누가 봐요. 힘들지 않은 게 아니라 '악' 소리도 못 내고 죽어 나가는 자영업자들이 많아요. 다들 취약계층 위기만 얘기하는데, 우리 목소리도 좀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그의 말처럼 전통시장의 일하는 사람은 매년 줄어들고 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전통시장 종사자 수는 2019년 34만2031명에서 2021년 32만4779명으로 감소했다.
반면 빈 점포는 가파르게 늘었다. 2019년 1만9818개였던 전통시장 내 빈 점포는 2021년 2만2663개로 2년 사이 2845개(14.4%)가 증가했다. 중랑동부시장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몇 걸음 옮길 때마다 빈 점포들이 눈에 띄었다.
시장에서 생선구이 식당을 운영하는 박태섭(가명)씨에게도 이번 여름은 유독 버겁다. 족발 장사를 하다 몇 개월 전 업종을 바꿨다는 그가 뜨거운 화구 앞에서 생선을 굽다 잠시 선풍기 앞으로 나왔다.
"코로나19 때문에 힘든 와중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터지면서 더 힘들어졌다"고 털어놓은 그는 "새벽 5시에 나와 밤 12시에 들어가는데도 별로 남는 게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를 이토록 힘들 게 한 건 뭘까. 대세를 거스를 수 없어 배달플랫폼에 입점했는데, 배달료에 광고비, 수수료까지 부담해야 할 돈이 만만치 않다는 게 그가 내뱉는 한숨의 원인이었다.
"1만2900원짜리 생선구이 하나 팔면 몇천원 남아요. 그걸로 전기요금 내고 수도세 내고 하면 얼마나 남겠어요. 어떤 달은 한 달 내내 쉬지 않고 일했는데도 150만원도 못 벌더라고요. 그러니 알바를 쓸 엄두도 못 내죠. 그렇다고 이미 시작한 배달을 끊을 수도 없고…."
대기업들은 원자재 가격 폭등을 명분으로 제품 가격을 턱턱 올리지만, 전통시장 상인들에겐 이마저도 쉽지 않은 일이다. 분식집을 하는 이순임(가명)씨는 밀가루ㆍ식용유 가격이 오를 때도 가격표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의 집에선 순대 1인분 가격이 아직 3000원이다. 대부분 4000~5000원으로 오른 요즘, 흔치 않은 가격이다.
손님이 하나둘 줄고, 손에 쥐는 돈이 갈수록 메말라갈 때면 고민을 잠깐 하기도 한다지만 그는 "앞으로도 가격을 올릴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예전과 비교하면 재료 가격이 많이 오르긴 했어요. 그런데 손님 대부분이 동네 주민들이고, 또 아이들이라 가격을 올릴 수가 없네요."
이씨의 그늘진 얼굴을 뒤로하고, 걸음을 옮기자 뙤약볕을 피해 한 안마기 매장 앞 계단에서 장바구니를 옆에 끼고 대화를 나누는 백발의 노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가서서 말을 건네자 그중 안영희(가명)씨가 옆에 앉으라는 듯 손짓했다.
"시장에 꼭 뭘 살 게 있어서 오는 게 아니라, 이렇게 두런두런 얘기라도 하려고 매일 와요. 그게 시장의 정이잖아요. 젊은 사람들은 다 마트로 간다던데, 우리처럼 나이 든 사람들은 아무래도 시장이 편해요."
하지만 그들의 바람과 달리 전통시장은 폭염만큼 힘겨운 고물가의 그림자에 메말라가고 있었다. 그들에겐 언제쯤 시원한 단비가 내릴까.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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