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빼내기 거의 불가능"…中 감시망에 좌절

[아이뉴스24 신수정 기자] 23년간 탈북자를 돕고 있는 한국인 목사가 중국의 촘촘한 감시망으로 인해 "탈북자 빼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탈북동포회와 선민네트워크 회원이 지난해 7월 13일 오후 서울 중구 주한중국대사관 인근에서 '제500차 선진중국 기원 및 탈북난민 강제북송 중지호소 수요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욕타임스(NYT)는 9일(현지시간) 서울발 기사에서 천기원 목사가 북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중국에서 사이버 성매매를 강요당하던 탈북 여성을 돕는 과정에 주고받은 수백 건의 문자메시지와 오디오 파일 등을 토대로 중국 내 탈북자들의 '자유 찾기'가 더 위험해졌다고 보도했다.

천 목사는 NYT 인터뷰에서 중국에 있는 탈북자를 돕는 일이 "거의 불가능해졌다"라며 2건의 사례를 언급했다.

먼저 지난 2019년 북한 정권의 외화벌이 목적으로 중국 동북 지방에 파견된 북한의 한 엔지니어는 처음에는 도망칠 생각이 없었지만, 보안 카메라와 경비원들의 감시 속에 노예 같은 삶을 살면서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

그는 2021년 한 웹사이트에서 천 목사의 이메일 주소를 알게 된 뒤 텔레그램을 통해 "내 목숨을 잃을 위험을 무릅쓰고 연락한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이 남성은 자신의 삶을 "새장 속의 새"에 비유하면서 "그들은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지켜보고 있다"고 토로했다.

상부에서 정한 월 4∼5천달러의 수입을 올리지 못해 어려움을 겪던 그는 지난해 명령 불복종으로 구타당했다며 멍든 얼굴을 찍은 영상을 천 목사에게 보내면서 "설령 (탈북 과정에서) 죽을지라도 단 하루라도 자유인으로 살아보고 싶다"고 요청했다.

또 지난 2018년 북중 국경을 넘었던 여성 이모 씨도 천 목사에게 'SOS'를 보낸 탈북자 중 한 명이다.

당초 '한국으로 가려면 3개월만 누군가를 위해 일을 해야 한다'던 브로커는 이씨를 중국 바이산의 한 공안 간부와 결혼한 북한 여성에게 팔아넘겼고, 이 여성은 이씨를 아파트에 가두고 웹캠으로 남성 고객들을 위해 성적 행위를 보여주라고 강요했다.

지난 1월 천 목사와 접촉한 이씨는 자신과 2명의 다른 탈북 여성이 곧 다른 인신매매 일당에 팔려 갈 예정이라며 긴급 탈출을 부탁했다.

탈북동포회와 선민네트워크 회원이 지난해 7월 13일 오후 서울 중구 주한중국대사관 인근에서 '제500차 선진중국 기원 및 탈북난민 강제북송 중지호소 수요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수천달러였던 브로커 수수료가 코로나19 사태 후 수만달러로 뛰었지만, 천 목사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이씨 등의 탈출을 위한 자금을 겨우 마련해 태국에 있는 한 브로커를 고용했다"고 NYT에 밝혔다.

이 브로커가 중국 내 다른 브로커들과 팀을 이뤄 이들을 칭다오의 안전 가옥으로 빼낸 뒤, 차로 라오스로 이동, 태국을 거쳐 한국으로 보낸다는 계획이었다.

팬데믹 이후 잦아진 당국의 신분 검사, 정교해진 안면 인식 기술과 감시 카메라를 피하기 위해 단계별로 여러 번 차를 갈아타는 치밀한 계획을 세웠으나, 먼저 빼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태우고 이씨 등을 데리러 가는 길에 지린에서 브로커와 엔지니어 모두 체포됐다. 탈출 과정에 사용한 자동차가 감시카메라에 찍혀 공안 당국에 신원이 노출된 것이다.

천 목사는 급하게 다른 브로커를 고용해 이씨 등 3명의 여성을 칭다오의 안전 가옥에 데려왔으나, 며칠 뒤 이들에게 성매매를 강요하던 북한 여성의 남편인 공안 간부가 들이닥쳐 이들을 도로 잡아갔다고 전했다.

새로 고용한 브로커 중 한 명이 포주 남편에게서 돈을 받고 탈북 여성 3명을 도로 팔아넘긴 것으로 추측한 천 목사는 "그것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고 말했다.

탈북동포회와 선민네트워크 회원이 지난해 7월 13일 오후 서울 중구 주한중국대사관 인근에서 '제500차 선진중국 기원 및 탈북난민 강제북송 중지호소 수요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중국의 감옥에서 북한 송환을 기다리고 있으며, 이씨 등 여성 3명의 행방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천 목사는 NYT에 "23년간 북한 사람들을 도왔지만, 이처럼 슬픔과 무력함을 느낀 적은 없었다"라고 한탄했다.

한국에 무사히 도착하는 탈북자 수는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19년만 해도 1천47명이었으나, 지난해에는 63명으로 급감했다.

/신수정 기자(soojungsin@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