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exclusive] 인생은 선택의 연속!...'빅 클럽' 떠나 더욱 만개한 유망주 12人
[포포투] 그냥 묻히기에 아까운 기사만 모았다. 영국 최고의 풋볼매거진 '포포투'의 독점 콘텐츠를 온라인으로 전달한다. '별'들의 단독 인터뷰부터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442.exclusive'를 통해 함께 한다. 기대하시라. [편집자주]
축구는 결코 우상향의 그래프를 그리는 스포츠가 아니다. 빅 클럽에서 시작한다고 해서 거기서 커리어를 끝내는 것은 아니다.
물론, 역사적으로 빅 클럽에서 데뷔해 원 클럽 맨으로 커리어를 끝낸 수많은 선수들이 있다. 하지만 모든 선수들이 그 길을 따를 수는 없다.
그들 중 대부분은 그대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하지만 지금 언급하는 12명의 선수들은 빅 클럽을 떠난 후 더욱 만개했다.
1. 마르코 로이스 (도르트문트)
바이에른 뮌헨이 결코 품지 못한 몇 안되는 도르트문트 선수들 중 한 명이다. 로이스는 다른 곳으로 이적설이 짙게 나오기도 했지만 도르트문트를 떠나지 않았다.
2005년, 로이스는 너무 말랐다는 이유로 도르트문트에서 방출됐다. 하지만 곧 작은 체격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로트바이트 알렌과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를 거친 로이스는 2012년 도르트문트로 돌아왔다.
2. 클라스 얀 훈텔라르 (PSV 아인트호벤)
아약스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가 됐지만, 생각보다 훨씬 치열한 PSV 생활을 견뎠다. 2000년 계약을 맺은 그는 그라프샤프와 AGOVV로 임대를 떠나기 전, 거스 히딩크 감독 체제에서 성인 무대 데뷔를 했다.
정기적인 출전 시간을 원했던 훈텔라르는 2004년 완전 이적을 통해 헤렌벤으로 향했다. 60경기에서 39골을 넣은 그는 2년 후, 아약스로 이적하며 커리어 상승을 겪었다.
3. 후안 마타 (레알 마드리드)
마타의 스페인 시절을 떠올릴 때 대표적인 구단은 발렌시아다. 하지만 2006년 레알 마드리드 소속으로 마타는 성인 무대 데뷔를 치렀다. 39경기에서 10골을 넣은 그는 발렌시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바이아웃 조항을 통해 팀을 옮겼다.
이후 마타는 2011년 잉글랜드로 향했다. 무려 2350만 파운드(약 392억 원)의 이적료를 발생시킨 그는 첼시로 이적했다.
4. 론 로베르트 칠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10년 칠러가 떠나도록 한 후, 맨유는 이 결정을 후회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에드윈 반 데 사르와의 경쟁에서 전혀 이기지 못했다. 알렉스 퍼거슨 경 밑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그는 하노버에 합류했다.
2016년 레스터 시티에 합류하기 전까지 분데스리가에서 거의 200경기에 출전했다. 하지만 레스터에서도 카스퍼 슈마이켈과의 경쟁에서 이기지 못했다. 이후 슈투트가르트로 돌아간 그는 분데스리가에서 좋은 커리어를 쌓았다.
5. 로익 레미 (올림피크 리옹)
2007년 리옹 소속으로 프랑스 리그 챔피언이 됐지만, 레미의 활약은 미미했다. 2008년 OGC 니스가 클럽 레코드를 지불하며 레미의 영입을 추진했고 리옹은 이를 허락했다. 니스 소속으로 레미는 68경기에 출전해 26골을 넣으며 좋은 활약을 했다.
이후 그는 올림피크 마르세유, 퀸즈 파크 레인저스(QPR),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거쳐 2014년 첼시로 이적했다. 첼시에선 미미했지만 스페인 라스 팔마스에서 준수한 활약을 했고 2018년 여름 LOSC 릴로 이적하며 '조국' 프랑스로 돌아갔다.
6. 사무엘 에투 (레알 마드리드)
에투는 바르셀로나에서 3번의 리그 우승과 2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거뒀다. 하지만 그의 커리어의 시작은 바르셀로나의 '라이벌' 레알에서부터였다. 레알 소속으로 3경기 출전에 그쳤던 그는 레가네스, 에스파뇰, 마요르카에서 임대로 활약했다.
이후 마요르카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를 바르셀로나가 데려왔다. 그는 프랑크 레이카르트와 펩 과르디올라의 지도 하에 핵심 선수가 됐다.
7. 폴 포그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16년 8월 포그바는 맨유와 계약했다. 하지만 이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는 2009년 맨유에 입단했지만, 출전 시간을 원했고 3년 후 팀을 떠났다.
인터밀란, AS 로마가 그를 원했지만 포그바의 선택은 유벤투스였다. 4년 동안 유벤투스에서 활약하며 월드 클래스로 성장했고 2016-17시즌 1000억 원이 넘는 이적료를 발생시키며 맨유로 금의환향했다.
8. 세스크 파브레가스 (바르셀로나)
라 마시아에서 성장한 파브레가스는 2003년, 아르센 베거의 아스널에 합류하기 위해 바르셀로나를 떠났다. 하지만 이 선택은 신의 한 수였다. 아스널에서 파브레가스는 핵심 선수가 됐다. 2003년 16세의 나이에 데뷔전을 치른 그는 2009년 주장을 달기까지 했다.
그로부터 2년 후, 파브레가스는 바르셀로나로 돌아갔다. 친정팀으로의 복귀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이었지만 3년 후, 첼시의 손을 잡았고 그렇게 잉글랜드로 복귀했다.
9. 세르주 그나브리 (아스널)
슈투트가르트 태생의 그나브리는 16세의 나이로 아스널에 합류했다. 재능을 인정 받은 그는 아스널의 미래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그는 1군 출전을 원했다. 결국 2016년 웨스트 브로미치 알비온(WBA)에서의 임대를 끝마친 직후 이적을 추진했고 베르더 브레멘으로 향했다. 독일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는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고 호펜하임 임대를 거쳐 팀의 주축으로 성장했다.
10. 알바로 모라타 (레알 마드리드)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은 바이백 조항을 좋아한다. 그는 2014년 모라타가 유벤투스로 이적할 때 바이백 조항을 삽입했다. 이탈리아로 떠난 그는 챔피언스리그에서 중요한 골을 넣으며 자신의 기량을 보여줬다.
그렇게 레알로 돌아왔다. 페레스 회장은 2016년 6월 모라타의 바이백 조항을 활성화했다. 그는 컵 대회 포함 20골을 넣었고 첼시로 이적하며 6000만 파운드(약 1003억 원)의 수익을 남겼다.
11. 아드리앙 라비오 (맨체스터 시티)
라비오는 2008년 맨시티로 이적했지만,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2009년 1월 프랑스로 돌아가기까지는 단 6개월의 시간만이 걸렸다. 그의 어머니는 나중에 그녀의 아들이 학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라비오는 2016년 4월 챔피언스리그에서 맨시티를 상대로 골을 넣었을 때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PSG는 마누엘 펠레그리니 감독이 이끄는 맨시티를 꺾지 못했다.
12. 제라르드 피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08년, 알렉스 퍼거슨 경은 조니 에반스와 피케 중에서 선택을 해야만 했다. 지금 놓고 보면, 쉬운 결정이지만 당시 피케는 대단한 선수가 아니었다. 리오 퍼디난드, 네마냐 비디치와의 경쟁에서 이기지 못한 피케는 2008년 바르셀로나로 돌아갔다.
이적료는 단 500만 파운드(약 83억 원). 훌륭한 거래였다. 피케는 바르셀로나에서 리그와 챔피언스리그 등 무수히 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글=Kristan Heneage
에디터=한유철
한유철 기자 iyulje93@fourfourtwo.co.kr
ⓒ 포포투(http://www.fourfourtwo.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Copyright © 포포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